“기름으로 얼룩진 죽음의 땅, 다시 ‘생명’이 움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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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으로 얼룩진 죽음의 땅, 다시 ‘생명’이 움트다”
  • 태안=이인창 기자
  • 승인 2018.01.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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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서해안 기름유출 10년, 생명이 피어나는 ‘태안’을 가다

2007년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달리 매서운 한파가 나흘 연속 몰아쳤지만, 지난달 22일 찾은 충남 태안 갯가에 부는 바람은 부드러웠다.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면서 모래사장을 비추는 햇살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늑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10년 전 기름범벅이었던 모래사장, 갯바위들에게서 당시 흔적을 찾지 못했다.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과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조선이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충돌해 국내 최대 규모 환경재앙이 발생했던 바다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죽음의 바다는 창조질서를 회복했다. 차를 타고 서산IC를 지나 만리포 방면으로 들어오면서 “123만 자원봉사자 여러분 고맙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봤다. 세월이 아니라 봉사자들의 섬김이 감사를 이끌어낸 것이리라.  

10년 전 살을 에는 추위를 참아내며 모래와 돌을 손으로 닦아냈던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그 중 83만명이 한국교회 성도들이었다는 사실을 세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쉬움이 있지만, 어차피 드러내려고 한 섬김은 아니었다. 욕심 없는 성도들이 닦았던 것은 희망이었다. 그 희망이 10년이 지난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다. 그 기억을 좇아 당시 한국교회 자원봉사자들의 중앙본부 역할을 했던 태안군 소원면 의항교회(담임:이광희 목사)를 방문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 당시 닦았던 희망을 한국교회가 찾을 수 있진 않을까 생각하며 달려갔다.

기름범벅 태안으로 달려간 한국교회
르포 취재를 위해 방문하겠다고 처음 전화했을 때 의항교회 이광희 목사는 체념하는 목소리였다. 그는 10년 전 한국교회의 자원봉사 활동을 되짚어보고 신앙유산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에, 관계기관과 연합봉사단체 등과 소통하고자 무진 애를 썼다. 결과적으로 거둔 성과는 거의 없었다. 

지난 9월 태안군이 서해안 기름유출 10주년 기념관을 건립할 때도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섬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이 목사는 의항교회 앞마당을 가득 메웠던 자원봉사자들을 피해를 입은 인근 각처로 보내고, 후원물품을 나누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러한 지역교회 목회자였지만, 기념관 건립은 8월에야 알았다. 

물론 한국교회 대표 인사들이 기념행사에는 초청됐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의항교회에 마련된 ‘한국교회 서해안 살리기 전시관’ 내 방제작업복, 피해 어패류 등 전시물품만 가져가고자 했을 뿐 종교단체 활동을 다루고 싶어 하진 않았다. 어쩌다 교회가 이렇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목사는 공무원들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못내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11년 의항교회 차고를 내주고 한국교회봉사단이 작은 전시관을 만들었지만, 이제 걸려있는 액자들은 바래고 천장은 물 흐른 자국이 어지럽다. 간간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전시물들은 민망할 정도로 방치돼 있다. 보강사업이 시급해 보였다. 

서운하고 힘 빠지는 경험을 했지만, 막상 만난 이광희 목사는 10년 전 한국교회 봉사활동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생동감이 넘쳤다. 모든 것이 다 기억난다고 했다. 낯선 기자를 낡은 승합차에 태워서는 당시 유출피해 현장과 성도들이 봉사활동을 펼쳤던 장소들을 일일이 데려다주었다. 

▲ 이광희 목사가 태배 정상에서 태안 해안가 일대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했던 한국교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는 차인데, 2007년 12월에는 우리 교회 새 차였어요. 여기에 자원봉사자들을 싣고 비포장 길을 수없이 다녔습니다. 정비공장에서는 이제 폐차하라고 하는데, 그동안 정이 들어서 그럴 수가 있나요?”

서해안 기름유출 당시 의항교회 바로 인근 의항해수욕장, 만리포, 천리포를 비롯해 멀리는 전북 군산 일대까지 서해안 167km가 오염됐다. 

이광희 목사가 교회 뒷산 ‘태배’(그 옛날 중국의 이태백이 놀다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에 올라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 멀리 사고해역부터 사구해안, 만리포, 구름포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겨울 하늘만큼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12월 7일 유출사고가 터지고 5~6일이 지나 매일 관광버스 10대 이상 우리 교회 앞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새벽기도 마치고 나오면 부산이고 거제도고 밤새 달려온 성도들이 있었어요. 사전교육을 하고 김밥과 라면을 먹이고, 물때에 맞춰 필요한 현장에 보냈습니다. 우리가 한국교회 죄를 닦는 심정으로 기름을 닦자고 기도하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꿈같아요.”

이 목사는 추울 겨를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듬해 5월 31일 정부가 방제작업 중단을 선언할 때까지 그는 영양제 주사를 수차례 맞아가며 현장을 누볐다. 
태배 전망대에 올랐을 때 당시 한국교회가 어떤 현장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했을지 상상이 됐다. 당시 자료를 찾아보면 한국교회는 주요 교단과 연합단체별로 11개 캠프를 운영하며, 기름띠를 닦아내고 자원봉사자에게 급식과 음료를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 

그 중에서도 의항교회는 한국교회봉사단 등 연합봉사단체의 전초기지이자 본부 역할을 했다. 한국교회봉사단,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사랑의교회 등은 상주인력을 배치해 전국에서 오는 자원봉사 신앙인들을 도왔다. 

접근조차 어려운 바위에 내려가 정성껏 기름을 닦았던 모습은 그 때 사진을 넣은 안내판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임시로 설치됐던 철제계단은 철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위험한 계단을 그 때 우리 성도들이 수없이 오르내렸을 것이 그려진다. 

모두가 만들어낸 기적, 하나님이 완성

의항교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벗고 간 장화를 정리하는 데만도 보통 2~3시간 걸렸다고 한다.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국교회 성도들이 태안으로 달려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암담했다. 말이 기름 제거이지, 장비를 투입하든지 수작업으로 하든지 160Km가 넘는 해안선을 닦아낸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당장 생업을 잃어버린 어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보상절차도 막막했고, 급기야 희망을 잃은 주민들 가운데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그 첫 자살자가 의항리에서 나왔던 것은 이광희 목사에게 지금도 가슴 먹먹한 일로 기억된다. 

희망은 예상 밖으로 빨리 찾아왔다. 2008년도 가을이 되자 꽃게잡이는 풍성했다. 피해 여파로 소비자들에게 팔리지 않는 것이 문제였지만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전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 

어쩌면 5월 31일 방제작업이 종료될 때까지 6개월 동안 자원봉사자들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고통은 더 길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 매일 돌 하나를 닦은 셈이다. 

이후는 하나님이 하셨다. 밀물과 썰물로 모래사장을, 갯바위를 닦아내셨다. 이 목사는 혼자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매일 바다에 나가 얼마나 정화되는지를 싸인펜으로 선을 그어보았다고 한다. 

더 신기한 현상도 있었다. 기름유출 피해 당시 굴 양식장은 뿌리째 뽑힐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굴 양식은 시설비도 많이 들고 힘도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민들에게는 생업이 달린 일, 그런 양식장이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은 막막했다. 피해액 산정조차하기 어려웠고, 언제 보상금이 지급될 지도 몰랐다. 기름에 쩐 굴과 꽃게를 보니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어느 새부터 기름으로 범벅이었던 개펄이 조개밭이 됐다. 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됐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조개들이 쏟아져 나왔다. 태배 정상에서 30여미터 내려가서 닿은 갯바위에서는 썰물에 맞춰 주민들이 자연산 굴을 까고 있었다. 몽돌을 들어 굴 껍질을 깨서 먹어보았다. 짠 바닷물과 함께 신선함이 후루룩 입안으로 들어왔다. 

▲ 의항교회에 마련된 '한국교회 서해안 살리기' 전시관에는 2007년 교회와 성도들의 활동사항과 당시 사용했던 방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굴을 가지고 먹고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조개를 주셨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나가니까 하나님께서 바다에서 다른 걸로 채워주셨다고 주민들에게, 교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보상을 못받아도 그렇게 생각하자고 큰 소리를 쳤어요.”

이제는 주업종이 바뀌었고 수입도 굴 양식할 때와도 차이가 없을 정도가 됐다. 일을 하는데 드는 수고는 오히려 더욱 줄었다. 

이광희 목사가 더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원봉사를 하고 간 한국교회 성도들 때문에 의항리 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출석한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오고 금식하고 쌀을 들고 오고, 환자가 오고… 이것을 본 주민 열 네명이 교회에 출석했고, 이후 회개하고 천국에 가신 어르신도 있었다. 

칠흑 같은 기름덩어리 속에서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한국교회는 희망을 닦았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희망의 열매를 맺도록 인도해주셨다. 10년 전 무명의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올해 세상을 향한 한국교회의 섬김이 이름과 빛 없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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