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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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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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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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낙심하지 맙시다 / 고린도전서 15:57~58 / 찬송 543장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꿈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늙은이들도 꿈을 꾸게 됩니다. 꿈은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꿈은 미래를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꿈을 성취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낙심입니다. 낙심이란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용기와 희망,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로 삶에 의욕을 상실한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맙시다. 좋은 일을 하고 착하게 살고, 믿음으로 사는데도 축복된 결과가 없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갈6:7, 갈6:99, 고전15:58).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나의 때에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내가 필요하다고 해서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응답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기에 겸손히 기다려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 낙심하지 맙시다(약5:11). 욥은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최악의 재난과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1:20-22) 이유 모를 재난과 고통이 올지라도 낙심하면 안 됩니다. 

실패의 때에 낙심하지 맙시다.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어려움을 만나면 낙심하게 됩니다. 꿈과 현실의 차이가 크다고 느껴질 때 또 낙심합니다. 실패할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실패를 통해서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도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박경배 목사/ 송촌장로교회
 

화요일 / 이 시기를 아십니까? / 로마서13:11~14 / 찬송 523장

우리는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는 모든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6)’ 하신 말씀도 믿습니다. 따라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음(전3:1)’을 인정합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 때를 분별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말씀을 받는 때가 자다가 깰 때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더욱 주님께서 역사를 완성하실 때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왔음을 고백치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과거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 행하던 곧 어둠의 일을 과감히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빛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방탕하게 하지 않고, 정욕을 위해 살지 않으며, 육에 따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곧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의 성자 성 어거스틴을 변화 시킨 말씀으로도 유명한 이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대의 징조가 마지막의 끝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 주님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도 더욱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항상 고민하며 주의 신실하신 말씀에 잇대어 살아가기를 힘쓰는 거룩한 순례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 때를 온전히 분별하고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도록 거룩함으로 깨어 있게 하옵소서!
고혁성 목사 / 염광교회
 

수요일 / 하나님의 자녀 / 요한복음 1:1~13 / 찬송 40장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다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요 1:1). 이 말은 하나님이 계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와 언제나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요 10:10). 예수님은 자신이 하는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죄와 사망을 이깁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능력과 기쁨, 생명과 소망을 줍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주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줍니다(빌 3:20).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됩니다(엡 2:8-9).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의 죄 값을 용서해 주기 위함입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는 자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은혜와 능력과 생명과 복을 공급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은혜와 능력과 복을 주옵소서.
이규환 목사 / 목양교회
 

목요일 / 가려진 진실 / 누가복음 18:9~14 / 찬송 305장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있습니다. 쓸 데 없는 말입니다.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마6:7). 중언부언의 뜻은, 했던 말을 되풀이 하거나 주문(呪文)을 외우듯 웅얼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주절거리는 것도 중언부언입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하지 않아도 되는, 쓸 데 없는 말잔치 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마6:4) 기도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많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두 사람 모두 죄인인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세리는 공식적인 죄인이고, 바리새인은 사회적 신분으로 죄가 가려져 있습니다. 세리는 자기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지만, 바리새인은 모릅니다. 죄인인 줄 모르는 데서 위선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이 나열한 토색과 불의, 그리고 간음하지 않았다는 것과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죄는 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약2:10,11). 자기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세리의 눈 속 티는 봅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려는 사람은, 사소한 것들도 자기 의로 삼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오늘날에는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바리새인은 세리가 자기와 같지 않아서 비난했지만, 하나님은 바리새인이 세리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줄 아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성령이 가르쳐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셔서, 올해도 주님 의지하여 겸손히 살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 / 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 생기가 있게 하라 / 에스겔 37:1~14 / 찬송 428장

생기란 히브리어로 “루아흐”로 바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생기요 성령의 바람입니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하나님에 이끌려 뼈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마른 뼈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떠나 우상을 숭배함으로 인해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한 후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켰습니다(겔37:11).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뼈들이 움직이며 연결되고 살이 생기고 힘줄이 생겼습니다(겔37:7-8). 

에스겔이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니 죽은 영들이 살아났습니다.(겔37:9-10) 성령의 바람인 생기가 들어가자 죽음의 골짜기가 생명의 골짜기로, 절망의 골짜기가 소망의 골짜기로 바뀌었고 악한 영과 싸우고 죄와 저주와 사망과 싸우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군사입니다.(엡6:12) 우리의 싸움은 승리가 보장된 싸움입니다. 우리의 대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저주와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기도하는 중 성령님이 그들 가운데 바람처럼 임했습니다(행2:2-4). 성령의 바람이 불자 3000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세상은 죄와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지만 성령의 바람이 불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성령의 바람인 생기는 죽은 영을 살리고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냉랭한 믿음을 뜨겁게 하고 전도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적인 생기가 넘쳐나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성령의 바람으로 영적 충만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널리 전하는 자들 되게 하소서.
한용준 목사 / 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 열리는 삶을 위하여 / 여호수아 6:1~7 / 찬송 347장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문들을 만납니다. 그래서 난관을 만나면 “인생의 문이 닫혀 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도 문이 닫힌 이야기로 시작합니다(수6:1). 이렇게 굳건히 닫힌 우리 인생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약속이면 반드시 열립니다(2절). 하나님은 여리고를 이미 여호수아에게 “넘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완료형입니다. 너희가 잘 싸우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전에 이미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와 싸우기도 전에 이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둘째, 순종하면 열립니다(3절). 완전 무장한 여리고에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을 돌라는 명령에 순종했고 그 날에 여리고는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가 입니다. 신앙의 문제는 결국 순종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셋째, 말한 대로 열립니다(10절). 여리고 문이 열린 마지막은 언어였습니다. 여리고성을 도는 동안 하나님은 침묵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달리 원망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원망하면 하나님이 일하지 않습니다. 원망하고 싶을 때는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사람을 실족하게 만드는 것,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살리는 것도 말의 능력입니다. 믿음의 사람답게 믿음의 말을 하므로 닫힌 인생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하는 말 대신 믿음의 사람답게 믿음의 말을 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 / 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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