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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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이다
  • 조성돈 교수
  • 승인 2017.12.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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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한 해가 저문다. 이 시점 올해는 감사하다는 표현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다. 1년 전 우리는 국회에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 추위에 몇 달 동안 거리를 메우며 촛불을 켠 결과였다.

하루하루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비리와 추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었다. 때론 의심했고, 때론 설마하며 아니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두 진실로 나타났다. 그리고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 결과는 결국 헌법재판소의 과정을 거쳐 올해 3월 완전한 파문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항상 12월에 한파 속에서 치러야 했었던 대통령 선거를 완연한 봄빛인 5월에 치렀다.

국내적으로 이런 혼란 속에서 지낼 때 북한은 끊임없이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병행하며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여기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나타나며 전쟁의 분위기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우리는 피해의 당사자이면서도 핵문제의 과정에서는 소외되었다. 내부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웠던 탓도 있겠지만 북한과 미국의 격한 격돌 속에서 끼어들 자리를 못 찾은 탓도 있을 것이다.

혼란과 위험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새롭게 시작된 정부는 아직 안정을 못 찾은 것 같다. 거기에 한반도의 전쟁은 임박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무언가 직접 우리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지는 않지만 일촉즉발의 위험은 산재해 있다. 그래서 감사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한국교회도 수많은 지뢰밭을 지났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빛을 바랠 정도로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지난 종교개혁 주일에 강단에 장식된 ‘500’이라는 숫자를 보며 장탄식을 했었다. 변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500번째 종교개혁이 아니라 500년 된 종교개혁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개신교회는 항상 개혁하는 교회로, 종교개혁 주일이 되면 또 한 번의 종교개혁을 맞이해야 할 것인데, 그래서 500번 째 종교개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500년 된, 그래서 꽤나 오래된 종교개혁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부끄럽지만 500년 된 우리 자신이 이미 개혁이 대상이 되고만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긍휼하시다. 이런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지난 1년도 그렇게 힘들었건만 많은 교회들이 다행히도 한 해를 감사로 보내게 해 주신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에 사랑하는 목회자들과 만나 보니 그래도 한 해가 감사하고, 내년에 또 새롭게 이룰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격하고 있다. 그저 속 좁은 인간들만 안달복달이지 주의 교회는 건실하게 서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서울에 눈이 정말 펑펑 쏟아졌다. 한강변에서 점심약속에 있어 나갔는데 인적 드문 그곳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곳은 지난 몇 년간 내가 사역하고 있는 라이프호프에서 걷기대회를 한다며 초가을 땀 꽤나 흘렸던 곳이다.

그래서 그곳을 갈 때면 애환과 함께 감사, 그리고 그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기억들이 서린다. 그런데 그곳에 눈이 쌓이고, 인적마저 없으니 딴 세상 같다. 그 세찬 겨울의 강바람에도 불구하고 포근함과 따뜻함, 심지어 감사와 평안이 느껴졌다. 주의 ‘샬롬’은 이 흰 눈과 같이 이 세상을 덮는다.

비록 한 해를 보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수많은 위험과 사건 속에서 지나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감사와 위로를, 그리고 평안과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성탄절이다. 이 땅에 평화로 오신 주님을 맞이하는 날이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과 공포 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가 주신 그 평화로 다행을 감사로 맞이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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