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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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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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1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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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성령충만, 은혜 받는 비결 / 사도행전 10:23~33 / 찬송 190장

사람이 철이 들어야 사람 노릇하듯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성도 구실을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말과 행동, 생각이 아름답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은혜 받은 증세가 나타납니다. 깨달아 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죄인 됨이 깨달아 집니다. 

나의 부족함이 깨달아 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감사해서 울고 나의 죄인 됨이 너무 추해서 자복하고 회개하며 웁니다. 믿음의 눈이 뜨이고 믿어집니다. 땅의 것만 보던 눈이 하늘의 신령한 것이 보이게 되지요.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생기고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됩니다. 삶의 방식과 목적, 가치관 인생관이 변화됩니다. 사명이 깨달아 집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사와 이적, 은사가 주어집니다. 병마가 물러갑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시107:9),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그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며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시42:1-2).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보채듯이 행동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교만입니다(욥1:3).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모릅니다. 교만하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모하고 겸손하여 성령 충만 받을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경배 목사 / 송촌장로교회
 

화요일 / 믿음의 결단 / 다니엘 1:8~9 / 찬송 595장

어린 시절 다니엘은 엄청난 혼돈과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유다의 패망과 바벨론 포로로 가족과 생이별을 했고 볼모로 바벨론 왕궁에 들어왔습니다. 

먹고 마실 것은 풍성하고 값비싼 옷은 제공되지만 온갖 권무술수가 난무하고 감시하는 곳입니다. 조금이라도 바벨론에 위협이 되면 언제든지 가차 없이 제거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왕이 제공하는 고기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채식을 요구하는 것은 목숨을 건 도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뜻을 정한 것은 당시 왕에게 바치는 모든 음식과 음료는 신전을 거쳐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입니다. 유다의 패망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하나님을 곁에 두고 우상을 섬겼던 것임을 판단한 다니엘은 그냥 환경에 밀려 따라 갈 수는 없었습니다.

믿음의 지조냐? 환경에 타협할 것인가? 목숨을 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인가? 그는 무모해 보여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무정의 도시에서 다니엘은 그의 뜻을 세 친구들과 나누었고 그들은 함께 그들을 관장하는 환관장에게 요청했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모두가 현실에 타협하고 환경에 매몰되는 때에 삶의 기준점을 하나님께로 선명하게 정하고 그것대로 행동했습니다. 우리 안에 일깨우시는 성령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현실의 난관 때문에 포기하고 맙니까? 마음으로 결심만 하는 바보가 아닌 실천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일꾼이 됩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우리의 선명한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게 하옵소서!
고혁성 목사 / 염광교회
 

수요일 / 여호와 삼마 / 에스겔 48:35 / 찬송 384장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마치 마른 뼈와 같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 가지 희망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에스겔에게 마른 뼈도 다시 살아나 큰 군대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자체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전의 회복을 통한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으로 보는 성전은 없어졌지만 에스겔을 통하여 성전이 다시 세워질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말하면서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을 떠나 우상 앞으로 갔고, 세상의 왕들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성전에 하나님이 계심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사 7:14, 마 1:23). 임마누엘은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라도 오셔서 위기에 빠진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여호와 삼마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며 항상 내 편이 되어 나를 돕는 하나님입니다(시 118:6-7). 여호와 삼마는 영원히 자기 백성과 함께 하고, 우리 교회와 함께 하고, 우리 가정과 함께 하고, 우리 민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저와 자녀가 교회를 통하여 주님이 함께 하는 것을 알게 하소서.
이규환 목사 / 목양교회
 

목요일 /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 / 요한복음 9:1~3 / 찬송 366장

어려운 이웃들을 가까이 두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태도를 보려는 것입니다(잠19:17).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것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두십니다.

한 맹인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를 보고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 죄로 인한 것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부모 때문인지 아니면 그 자신 때문이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태아가 모태에서도 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니면 맹인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해 맹인으로 태어났다는 말인지, 맹인으로 태어났기에 그를 통해 이제 하나님을 나타내게 되었다는 말인지 애매모호(曖昧模糊)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맹인 된 원인에 있지 않습니다. 관점을 과거에 두지 않고 미래와 현재로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맹인을 만났으니, 이 맹인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자(요9:4)고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맹인을 만나면 사람들마다 “재수없다!”는 말로 그 마음을 후볐습니다. 굳이 맹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어려움과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십니다. 어느 때보다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하는 연말입니다(약4:8상).

•오늘의 기도
주님, 그동안 가까이 대하지 못했던 불우한 이웃들에게 내 마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 / 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 가시에 얽힌 비밀 / 고린도후서 12:7~10 / 찬송 342장

가시가 있으면 기도하게 됩니다. 바울은 가시 때문에 세 번씩이나 특별하게 시간을 내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를 제하여 주시지 않는 이유를 알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교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고후12:1-4).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체험하게 되면 교만해질 위험이 높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우쭐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가시를 빼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아무 유익이 없고 고통만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을 알았고 가시가 그대로 있음을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말씀을 들은 후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고 그로 인해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만일 바울에게 가시가 없었다면 교만해졌고,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계속 그에게 머물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가시의 유익한 역할을 알고는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불평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면 반대로 원망이 감사로 바뀌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있는 가시를 기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려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늘 겸손하게 하시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용준 목사 / 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 부르시는 하나님 / 베드로전서 2:9~12 / 찬송 528장

인간 구원의 시작은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하여 사람을 부르시지만, 아무나 부르지 않고 택하신 자만을 부르십니다(벧전2:9). 구원은 나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두움에서 놀라운 빛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사람의 부름은 인간을 불행의 늪으로 빠뜨리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온전케 하는 복된 부르심입니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의 궁극은 구원입니다. 구원이야말로 우리 인생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신분의 변화입니다. 전에는 하늘 호적이 없었는데 이제 하늘 호적이 생긴 사건이 구원 사건입니다. 호적이 없다는 것은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부르심을 듣고 따라가기 위해 이 땅의 거류민과 나그네와 같이 살 것을 명합니다(벧전2:11). 우리는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주인 노릇하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은 본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들처럼 잠시 사는 곳에서 너무 욕심 내지 말아야 합니다. 

여행자들은 짐이 단출합니다. 여행객처럼 살면 이 땅에서 자유롭습니다. 굳이 사람에게 목을 매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의 기준이 자기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이런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늘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 성령을 따라 행하므로 세상 가운데 생명의 빛을 비추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 / 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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