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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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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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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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사무엘상 12:1~5
찬송 449장


본문은 사무엘의 고별사입니다. 3절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는 그가 지켜온 인생의 원칙이요 신앙의 모토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라틴어로 ‘코람 데오’(Coram Deo)입니다.
‘코람 데오’는 장 칼뱅이 신앙의 모토로 삼은 말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Coram Deo’라는 말을 많이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세시대의 교회가 너무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제에 종교 개혁자들은 뭐라고 생각했느냐? 나는 언제나 ‘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권능의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사무엘은 ‘지는 해’였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뜨는 해’였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살아있는 권력과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사무엘이 어떻게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아닌 권능의 하나님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았습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임재 앞에 서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의 늪에 빠져 초라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고 정직하게 살게 하옵소서.

박경배 목사(송촌장로교회)

화요일

오십 이 일의 기적!

느헤미야 6:15~16
찬송 430장


오십 이 일의 기적! 느헤미야와 함께 유다 백성들은 은혜의 감격에 벅찼습니다. 그 짧은 시간 그들은 기적을 일구었습니다. 70년의 복역의 때를 마치고 바벨론에서 돌아온 그들의 조상들은 성전만 재건되면 과거의 영광도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재건된 성전의 초라한 모습처럼 그들의 삶도 초라했습니다.
2차 귀환 때 에스라가 와서 말씀의 개혁을 일으켰으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곤고하고 처참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도적이나 짐승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었던 그들이 어떤 역할과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단 말입니까? 문제의 원인은 다 알고 있어도 그것을 누구 하나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깨닫고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던 느헤미야를 통해 왕과 백성들을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것도 오랜 기간 동안 전혀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을 무려 오십 이 일 만에 완성합니다. 기적입니다. 느헤미야 자신과 제사장들, 귀족까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자신이 맡은 구역의 임무를 완수합니다. 믿음으로 함께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무너진 성벽이 세워지고 불에 탄 성문이 다시 세워질 때 위태했던 그들의 삶도 또한 든든히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겉만 세워졌다고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라와 함께한 말씀 안에서의 개혁은 신약의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게 합니다. 지금 바로 이런 개혁이 나로부터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이제 다시 오십 이일의 기적을 향해 나아갑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 땅에 무너진 신앙의 터전과 사람의 방식이 말씀 안에서 새롭게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게 하소서!

고혁성 목사(염광교회)

수요일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예레미야 2:13
찬송 292장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과 자신의 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야 물 댄 동산과 같은 복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 된다는 말씀은 생명의 본체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생수의 근원이라는 말은 물이 나오는 샘물과 같음을 말합니다. 웅덩이의 물은 고여 있는 물이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없어지는 물입니다.
모든 식물도 물의 공급을 받아야 하듯이 사람도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복과 능력을 공급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파고 사는 사람은 좋은 일을 볼 수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떠나 저주를 받는 사람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물가에 심어지고, 뿌리가 강변에 뻗어 있다면 더위가 오고, 가뭄이 와도 잎이 청청하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심겨진 인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 심겨지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물 댄 동산과 같이 만들어 줍니다. 물 댄 동산과 같으면 여호와의 복이 임하여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습니다. 물 댄 동산과 같아지면 하나님의 복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족하게 됩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의지하며 살아가면 물 댄 동산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하여 임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나와 자녀가 주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삼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규환 목사(목양교회)

목요일

풀과 꽃은 시들지만

예레미야 36:21~26
찬송 205장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전한 말씀을, 서기관 바룩이 두루마리에 기록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왕의 억압으로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담긴 두루마리 말씀이 여호야김 왕과 모든 방백들에게 낭독합니다.
예언을 들은 여호야김의 반응이 충격적입니다. 선왕이었던 요시야는 성전 수리 중에 발견한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이 읽을 때, 애통해 하며 옷을 찢었습니다(왕하22:11). 그러나 그 아들 여호야김의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무릎을 꿇거나 자기 옷을 찢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섬짓하게도 칼로 두루마리 말씀을 베어 화롯불에 태웠습니다. 나아가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두루마리에 담긴 내용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다 땅은 사람과 짐승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되리라는 것입니다(29절).
이후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여호야김의 최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도 여호야김 왕같은 망동(妄動)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회개나 복종에 관한 말씀은 제쳐두고, 전하기에 부담 없고 듣기에 좋은 말씀만 고르는 것이 그와 다를 바 아닌 것입니다. 거짓 설교자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사40:8) 그대로 전하기보다 청중들의 구미에 맞추려고 합니다. 복만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자로서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입니다(렘28:15,16).

•오늘의 기도
주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어떠한 말씀이든 순종하게 하소서. 주의 말씀은 영원하니이다!

최두길 목사(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광야의 축복

출애굽기 15:22~27
찬송 390장


하나님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후 홍해를 건너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입니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으로 시원하게 해주시고 밤에는 불구름에서 따뜻하게 해주셨습니다.
홍해를 건넌 첫 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걸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도 광야길이 계속되자 불안해졌습니다. 삼일 째는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처음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기쁩니다. 모든 것이 형통해질 것으로 생각하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낙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감격에 젖어 있는 백성들을 왜 광야로 인도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시련이 닥치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모르다가 역경을 만나면서 하나님 앞에 낮아집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평탄한 삶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지만 한계에 부딪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셋째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신8:2~3)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씀 안에 가야 할 길이 있고 생명이 있고 참 복이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개조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셨고 영의 눈을 뜨게 하셨고 십자가의 능력을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한용준 목사(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요한계시록 2:8~11
찬송 323장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7교회 중 서머나 교회는 책망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였습니다.
서머나는 로마 황제 숭배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서머나 사람은 누구라도 일 년에 한번은 의무적으로 황제를 섬기는 신전에 올라가서 그곳 제단에 분향하면서, “가이사는 나의 주(主)이십니다”라고 맹세한 뒤 증명서를 발급받고 난 다음 각자 자기의 신을 마음대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증명서가 없는 사람은 로마에 대해서 반역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처형을 당했습니다. 자연히 서머나 교회는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예수님을 위하여 겪고 있는 세 가지 아픔을 알아주시면서, 그들을 인정해주시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그들의 환난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들은 결코 가이사를 자신의 주라 고백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님만 섬기므로 숱한 환난을 당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들의 궁핍도 알아주셨습니다. 그 당시 서머나는 부요한 도시였지만 서머나 교회는 믿음 때문에 빼앗겨 궁핍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그들이 유대인의 훼방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애씀과 수고 속에 있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주님은 안쓰러움과 애정 어린 마음으로 다음 몇 가지를 명합니다. 첫째,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둘째,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예수님은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만 섬기게 하시고,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참 성도가 되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순천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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