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세계를 뛰어넘는 것이 ‘오직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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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세계를 뛰어넘는 것이 ‘오직 믿음’”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7.09.14 17: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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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신학위원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신학심포지엄 개최

NCCK 신학위원회(위원장:이정배 목사) 주최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신학심포지엄과 출판기념회가 지난 17일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렸다.

‘종교개혁을 이끈 세 개의 Sola교리에 대한 비판적 재조명’을 주제로 열린 이번 심포지움에서는 종교개혁의 5대 솔라 중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경’의 3가지 솔라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한편 오늘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과제를 살폈다.

▲ NCCK 신학위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신학심포지엄과 출판기념회를 지난 17일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었다.

인사말을 전한 NCCK 신학위원장 이정배 목사는 “최근 종교개혁의 신학원리, 즉 세 개의 ‘오직’교리가 중세 가톨리교회의 면죄부보다 더 타락했다는 말들이 회자된다”며, “‘오직 믿음’은 행위없는 신앙을 정당화시켰고, ‘오직 은총’은 모든 것을 가능타하여 자본주의적 욕망에 면죄부를 주었다. ‘오직 성서’는 이웃을 배타하는 근본주의 원리로 치환된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번 심포지움을 통해 루터신학 자체의 한계도 파헤치고, 오남용 된 실상도 속속들이 드러내길 원한다. NCCK 신학위원회는 ‘오직교리’의 오남용이 일상화된 기존 성직자(제사장) 중심의 기독교 체제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직 믿음으로’의 의미를 바울의 서신서를 중심으로 살핀 김희헌 박사(향린교회, 조직신학)는 “바울에게 ‘믿음’이란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헌신과 참여를 의미한다. ‘믿음을 통해서, 은총에 의해서 의롭게 된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의 골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교리주의적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라는 바울의 주장을 오해했다”며, “그들은 율법은 유대적인 것으로 보고 은총은 기독교적인 것으로 봤다. 더 나아가 행위와 믿음을 구분해 가톨릭을 행위의 종교로 보고, 개신교를 믿음의 종교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울에 대한 오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세계를 ‘믿음으로’ 뛰어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 김 박사는 “믿음이란 행함과 분리될 수 없다. 바울은 과거 바리새인이었지만, 믿음으로써 자기 시대의 율법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었다”며, “이러한 바울의 정신이 종교개혁운동을 이끌었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정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호경 박사(서울장신대, 신약신학)는 루터가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오직 성경’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김 박사는 “중세시대 일반 사람들은 성경을 볼 수 없었고, 당시 라틴어 성경이 공인된 성경으로 사용됐지만, 이마저도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없는 언어였다. 로마교회만이 성경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가졌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된 성경의 권위를 자신들과 연결시키는 것이 교회와 교황을 지탱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고 전했다.

당시 루터는 교황이 성경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와 교황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와 교황이 성경의 해석을 독점할 수 있다는 내용은 성경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김 박사는 “루터가 강조한 ‘오직 성경’은 성경 자체만을 강조하는데 그 의미가 있지 않다. ‘오직 성경’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교황과 교회에 반대하는 것이었고 그 반대를 모든 이들이 자유와 해방으로 이끌고 간 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당시 루터는 ‘오직 성경’이라는 슬로건으로 자신이 서있던 사회적 종교적 환경을 뒤집어엎는 전복적인 힘을 발휘했다”며,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경을 통해 인간의 불의를 폭로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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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7-09-14 23:46:51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현세의 부귀영화는 중요한 의미가 없다. 성직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구도자들이 경전이나 명상에만 의존해서 우주와 생명의 본질을 탐구했기 때문에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들의 탐구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와 종교학자도 유능한 학자로 출세하기 위해서 무비판적이며 맹목적으로 기존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만 치중하므로 학문의 오류를 탐지하지 못한다.

인간의 장기가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면 원래 주인의 생명과 상관없이 생명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의 주체에 의해서 통제되는 단일생명체인가 아니면 여러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는 집단생명체인가? 기존의 과학과 종교이론을 180도 뒤집는 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와 종교학자들이 반론을 못한다. 이 책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

아인슈타인의 공식(E=mc^2)이 옳다면 물질양자가 소멸하면서 에너지양자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양자가 다른 양자로 변할 때에 양자는 더 작아질 수 없으므로 변화의 과정이 없이 변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우주의 모든 변화는 양자의 위치이동(결합이나 분해)에 불과하며 진정한 변화(양자의 소멸과 생성)는 창조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므로 불가능하다. 핵반응에서 나오는 열(에너지)은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상관없는 다른 방법으로 생성된다.

기독교인들이 비성경적으로 행동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비판은 성경이 진리일 때만 가치가 있다. 성경이 진리가 아니라면 성경을 근거로 그들의 행동을 비판해야할 이유도 없다. 기독교인들이 수천 년간 비성경적으로 행동해도 왜 하나님이 그것을 방치하고 있을까? 세월호처럼 안전 규칙을 안 지키면 기독교인들도 사고가 난다. 기독교인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확률로 암이 걸린다. 하나님은 공평한 건가? 아니면 기독교에 무관심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