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슬픔이 씨앗되어 희망의 싹이 돋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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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슬픔이 씨앗되어 희망의 싹이 돋아납니다“
  • 승인 2004.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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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8일 오전 9시 52분경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딸 : 엄마! 지하철에 불 났어. 엄마 : 희정아! 침착해라. 떨지말구… 손수건으로 입막고, 몸을 낮춰라… (다급한 목소리로)주변에 사람들 없니? 딸 : 엄마! 전부 다 갇혔어… 엄마 : 희정아! 유리창을 빨리 깨!

- 1~2초간 침묵 - 딸:엄마! 나 죽나봐…. 엄마, 사랑해. - 뚜~ 뚜~ 뚜~ 얼마나 우리를 안타깝게 울렸던 대화인가. 지금 우리의 딸들은… 우리의 부모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삶 속에는 속히 잊어버려할 일들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있다.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 났었던 지난 2003년 한 해. 다시금 갑신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는 잊지않고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한 인격장애자의 방화가 불씨가 된 대구지하철 참사. 사망 192명, 부상 14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의 사건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사랑하는 딸을 잃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세아이들의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의 현장.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지금 다시 희망을 찾아 내달리는 전동차 소리가 울려 나고 있었다. 눈물과 슬픔이 씨앗이 되어 희망이라는 싹을 돋아내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 많은 곳, 슬픔이 어려있는 대구 지하철에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10개월 반만에 ‘뿌우~~’하며 다시 전동차가 달리는 대구 중앙로 지하철역을 찾아 공사 마무리 단계부터 전동차가 첫 출발하는 순간을 들여다 보았다.

# 12월 26일 PM6:00 한낮에 서울을 출발해 석양이 저무를 즈음에나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 도착하게 됐다. 지하철 입구 바로옆 아카데미극장계단에서는 친구와 연인을 기다리는 이들, 지체되는 도로위 버스안에서 바깥풍경을 바라보는 이들, 시린손에 연신 호호 입김을 뿜으며 걸어가는 사람들, 연말 만큼이나 걸음도 빨라져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람들만이 분주해 보였고 중앙로역은 평화를 찾은듯 고요했다. 모든것이 제자리를 잡아가는듯.

중앙로역은 지난 7월 10일부터 본격 공사에 들어가 현재 99%의 공사진척을 보이고 있다.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아 공사 관계자외 출입이 통제 되었지만 취재협조를 구해 입장한 지하철 입구는 아직 공사의 잔재로 어수선했다. 지하철 현판은 완성되어 개통식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인부들은 전기배선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제 마무리 짓는 단계란다. 지하 1층에서 공사 책임자와 만나 설명을 듣는 동안 지금 서있는 현실과 불과 몇 개월전의 방화참사가 오버랩 되면서 묘하게 가슴이 시려왔다. 전기기술자들의 손에서 ‘치익~~’하며 내뿜어져 나오는 용접냄새가 꼭 사람 살이 타는 냄새처럼 느껴졌고, 구멍을 뚫기 위한 드릴 소리는 마치 당신의 딸이, 아버지가 갇혀서 나오지 못해 울부짓는 소리로 들려오는 듯 했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얼마나 갑갑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사고의 순간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한 계단 한 계단을 더 내려가니 아수라장이었던 지하철 승강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여느 지하철 승강장과 다를 바 없이 깨끗했다.

한참 설명을 듣고 있는데 전동차에 탑승해 있던 승객과 눈이 마주칠 정도의 속도로 전동차 한대가 중앙로역을 통과 했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지난 10월 23일부터 통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승강장 공사 또한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 12월 29일 AM9:00 ‘쿵쾅쿵쾅’이른 시각부터 또 공사가 진행됐다.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은 현재까지 국내에는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 초입에 수막설비를 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비가 오거나 오염물질의 진입을 막는 수막시설은 뜨거운 열기도 차단할수 있다는 검증을 받았다.

또 역사내 소화전의 갯수도 많이 늘어났고 승강장 바닥타일도 피난보조시설인 ‘축광성 야광타일’을 설치했다. 야광타일은 화재시 모든 전원이 단전되고 연기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아도 승객들을 출구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사가 척척 진행되는 모습이 더욱 기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떤 일이든지 항상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했던가. 사고당시 중앙로역을 금방 지나간 전동차안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은 사고를 면해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렇다면 중앙로역에서 승차해 대구역방향으로 가려던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아 사고를 당한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면서도 이따금씩 이해하기 힘든 안타까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사고 현장에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신앙인이 있었으니 IVF(한국기독학생회)대구 남지방회 故허현 간사(27)다. 허간사는 바로 사고당일 IVF 리더모임을 인도하기 위해 직접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로 가던중 차량지체가 심해 반야월역 부근에 차를 주차시켜 두고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변을 당한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의 납골당에 다녀왔다는 허간사의 어머니는 “우리 현이(허현간사)는 원래 지하철을 잘 타지 않았었는데…”라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10개월이 지난 지금에 세간의 사람들은 벌써 기억 너머로 잊었건만 유가족들의 마음은 생을 마칠때까지 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을 터….

“당시 현이의 동생도 의무경찰이라 통제와 화재진압을 위해 중앙로역에 있었어요. 나중에 형이 사고를 당한 사실을 알고 그 녀석이 더 괴로워 했죠.… 저도 여지껏 남의 일들로만 겪어오다 직접 화를 당하니 너무 속상하고 억울하더라구요. 지금까지도 매일 울며 그리워 하고 있어요. 처음엔 교회도 이젠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먹었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나라 일하는 우리아이 데려가지 않을 것 아니냐고, 왜 데려갔냐고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요. 이제 곧 며칠만 지나면 우리 현이 생일(1.14)인데….” 너무나 안타까웠다.

더욱이 가족사랑이 절실해지는 연말연시에 다시 한번 아픔의 기억을 되돌려 놓은 것 같아 죄송스럽기 그지 없었다.

# 12월 31일 AM05:20 신년을 하루 남겨두고 새 희망을 전하기 위해 전동차는 출발했다. 오직 새희망의 기쁨만을 실은 채. 하지만 지하철공사는 아무런 행사도 없이 첫 차에 관계자만 탑승한 채 그렇게 조용히 중앙로역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전동차 발차역에서 출발후 20여분이 조금 지나니 도착했다. 바쁜 걸음들이 내리고 타더니 곧 출발한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 2004년 1월 1일 AM10:00 새해 아침이 밝았다. 지하철 중앙로역 앞에서 아르바이트출근을 위해 바쁘게 지나는 대학입학예비생 박지인(19·동산교회)양과 만났다. “이제 다시는 대구에 불행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오긴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가 보더라구요. 조금 이상했어요. 그렇게 서로가 울며 고통스러워 했는데,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요. 불과 얼마전에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는데….”

지독한 화열에 의해 녹아내린 천정의 긴 쇳덩어리 전차선도, 다 타버려 뼈마디만 앙상했던 선로위의 전동차도, 그속에서 뜨거워 절규하던 사람들도 이젠 없다.

새 출발하는 이곳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까?

한사람의 실수로, 아니 우리 모두의 실수로 일어난 참사는 유가족들만이 치러야하는 아픔일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야 할 우리도 벌써 잊어버린지 오래다. 타도시에 비해 유독 많은 대형참사를 인고해 온 화불단행(禍不單行)의 도시 대구.

그리고 시민들. 이제 대구에 더이상 방화가 아닌, 성령의 불이 뜨겁게 퍼져 하나님이 쓰시는 대구,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대구광역시가 되길 소망한다. 시커멓게 그을렸던 전동차는 이제 새 옷을 입고 중앙로역에서 희망의 경적을 울리며 힘차게 출발한다.

<대구=송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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