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능력으로 사회적 책임 실천하는 교회 되어야”

종교개혁 500주년 특별기획//종교개혁의 의미(하) 사회개혁으로서의 종교개혁 정하라 기자l승인2017.09.06l수정2017.09.06 17:07l1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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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교회는 재도약과 후퇴의 기로에 서 있다.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회의 진정한 변화를 촉구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달로 95개조 반박문이 전 독일에 퍼지게 되면서 시민의 지지를 받은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종교개혁의 물결을 일으켰다.
루터 종교개혁을 배경으로 태동한 개신교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이 무색할 만큼 사회적 신뢰를 잃고, 세상 속에 빛과 소금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본지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배경과 영향을 조명하는 한편 오늘날 한국교회 개혁을 이루기 위한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세에서 근대로…전환기의 역사적 사건

루터의 종교개혁은 종교의 자유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루터가 죽은 후에도 그의 신학적 운동은 계속 퍼져나가 전 유럽을 바꾸어 놓았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중세 기독교 자체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게 되는 과정에서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렇기에 종교개혁을 통해 일어난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 중세 말 가톨릭은 종합적인 역사적 위기 속에 있었다. 수도원 운동의 동력은 이미 오래 전 힘을 잃었으며, 공의회 운동은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지켜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위클리프나 얀 후스로 대표되는 강력한 교회개혁운동은 외면했다.

그러나 십자군운동의 실패 이후 ‘교황 중심’의 체제는 무너지고 있었으며, 11세기 이후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으로 경제사회적으로는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상업도시들이 발전했으며, 지중해 무역에서 유럽의 지위는 나날이 상승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국왕은 더 이상 교황의 간섭을 받지 않는 절대주의 국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더욱 확산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의 온건한 변화를 급진적 변혁으로 바꾸었으며, 군주국가의 발전과 결부되면서 근대 국민국가의 기초를 놓았다.

▲ 제네바에 입성하는 칼뱅.

칼뱅으로 이어진 개혁, ‘자유와 평등사회’ 이끌다

중세시대의 종교개혁은 사람의 의식을 평등화하고 민주사회의 토대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1555년 아우구스부르그 의회를 통해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종교적으로도 더욱 넓은 관용을 갖게 됐으며, 계급 구조적 사회에서 성경이 제시하는 평등과 자유의 시대가 시작됐다.  

루터가 주장한 평등사상은 먼저 세 가지 장벽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독일 군주들은 더 이상 로마 교황의 지시 아래 있지 않으며, 일반 성도들도 성경을 해석할 수 있고, 교회에 문제가 있을 시 군주들도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통해 중세 시대 개인의 자유와 평등권에 대한 의식이 더욱 확고해졌으며, 신앙적 평등을 넘어 계급 타파와 평등사의 혁명적 진전을 불러왔다. 

특히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은 그의 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칼뱅(John Calvin, 1509~1564)을 통해 더욱 발전됐다. 1524년 농민전쟁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대중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크게 성공하지 못한 반면 칼뱅의 종교개혁은 서구 산업사회의 가치관과 결합하면서 유럽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칼뱅은 중세교회의 성속이원론과 사제주의에 반대했으며, 새로운 상업문명을 받아들여 부의 축적, 자유방임, 직업 소명의식의 근거를 제공했다. 

성직과 관련된 일만이 귀하고 다른 일은 천하다는 성속 이원론적 생각이 만연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종교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신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의식변화로 상인계층과 이들이 연계된 제후 세력이 성장한 반면, 당시 막강했던 교황권력은 쇠퇴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했고,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바탕이 됐다.

칼뱅에 의한 종교개혁은 신정정치를 통한 사회 개혁을 일으켰으며, 노동 및 경제정의의 실현을 야기했다. 특히 종교개혁의 요람지였던 제네바에서는 칼뱅에 의해 △제네바 시민의 신앙과 시의 윤리 및 도덕의 회복을 위해 조직된 시민법정 ‘제네바 치리회’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병원 ‘구빈원’ △프랑스 난민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 ‘프랑스 기금’ 등의 사회개혁 사례들이 하나둘씩 전개됐다.

심창섭 교수(전 총신대신대원 원장)는 “칼뱅의 종교개혁에는 시민사회 개혁적 요소가 수반됐다. 그렇기에 16세기 종교개혁은 사회 개혁과 분리된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없다”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종교개혁의 포괄적인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병든 사회’ 치료하는 교회 되어야

종교개혁 자체가 근대적 자본주의, 근대적 자유주의를 이끌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이 유럽의 사회적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중세 봉건사회에서 민주화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는데 사상적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박용규 교수(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종교개혁 시대 개혁자들이 성경을 통해 개혁의 길을 찾았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성경적 교회를 회복해야 한다”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칭의론과 만인제사장원리를 단순히 구호로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과 교회의 전반적 사역 속에 그대로 구현시켜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힘이 없는 이유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며, “한국교회 신학교육이 현장과 동떨어진 신학교육이 아니라, 현 교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교회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교회를 위한 신학’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말로만의 복음이 아닌, 복음의 능력이 사회와 삶의 현장에서 실천적 행동과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태동된 교회는 개 교회주의와 교파주의를 넘어 연합함으로써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당부도 이어졌다. 

안인섭 교수(총신대)는 “루터는 95 개조의 반박문을 통해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로하며 성경에 근거한 참된 안식과 죄 사함의 은혜를 맛볼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주었다”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그들의 아픔과 실제적 문제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해답을 제시해 주는 한국교회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정하라 기자  jhara@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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