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해야 할 자리에 있다면, 아주 신중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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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해야 할 자리에 있다면, 아주 신중하게 하라!
  • 변순복 교수
  • 승인 2017.09.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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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피르케이 아보트

유대인들이 가정이나 회당에서 2세들에게 탈무드를 가르칠 때 가장먼저 가르치는 책은 ‘피르케이 아보트’라는 이름의 책이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2세를 가르치는데 사용하는 교과서가 성경과 탈무드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성경은 기독교인들도 2세를 가르치는데 교과서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은 미루어놓고, 그들이 2세를 가르치는데 사용하는 제 2교과서인 탈무드를 읽으며 그들이 가르치는 내용과 교훈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탈무드는 6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네 번째 부분이 ‘너지킨’이다. 너지킨에 속하는 책이 10권 있는데, 그 가운데 아홉 번째 책이 바로 ‘피르케이 아보트’이다. 이 책은 토라가 어떻게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주어졌는지부터 시작하여,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은 어디서 왔으며, 지금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 책을 통하여 2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인지를 가르친다. 

탈무드에 제시된 가르침들은 지속적으로 토라를 배우는 것과 계명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써, 유대민족을 이끄는 지도자의 지도 원리와 지침이 되었다. 피르케이 아보트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토라를 받았으며, 모세는 그 토라를 여호수아에게, 여호수아는 장로들에게, 장로들은 선지자에게 그리고 선지자들은 위대한 모임의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그 위대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가장 먼저 가르친 내용은 ‘판단할 때 신중하라’이다. 이 지침은 판사들에게 내려진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모든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어진 가르침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만나는 수많은 사건이나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환경에서 순간순간 판단을 하며 살아야한다. 그 때 어떻게 판단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가르치는 구문이 바로 이 구문이다. 그러면 랍비들은 사람들이 판단할 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가? 판사가 법원에서 피고인의 죄의 유무를 결정할 때, 판사는 유사한 사건들을 여러 번 겪어보았다고 할지라도, 아주 신중하게 인내심을 갖고 증거들을 살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책망하며 ‘정의가 거기[예루살렘]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지만 지금은 살인자들뿐이로다(사 1:21)’라고 탄식했다. 

‘빌나 가온’(Vilna Gaon)은 과거에 사람들이 정의를 기대하며 예루살렘에 왔을 때, 법정은 침착하게 새로운 증거에 대한 가능성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은 판사들이 사건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마치 판단하는 사람이 살인자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어떤 주석가들은 ‘판단을 내림에 있어 신중하라’는 교훈이 의미하는 것은 판사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면 선고를 내리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피르케이 아보트 4:7을 읽어보면, ‘판단을 내리는 것을 멀리하는 사람은, 증오와 절도, 거짓 맹세에서 자유롭다’고 가르친다. 판단을 내리는 것을 멀리한다는 말은 ‘판단하는 것을 신중하게 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길이 보인다면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라는 가르침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르게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이 랍비들의 가르침이다. 랍비 ‘여호수아 벤 카르하’에 의하면, 당사자들 사이에 이익을 조금이라도 챙길 수 있는 타협점을 찾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판다이라 하였다. 

성경에도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라(슥 8:16)’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성문에서 재판하는 분위기를 보면 평화를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모임에 평화가 없다면 그것은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산헤드린 6b를 읽어보면, ‘타협점을 찾은 재판은 평화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 누가 판단을 하든,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판단은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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