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민족과 가정과 개인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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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민족과 가정과 개인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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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0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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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토라 연구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유대인의 제 2성전은 600여 년 동안 예루살렘에 세워져 있었다. 그 동안 성전은 유대인들의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기에 로마가 그들의 성전을 파괴하는 것은 그들에게 끔찍한 재앙이었다. 오늘 우리는 성전이 없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리고 2세들에게 어떻게 신앙을 전수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려한다. 

‘탈무드 토라(토라연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한 랍비로 인해, 사라질 것만 같았던 유대교는 성전이 파괴된 이 후에도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고 가르치는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랍비는 유대교를 제사장들의 ‘제사종교’에서 모든 유대인들의 ‘토라(말씀)종교’로 바꾸었다. 이 거대한 일을 이룬 랍비는 현대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한 랍비인 ‘요하난 벤 자카이’다. 

그는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랍비인데, 유대인들은 그 선생님을 ‘우리의 대 스승’이라는 말로 알려진 ‘라반’이라는 ‘호칭’을 이름 앞에 붙혀 ‘라반 요하난 벤 자카이’라 부른다. 그 시대에 로마 장군 베스파시안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선전포고했다. ‘만약 너희들이 항복하면 성전과 도시는 남겨두겠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 시대에 산헤드린 공회의 대표였던 라반 요하난 벤 자카이는 생각했다. ‘유대교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요하난은 동료 유대인들과 지도자들에게 베스파시안에게 항복하더라도 예루살렘과 성전을 지키자고 외쳤지만,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그의 말을 거부하였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그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하며 계속하여 요하난의 말을 거부하며 오히려 요하난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하난은 로마에게 항복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하였다. 그래서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설득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기 손으로 직접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요하난도 항복하지 않으려는 지도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외쳤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도 많은 사람들이 싸우기보다 항복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동요되는 민심을 잡기 위하여,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빠져나가지 못 하도록 막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 도성을 탈출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문을 폐쇄하고 아무도 성 밖으로 나가지 못 하게 했다. 하지만 라반 요하난은 미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두 명의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고 소문을 퍼트리게, 그리고 날 천으로 감싸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를 데려가게.” 그 당시, 죽은 사람의 시신은 해가 지기 전 예루살렘에서 내 보내야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요하난의 계획은 성공했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요하난과 제자들을 성 밖으로 나가도록 허락해주었고, 제자들은 그 길로 요하난과 함께 로마군의 진지로 가서 베스파시안 장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베스파시안은 요하난이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항복하자고 종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첩자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요하난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요하난은 베스파니안을 만났다. 

그 때 그는 요하난에게 물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 드리면 좋을까요?” 요하난은 대답했다. “단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야브네에 학교를 하나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오. 거기서 제자들에게 토라를 가르치고, 기도하며, 계명을 지키리이다.” 베스파시안은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오. 내가 도와 주리이다.” 

그러나 그 때만해도 베스파시안은 이 결정이 유대인들의 미래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라반 요하난은 로마군 진지를 떠나 야브네에 도착하여 학교를 세웠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진 후, 야브네는 유대교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더 이상 제사는 지낼 수 없었지만, 토라 수업은 계속되었다. 이 학교에서 라반 요하난은 제자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도 토라를 가르쳐 토라의 불씨를 살리고 토라연구를 확산시켜 나가도록 하라고 부탁하였다. 바로 이 토라학교를 통하여 유대교는 지금까지 유대인의 민족종교로 존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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