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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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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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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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바울의 사생관(3)

빌립보서 1:20~26
찬송 242장


바울은 죽음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표현이 좀 이상합니다. ‘죽음을 희생한다’ 이상합니다. 죽음을 희생했다는 말은 맡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가 간절히 소원하는 죽음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하는 소원이 있지만 다시 말해 빨리 죽고 싶지만 사명 때문에 죽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죽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지만(21절)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25절)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누르고 희생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열매를 위하여 죽는 것을 희생했습니다(22절). 내가 죽지 않고 더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죽음을 포기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관을 가진 바울, 내세관을 가진 바울에게 두려움이 무엇이며, 이기심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어떤 유혹과 위협과 협박에도 무릎 꿇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초월한 사람이기에 담대하고 힘 있게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죽음을 희생했습니다(24절). 내가 죽지 않고 세상에 더 살아 있는 것이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유익하니 내가 가고 싶은 천국이지만 그 천국을 연기하고 이 세상에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하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있습니까? 이 순교자적 삶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삶과 죽을 바라보는 사생관이 분명하게 하시고, 하늘 소망이 넘치게 하옵소서.

박경배 목사(송촌장로교회)

화요일

결심!

에스라 7:10
찬송 312장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후손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곳은 바벨론입니다. 이미 나라는 망했고 그의 선조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 제국의 여러 장소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이방 땅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기에는 정말 힘든 곳이었습니다. 폭력과 권모술수 그리고 우상숭배가 난무한 곳에서 바른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미 에스라와 같이 포로기를 전후로 살았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바사왕국의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비롯 유대인들이 겪었던 일들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스7:13)’이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와 그의 집안 어른들의 굳은 결심에 있었을 것입니다. 성전이 없는 타국, 제사를 드릴 수 없는 환경에서 제사의 제도를 익힌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하나하나 익히고 제사법을 율법에 합당하게 익숙하도록 훈련이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결심과 노력이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에스라가 또 하나의 위대한 결심을 합니다. 그것은 그의 모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그곳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율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만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고 부흥되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는 주님! 주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며 순종함으로 삶의 개혁을 일으키는 위대한 결심을 허락하옵소서.

고혁성 목사(염광교회)

수요일

아버지의 마음

누가복음 15:11~24
찬송 304장


예수님은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아버지는 살림을 나누어 주는 분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달라면 주시는 분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 자기에게 올 재산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달라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재산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달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는 분입니다.
둘째, 아버지는 다시 받아주는 사랑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갖고 나간 아들은 허랑방탕하게 사용하여 다 탕진하였습니다. 아들은 죽게 되었을 때에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런 아들을 받아 줄 수 있는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이런 아들까지도 받아 줄 수 있는 아버지 중의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런 사랑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아버지는 제일 좋은 것을 주십니다. 아버지는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받아 주고 제일 좋은 것을 주었습니다. 아들이 잘못했다고 말하기 전에 아버지는 이미 아들을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너를 품어주고 싶지만 네가 너무 더러워서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은 아버지께 구하여 좋은 것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부모님을 사랑하고 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아버지에 풍성한 사랑이 있음을 알고 그 복을 받으며 살게 하소서.

이규환 목사(목양교회)

목요일

누구냐

마가복음 5:25~34
찬송 287장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해지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 중에 병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이 있으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구경꾼들도 따랐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둘러쌌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밀치고 떠밀렸습니다. 서로 예수님 몸에 손을 대고, 옷자락을 만지는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돈도 다 까먹었습니다.
그녀도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대열에 끼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인기에 따른 팬(fan)의 입장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실 생명의 주로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보다 부정한 죄인인 줄 알아서 나서지 못하고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집니다. ‘옷에 손만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가시던 예수님이 돌연 멈추시고 뒤돌아보시며 “누구냐!”고 하십니다. 손 댄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옷에 손을 댄 자가 아니라 병이 나을 줄 믿고 겸손히 손만 내민 너는 내 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소외되었던 병 들었던 딸을 드러내십니다. 특별한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냐?”고 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 자신이 구원받은 특별한 삶을 살게 하셔서 주님을 드러내게 하소서!

최두길 목사(아름다운미션교회)

금요일

조화를 이루자

빌립보서 2:1~8
찬송 327장


사람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며 살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조화를 깨뜨리고 마귀를 따라감으로 인해 천하고 더러운 자가 되었습니다. 멸망할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구주로 믿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생명을 얻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게 해주셨습니다.
나 혼자 신앙생활 하겠다는 자세는 좋지 않습니다. 좋다란 조화롭다는 단어에서 나왔고 나쁘다란 나뿐이다 에서 나왔습니다.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누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조화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쁜 결과가 나옵니다. 비록 부족하고 흠이 많아도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면 결과가 아름다워집니다. 
둘째 믿는 자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조화하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고 그것도 섬기는 종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신이요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요 주님은 의로우십니다. 우리는 더럽고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때문에 조화가 불가능하지만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심으로 우리와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조화하고 나를 낮추고 믿음의 형제들과 조화함으로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아름답게 하고 덕을 끼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 조화를 잘함으로 인생이 복을 받고 좋은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옵소서.

한용준 목사(의정부성만교회)

토요일

새 노래로 찬양하라

시편 40:1~3
찬송 40장


고난의 때에 찬송을 선택하십시오. 시편 40편은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인생을 살았던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이 자기 인생의 위기가 몰려 올 때마다 불평과 원망의 타령 대신에 찬송을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된 다윗의 찬송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를 숱한 환란 가운데서 건져주셨습니다.
또한 찬송은 우리의 대적을 떨게 합니다. 다윗은 한 차원 높은 소원을 품습니다. 내가 고난 속에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것을 바라본 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함께 의지하는 자들로 거듭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다윗을 둘러싼 수많은 대적들이 그를 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다윗의 무기나 용맹이 아니라 그의 입에 담긴 찬양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찬양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을 떨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찬송은 닫힌 축복의 문을 엽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할 때, 다른 죄수들이 함께 듣습니다(행16:25). 우리가 어둠 속에서 찬송할 때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도 함께 듣습니다.
찬송은 놀라운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어둠 속에서 찬송을 불러 같은 어둠을 방황하고 있는 이들에게 여러분의 찬송을 듣게 하십시오.
내 삶의 옥문을 열기 위해서도 찬송을 불러야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 갇힌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찬송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찬송으로 대적 마귀가 떨며 닫힌 문이 열리는 복을 얻게 하소서.

강동열 목사(순쳔화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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