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이 모든 축복보다 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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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이 모든 축복보다 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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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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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하나님의 동행하심
▲ 이경직 교수(백석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에 대해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출 32:34)고 하신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셨다.”(출 32:35). “그 백성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32:3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용서하셨지만 그 백성 개개인을 다 용서하신 것은 아니다. 

우상숭배에 적극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날에 레위인의 칼에 맞아 죽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죄인이 죄를 깨닫고 뉘우치고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구원을 얻지만, 자신의 죄를 끝까지 인정하지도 뉘우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멸망이 기다린다.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자에게만 구원이 있다. 

모세의 탄원을 받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살 길을 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출 33:1)고 명령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금송아지를 섬겼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거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신실히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얻도록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겠다”라는 약속을 하신다(출 33:2). 

하나님은 출애굽 직후에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려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밝히셨다(출 13:5). 이스라엘 백성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때의 약속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은 이스라엘 백성보다 먼저 가나안 땅을 가서 그 땅에 사는 민족들을 몰아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그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먼저 가서 그 땅을 비워 놓아 그들이 편안히 그 땅에 들어설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출 33:3).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겠다”(출 33:3)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아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출 33:30) 염려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불충과 불순종을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었다. 그들이 시내 산을 떠나 가나안 땅을 가는 동안 하나님을 향한 범죄가 반복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직접 처벌하실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칼 아래 쓰러질 수도 있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태를 걱정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계속 범죄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은 끔찍한 심판이 될 수 있다. 또 범죄 할 가능성이 있는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를 거부할 때 더 안전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그들의 범죄는 처벌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사자가 먼저 가서 가나안 땅을 확보해줄 것이며 그들은 그곳에 안전하게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보장해주신다는 제안은 때때로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제안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제안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 제안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 사랑하고 하나님 자신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고 대답하셨다(출 3:14). ‘함께 계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이름에 이미 있다.

하나님이 더 이상 함께 하시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집을 얻는다 해도 그 집에서 함께 할 배우자를 잃는다면 기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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