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관행일 뿐이야! (It’s just a traditional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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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관행일 뿐이야! (It’s just a traditional practice!)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7.02.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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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⑥

영화 ‘내부자들(Inside men)’에서 배우 ‘백윤식’이 했던 말들이 마치 명언처럼 회자되고 있다. 특히 그는 “보여 진다. 아니, 볼 수 있거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등의 말들은 말끝을 흐리는 논설인들의 관행이다.” 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영어가 한글에 비해 과학적이다’ 라는 말을 한다. 왜냐하면 비교적 수식어가 많이 붙는, 그래서 결론이 애매한 쪽으로 흘러가는 우리말보다 영어는 주어와 동사가 붙어다니면서 귀결행동이 먼저 표현되는 어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대체적으로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바로 그럴 때 주로 사용되는 서술어법이 있다. “그런 것 같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나 정확히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 확실하진 않다.” 등이다.

끝까지 참고 들어도 도무지 무슨 뜻인 줄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라고 분명한 자기 태도를 표현하는 법에 익숙하지 못한 결과이다.

핑계 삼아 어물쩍 넘어가기 딱 좋은 말 중에 ‘관행’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전통적 혹은 인습적인 행위 (In a social context, a convention may retain the character of an ‘unwritten law’ of custom)” 이다. 그러나 실제 용례에서는 책임지기도 싫고, 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빠져나갈 적당한 길이 없을 때 이 말로 얼버무린다.

이번에 유명한 가수의 미술품이 대작(vicarious printing)논란에 휘말렸다. 본인이 인정한 내용만 가지고도 누군가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림의 본을 떠서 주고, 배달된 그림에 덧칠을 하고 서명을 했으니, 내 그림이 맞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오랜 “미술계의 관행이 아니냐?” 라고 항변한다. 어제도 그랬고, 지금껏 죽 그렇게 해왔다는 아주 부정적 ‘관행’의 의미를 사용했다.
 
아주 간단한 말 ‘입니다, 아닙니다.’를 할 줄 모르는 사이에 우리사회는 점점 애매모호함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이 말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라는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신문기사를 읽거나 뉴스를 청취해도 여전히 ‘것인 것이다, 같은 것 같다, 없는 것 같다. 아닐지도 모르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와 같은 모호한 서술어들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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