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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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 강석찬 목사
  • 승인 2017.02.15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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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에 대한 생각이 어떨까? 대통령이 바뀌면서 정권이 바뀌고, 수많은 각료가 바뀔 때마다 “혹시, 이번에는 괜찮아지겠지?”기대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할 수 없어.”하고 실망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정치인을 불신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선거철마다 외치는 개혁과 변화에 대한 여러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이 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이야”라는 부정적인 마음만 두터워진다.

해방 이후, 각종 선거의 후보들과 정당들이 선거철마다 내걸었던 국가와 국민에 대한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지금 이 나라가 이런 꼴이었을까? 작금(昨今)의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한심스럽고, 슬프고, 안타깝고,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괴롭기만 하다. 그런데 과연 정치권만 그럴까? 교계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똑같구나, 꼭 같아.”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지난해, 11월 6일에 CBS와 국민일보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24개 교단의 교단장들, 기독교계 단체장, 신학교 총장들이 모여 “나부터”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교회개혁과 변화를 “나부터”하겠다는 캠페인 선포식이었다.

누가 ‘지도자’라고 세웠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신앙과 윤리 면에서 자신을 개혁해 나가겠다”고 하면서, “나부터 깨끗해지고, 정직해지며, 낮아지는 섬김의 본을 보이고자 한다”고 약속했다. 

시론자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십 수 년 전, “내 탓이오”운동을 펼쳤던 일이 생각났다. 자동차마다 스티커를 붙이고 난리를 쳤었던 기억이다. 결과가 어땠던가? 소리만 컸지, 어느 누구도 문제가 일어났을 때 ‘내 잘못’이라고 하지 않았다.

‘네 잘못, 사회 잘못, 국가 잘못, 민족성 잘못’이라고 손가락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의 분쟁은 더욱 심화되었고, ‘목사는 교인이나 장로 탓, 당회는 목사 탓’ 하면서 분란과 갈등만 높아졌다.

그 결과가 교세의 침체현상이었다. 이런 씁쓸한 기억 때문에 “나부터 변하겠습니다.” 선언한 선포식 기사에 대하여 냉소적인 마음이 들었었다. 그래도 “종교개혁 500주년에 약속한 것이니, 혹시?”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신문기사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곧 이어진 다음 주일 신문부터 구태의연(舊態依然)한 뉴스만 지면을 가득 채우더니, 해를 넘기어 2월 첫째 주일까지도, 조금도, 정말 눈곱만큼도 변한 것이 없는 사건들만 전해주고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스스로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각종 연합행사를 개최하고, 기도하고, 비싼 밥을 먹고, 친교를 하고, 기념촬영을 한 후, 고급승용차를 타고 떠난다.

남은 자리에는 교인들이 생명을 담아 바친 헌금을 사용하고 난 흔적(痕迹)이다. 한국교회 스스로 지도자의 초상(肖像)이다. 올 해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는 줄기차게 열리는데, 개혁의 움직임은 미동하지도 않는다. 

연합기관 대표회장 선거가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다. 1억5천만 원의 등록비는 분명히 헌금일 것이다. 헌금으로 명예를 사는 셈인데, ‘나부터’라고 선언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또 다른 연합기관의 신년기도회에서는 “기득권 내려놓기를 해야 희망이 있다”고 했지만, 어느 누군가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았다는 소식은 없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을 따른다면서, 구원의 단물만 빨아 마시며 축복만 누리려는 것은, 주님을 모욕하는 행위요, 주님을 믿는다는 신앙에 대한 모독이다. 시론자도 이 부분에 와서, 목에 가시가 박힌다. 아, 육신이 되신 하나님! 믿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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