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는 경외와 순종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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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는 경외와 순종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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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2.1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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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쉐키나 영광
▲ 이경직 교수(백석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 후에 모세는 시내 산에 계신 하나님께 다시 올라가서 40일 밤낮을 금식하였다. 이번 40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범죄 하지 않았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다”(출 34:29). 그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다”(출 34:29).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였다”(출 34:30).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세의 영적 권위 앞에 모두 두려움을 느꼈다. 모세가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들을 부르고 그들과 말한”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올 수 있었다(출 34:31). 모세는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였다”(출 34:32).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느낀 두려움은 그들이 이전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을 닮았다(출 20:19). 시내산 아래에 있던 그들은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보고 멀리 도망갔다(출 20:18). 비록 광야길을 걸어오면서 조금 성장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거룩하지 못했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지 못했지만, 광야에 울러 퍼지는 우레와 나팔 소리, 광야를 가득 채우는 번개와 산의 연기 앞에서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 치던 모세도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출 3:6).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설 때에 비로소 우리 자신이 얼마나 깨끗하지 못한 존재인지를 정확히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만 경험해도 이렇게 두려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는 일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히브리어 ‘쉐키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얼굴에서 광채가 빛나는 곳이다. 우레와 번개,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드러내는 수단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한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을 통해, 불치병이 완치되는 일을 통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우리는 바람을 볼 수는 없지만 흔들리는 나뭇잎을 통해 바람을 경험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주셔서 우리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시는데 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다시 받아들고 내려온 모세를 보았을 때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였다.”(출 34:30). 그들은 “모세의 얼굴에” 쉐키나, 즉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광채를 보았기 때문이다(출 34:30).

그러나 모세는 그를 멀리 하려는 그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출 34:31).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왔을 때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였다”(출 34:32).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절대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는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을 직접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리도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눅 18:14)고 말씀하신다.

세리는 비록 거룩하신 하나님을 감히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멀리 서 있는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까이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분을 멀리하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고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찾아오실 때 우리는 경외함으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신 5:27)라고 고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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