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망을 거부한다, 새해도 희망을 노래한다

‘국민추천포상’ 받은 희망의 아이콘…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이성원 기자l승인2017.01.11l수정2017.01.11 16:48l1373호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경북 울진 총각 황영택은 건설 경기가 한참 좋을 때, 대기업에 들어가 호시절을 보냈다. 키 180센티미터의 건장한 이 청년은 거래처에서 “날씬하고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가씨를 보고 뿅 가버렸다”, 그래서 사랑을 했다. 결혼을 약속하고 알콩달콩 동거생활한지 3년.

1992년 10월 20일, 이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아내는 형님 댁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떨어뜨린 그릇이 팍삭 깨졌다. 현장에서 크레인을 조종하고 있던 황영택은 길이 15미터, 무게 2톤짜리 전봇대같은 파일을 땅에 심고 있었다. 어느 순간, 파일이 기우뚱하더니 70도 각도에서 끊어져버렸다. 

파일은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에게 날아왔다. 큰 굉음과 함께 조종석에 충돌했고, 그는 배꼽 아래가 작두로 잘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것도 잠시, 의식을 잃었다. 몇 번의 수술 끝에 그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의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장애인’, 그리고 ‘아빠’
“처음엔 6개월 있으면 괜찮아져서 퇴원할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무래도 예감이 심상치 않았어요. 나중에 의사가 와서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죽고 싶었어요. 내 다리 내놓으라고, 링거 병을 던지고, 아내에게 소리를 치고, 추태를 부렸죠. 죽고 싶어서 병원 옥상에 갔더니 테라스가 너무 높아 그것도 맘대로 할 수 없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점심을 잘못 먹어 체한 것 같다고 구역질을 했다. 손을 땄지만 체기가 가시지 않았다. 같은 병원 내과에 갔더니, 임신 5주였다. 다친 지 4주됐으니, 사고 한 주 전에 임신을 한 것이다. 둘은 병상에서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간병인 침대에서 아이를 키운 지 2년, 퇴원을 하게 됐다. 더 이상 기적은 없었다.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아야 했다. 아들을 낳은 기쁨도 잠시, 암담한 세월이 시작됐다.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 술을 마셨어요. 낮에는 창피해서 안나갔어요. 아이들이 저를 보고 ‘장애인 간다’고 놀려요. 저는 장애인이 아니었거든요. 건장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밤에 나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잊고 싶었어요. 그날도 그랬어요.”

집에 들어오니 아들도, 아내도 자고 있었다. 그 사이에 눕는데, 돌도 안 된 아들놈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니가 아빠야? 당신 내 아빠 아냐.’ 마음에 자책감이 들었다. 그래, 내가 아빠구나. 옆을 또 봤다. 아내였다. 아, 내가 남편이구나. 

그는 ‘장애인’인 동시에, ‘아빠’였고, ‘남편’이었다. 눈물을 쏟으며 회개했다. 그 동안 아내의 권유에도 거부했던 하나님을 영접했다. 재활을 위해 휠체어 테니스를 시작했다.

장애인으로서의 억눌림이 운동을 통해 폭발했다. ‘경상도 문둥이의 성격’이 나왔다. 이왕 하는 거, 국가대표 한번 해보자. 휠체어에 타이어를 묶고 운동장에 나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보고 ‘돌았다’고 했고, 그는 운동장을 돌았다. 

5바퀴, 10바퀴, 20바퀴, 계속 돌았다. 온 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휠체어에 타이어를 묶고 경사로를 올라갔다. 아침저녁으로 100번을 왕복했다. 이 정도 하자, 나중엔 휠체어가 날아갈 정도가 됐다. 잘하면 공중부양도할 것 같았다. 

▲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입은 황영택 집사는 믿음으로 절망을 거부하고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고 37세에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가서 성악가가 되는 등 끝없는 도전으로 ‘희망의 노래’를 온 몸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국가대표에서 성악가로
마침내 국가대표 선발전. 셋트 스코어 1대1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침내 승리. 태극기를 왼쪽 가슴에 달 수 있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울었다. 5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여러 국제대회에서 상도 탔다. 해외에 나갈 때면 돈이 없어도, 아들 일용이를 데리고 갔다. 장애인이었지만 국가대표인 아빠를 아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제 나이가 37세 됐을 때, 새로운 도전 앞에 섰어요. 더 이상 운동하기에는 근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죠. 외국에서 운동을 하다 돌아온 저는 곧장 금식기도원에 가서 일주일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라켓을 내려놓고 노래를 시작했다. 37세의 나이에 음대에 도전을 했다. 그 나이에,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보고 돌아서면 잊어먹는 나이였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먹은 걸 토할 정도였다. 밖에서는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울려 퍼졌지만 그는 수학책을 붙들고 2차 방정식, 3차 방정식, 함수와 씨름을 해야 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또 노래를 연습해야 하는데요, 제가 하반신이 장애니까 배에 힘이 없어요. 대변이 줄줄 새요. 그러면 제 아내가 그래요. 괜찮다고요, 씻으면 된다고요. 23살에 제게 시집와서 제가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이러고 있으니... 제 아내가 저를 키운 거죠.”

성결대학교 성악과에 기적처럼 합격했지만 또 넘어야할 산이 있었다. 피나는 발성연습을 해야 했다. 발음이 안 좋은 그는 입에는 젓가락을 물었고, 약한 배는 벨트로 묶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렇게 연습을 해야 동기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졸업한 학교, 멋진 성악가로 거듭난 그는 이제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하반신 마비와 함께 찾아온 수많은 절망의 순간들을 극복한 비결은 새벽기도에 있었다. 새벽마다 아내와 함께 부천교회에 나가 찬양을 인도하고 간절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교회 김영실 목사는 “목사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그를 칭찬한다.

불교 집안에 ‘예수쟁이인 아내’가 들어와서 기적을 만들었다. 장애 후, 이들 부부에게도 고비가 있었지만 함께 기도하고 예배 하는 가운데 하나가 되니 이길 수 없는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아내 박금주 씨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줄 것이 있는 인생은 아름답다
“좋은 분들이 주변에 많아요. 그런데 본인이 좋아지니까 좋은 사람들이 생기더라고요. 장애를 입고 처음엔 온 몸에 가시가 뾰족뾰족하게 난 것처럼 살았어요. 물론 처음엔 이해가 됐죠. 본인이 얼마나 힘들까. 그런데 몇 달을 술 먹고 방황하니까, 나중엔 정말 갔다 버리고 싶더라고요. 밤이면 몇 개월 안 된 아이를 업고 남편을 찾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시절을 잘 견디고 나니, 이렇게 좋은 시절이 왔네요. 다 하나님의 은혜죠.”

지난 해 말, 그는 행정자치부에서 주는 ‘2016 국민추천포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이 상은 국민들이 추천해서 주는 상인데, 그 동안 노래와 강연으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며 활동해 왔던 공로가 인정됐다. 

그는 아내와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을 세워 장애인 아티스트와 비장애인 아티스트가 함께 모여 힘들고 지친 세대를 위해 노래하고 희망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부천장애인합창단’을 지휘하며 진정한 ‘화음’을 이뤄가고 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제가 오히려 뭔가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노래로 환우들을 위로하고, 합창단을 지휘하고, 휘귀병 난치병 환자를 돕고, 각종 행사와 강연을 통해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또 못하는 게 없어요. 휠체어 스키도 타고 수상스키도 탑니다.”

그는 불행이 갖다 준 절망을 거부했다. 20여 년 전, 병상에 있던 그에게 의사는 이런 선고를 내렸다. “황영택씨는 앞으로 평생 휠체어를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휠체어를 의지하지 않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리고 삶은 달라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 정말 행복합니다, 이 리어카를 안탔으면 이런 행복은 진짜 몰랐을 것 같아요, 이런 가치, 이런 감사, 이런 은혜는 경험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참된 섬김, 참된 가치, 참된 자유를 제게 주셨습니다.” 

이성원 기자  jos33@hanmail.net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제호 : 기독교연합신문사 아이굿뉴스 |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 118 | 전화번호 02)585-2751~3 | 팩스 : 02)585-6683
인터넷신문등록번호:서울아04554 | 등록일자 : 2017년 6월 2일 | 발행인:장종현 | 편집인 이찬규 | 청소년보호책임자:이인창
Copyright © 2017 The United Christian Newspaper.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goodnews@igoodnews.net
아이굿뉴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