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끝]종강을 하면서 전하는 10개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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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끝]종강을 하면서 전하는 10개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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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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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언운반일념의 설교자들이 많아질 때 한국교회 희망있다
▲ 정장복 교수(장신대 명예교수·한일장신대 명예총장)

설교를 생명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목회자들에게는 “설교는 신비의 사역(mysterious ministry)”이라는 말에 공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의 설교를 완성하기까지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자신의 생각과 지적인 기능을 능가하거나 벗어나는 때가 많음을 경험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두 갈래의 설교자를 본다. 하나는, 나를 붙잡고 사용하시는 주인이 한편의 설교를 손에 쥐어줄 것을 막연히 기대하면서 편하게 사는 설교자들이다. 다른 하나는, 주인께서 주신 66권을 통하여 메시지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온 신경을 담은 안테나를 주인에게 맞추어 근면하고 깨어있는 말씀의 종들이다.

지난 9개월 동안 본 강의는 주인께서 원하시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성공적으로 운반하려는 말씀의 종들을 위하여 진행되었다. 그 동안 본 강의에 동참하면서 설교의 세계를 새롭게 정립한 독자들에게 고마움의 머리를 숙인다. 이제 종강을 하면서 착하고 충성된 말씀의 종들이 평생을 두고 명심해주기를 바라는 10개의 항목을 다음과 같이 추려본다. 1) 설교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흔들림이 없어야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고 선지동산에서 훈련키시고 오늘의 현장에 세우셨다는 확신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럴 때 말씀의 종으로 임무와 책임을 늘 점검하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2) 설교사역의 Ethos(기본이념)가 선명해야한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말씀의 종이 되었는지에 대한 그 존재의미를 가슴에 항상 새기고 살아야 한다. 그 대답은 단 하나, 곧 성언운반일념(聖言運搬一念)이다. 인간의 잡다한 생각이나 지식이나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66권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온전하게 들려주어야 하는 기본이념이다.

3) 설교자의 일차적인 의무는 운반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터득하는 일이다. 설교자는 전해야 할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번역된 한글성경만을 의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주석서들을 통하여 핵심단어들의 분석과 의미와 정황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4) 설교자가 온전한 인간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노력에 전심을 기울여야한다. 황폐해진 정신문화와 물질만능의 사조 속에서 복음을 전해야하는 것이 오늘의 목회현실이다. 이러한 현장에서 설교자가 영육이 청렴결백하고 희생봉사의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품이 깨끗하고 각종 탐욕에 둔한 설교자를 쓰시고, 또한 회중은 이러한 설교자를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5) 자신의 설교가 탁월하지 못하고 어둔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설교개발에 최선을 기울어야 한다.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뒤로하고 남의 설교를 도용하여 슬픈 종말을 맞이하는 사례가 많다. 우리가 만지고 있는 첨단의 IT 문화는 힘들이지 않고 설교의 표절을 가려내고 있다. 남의 설교를 많이 읽은 것은 대환영이나 그대로 복사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6) 설교를 목회의 방편으로 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목회현장에서 발생한 자신의 뜻과 상반되는 사연들을 비롯하여, 대소사를 설교에서 자주 언급하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설교는 곧 패망의 길을 걷는다. 설교는 설교자의 주장을 펼치는 도구가 아니다. 회중은 설교자가 자신의 주장을 설교화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7) 설교자가 회중들의 찬사에 둔감해야 한다. 현대의 설교자들은 회중들의 찬사를 즐긴다. ‘아멘’의 함성이 크고 작음과 기타의 칭찬이 담긴 반응에 너무 민감하다. 그러나 크리소스톰과 같은 기독교 초기의 대표적인 설교자는 회중들의 찬사에 설교자들의 감각과 감정이 무디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설교자는 오직 하나님의 찬사에 귀를 기울어야한다.

8)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한국말로 설교함을 명심해야한다. 한국교회의 설교자가 가장 중요하게 사용한 도구는 우리말 곧 한국어이다. 그런데 우리의 설교자들은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관심이 빈약하다. 그래서 실수와 함께 단조롭고 격에 맞지 아니한 언어를 구사한다. 설교자는 언제 어디서나 모범적인 용어와 어법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럴 때 메시지가 손상을 입지 않는다.

9) 설교자의 심장에 파토스(Pathos)의 열기가 식지 아니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파토스는 설교자가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뜨거운 가슴이다. 그 말씀을 먼저 설교자가 사랑하고 순종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 말씀을 받게 될 자신의 회중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기이다. 설교자는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메시지에 자신이 먼저심취(深醉)되고, 그 순간 양들에게 달려가 기쁨으로 외치려는 열기가 타올라야 한다.

10) 성령님의 섭시(讘示)를 받고 깨달을 수 있는 도구로 자신을 갈고 닦는 일이다. 세속의 해일이 날로 높아지는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안전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설교자가 ‘이기는 자’이다. 그것은 설교자가 속물화(俗物化)의 유혹을 거뜬히 물리치는 일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레11:45)”라는 말씀은 오늘의 설교자들이 깊이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말씀이 설교자의 내면에서 살아 움직일 때, 성령님이 속삭여 알려주시는 메시지가 살아 움직이게 된다.

설교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이 말의 주인공은 바로 설교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언운반일념(聖言運搬一念)의 설교자들이, 건강한 영육을 갖추고 설교를 하는 날 우리 한국교회는 밝은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

- 그동안 ‘설교학교’를 연재해주신 정장복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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