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송 가사 는 로 바꾸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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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송 가사 는 로 바꾸는 것이 옳다.
  • 승인 2003.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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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 교회마다 시편 103편 1,2절의 본문을 복음송 가사로 각색(脚色)하여 널리 불려질 뿐만 아니라 예배의 입례송으로 애송하고 있는데 여기에 고칠 점이 있다.

성경 본문 상에는 물론 <찬양하라>(...하라)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성경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됨에 신적 권위로, 절대 진리로 믿고 좇는다.

다만 이 성경의 말씀과 교훈을 소재로 하여 복음송 가사에 있어서 성경의 의미를 좇아 각색을 하여 음악적 요소로 재구성할 때는 계시적 선언문체로 하지 않아야 된다. 성경에는 <찬양하라>는 명령형인데 이 말씀을 윤리적 인상과 언어 문화적 감각으로 볼 때는 자기가 자기를 대상으로 하여 명령형 그대로 가사화(歌詞化)하는 것은 또 다른 문자주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어법 상으로 자기가 자기를 명령할 수는 없는 것이 상식이다.

복음송에서라면 자기 다짐으로 하나님을 향해 고백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이끄는 조로, 스스로를 독려하는 심정적 동기를 가지고 <찬양하자 ; 송축하자>로, 어법적으로는 청유형종결어미(請誘形終結語尾;말하는 이가 말듣는 이에게 행동을 같이 하자고 권하는 형식의 어말;어미(예, 가자, 갑시다, 가세, 하자 따위) 즉 자기가 하고자 하는 행위에 또 다른 대상을 이끌어 동시에 같이 행동하자는 동시행위 유도형으로 " ...하자"는 형을 쓰는 것이다.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는 말씀은 다윗이 자기자신은 하나님을 찬양할 의무가 있음을 본문, 시103편 3-18에 그 구체적인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 의무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적 다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고로 그 다짐이 오늘 우리에의 다짐으로 수용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시적 경지를 통한 하나님을 송축함에는 <하라>가 아닌 <하자>로 표현하여 자기의 인격적인 내재성에 대하여 헌신적 다짐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라>라는 시킴꼴은 자기를 제외한 어떤 객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간접적으로는 송축행위에 스스로는 예외적인 치부를 하는 것이 된다.

그런고로 성경의 계시적 교훈의 선언적 문맥구성을 우리편에서 하나님을 대상으로 한 찬양적 표현은 청유형 어미로 각색을 하여 <하자>로 이끌어 다짐하는 표현을 하여야 그 성경을 우리에게 바르게 적용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복음송 작시하는 모든 분들은 교회 음악적인 것뿐만 아니라 기독교 언어문화면까지 세심한 배려가 있기를 제안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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