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신㉘북한 지하교회의 존재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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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통신㉘북한 지하교회의 존재방식
  • 김창범 목사
  • 승인 2016.11.0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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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범 목사 / 더미션로드 대표

아직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김정욱 선교사(53)는 신의주에서 밀수선을 타고 2013년 10월경 북한에 몰래 들어갔다. 그는 10년을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사람들을 돕고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했다. 그의 소망은 오로지 북한 땅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북한 지하교회를 꿈꾸며 밀입북 했다. 그가 전도한 북한사람들을 만나보고 평양에 지하교회를 세우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북한 보위부의 공작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의 소망은 덫이 되었고 그는 억류되었다. 그렇다면 북한 지하교회는 남한교회를 유혹하는 환상에 불과한가?

북한 지하교회는 남한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믿음 그 이상의 존재이다. 지하교회가 갖는 의미가 크다는 말이다. 그 가장 큰 이유로서 남한교회는 북한교회에 대해 믿음의 큰 빚을 졌다는 부담감을 들 수 있다. 남한 땅에서 실향민으로 살아가지만, 평양 부흥에 참여했던 많은 북한 기독교인들이 남한교회를 부흥시키는 믿음의 동기가 되지 않았던가? 다시 말해 북한교회는 남한교회의 맏형이라는 생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남한 땅에서 편안히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고통 받는 북한 성도에 대해 갖는 안타까움에 있다.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 지하교회에 대한 증언들은 남한교회 성도들에게 늘 감동을 던져준다. 탈북자들이 간접적으로 전해주는 북한 지하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큰 관심을 표한다. 이것은 북한교회에 대한 남한교회의 순수한 마음과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순수한 믿음을 짓밟는 어두운 거짓과 계략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감안해야 한다. 이것은 남한교회가 겪는 혼란으로서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첫째는 탈북자들 자신이 북한 지하교회의 경험을 과장하거나 거짓으로 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신의 간증을 교회의 인기상품으로 포장하려는 의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한 탈북 여성은 전도사라고 자처하며 지하교회 교인으로 활동했다고 증언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소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미국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또 외할머니가 교인이었고 엄마를 통해 신앙을 전수 받았다는 한 탈북 청년의 증언도 거짓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거짓 증언이 남한교회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점을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북한 당국이 북한 지하교회에 대한 남한교회의 열망과 기대를 간파하고 이를 역이용한다는 점이다. 서두에 소개한 김정욱 선교사의 억류 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북한은 달콤한 지하교회 환상을 여러모로 이용하면서 현실화시킨다. 그 모델케이스가 바로 평양에 세운 봉수교회(1988년 건립)와 칠골교회(1993년 건립)이다. 이 교회들은 1986년 완화된 종교정책에 따라 세워진 교회들이다. 이들 교회는 한국교회로부터 헌금이라는 “전리품”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세워졌다. 이러한 대남전략의 연장선에서 “평양과기대” 건립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러면 북한 지하교회는 없는 것인가? 아니다. 지하교회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 존재방식이 우리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다. 북한 지하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로 존재한다. 예배당이 없다. 교회조직도 직분도 없다. 다만 예수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교인만 존재한다. 때로는 지하교회 공동체도 존재하겠지만, 가짜교회들 외에는 들어난 일이 없다. 분명한 것은 북한 당국이 남한교회를 이용하고 거짓된 북한 사람들이 남한 성도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거짓에 가려진 지하교회의 존재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살아있는 현장은 바로 탈북자 개인이다. 이들이 믿는 모습 속에서 지하교회를 느낄 수 있다. 북한 지하교회 존재는 탈북자들의 믿음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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