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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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식사
  • 김한호 목사
  • 승인 2016.11.0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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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 / 춘천동부교회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사를 가면 주변 이웃과 팥죽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왜 이런 전통이 만들어졌을까요? 이런 전통은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이웃과 풍성하게 나누어 먹으려고 만들어진 전통입니다. 팥죽을 나누어 먹는 것은 이웃을 위한 배려이며 철저히 이웃 중심의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팥죽을 나누는 일도 거의 없고, 그나마 무언가를 나눈다 해도 가난한 약자를 위한 나눔이라기보다는 그저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킨포크입니다. 2011년 미국 포틀랜드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 ‘킨포크(kinfolk)’는, 친족을 뜻하는 ‘킨’(kin)과 사람 무리의 의미를 담은 ‘포크’(folk)를 합성한 단어입니다. 도시에서 분주히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때론 서로 모르는 경우에도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2013년 겨울부터 ‘킨포크 서울’이 시작됐습니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한국에서도 20~30대가 상당수 가입했다고 합니다. 서로 함께 하니 어느 정도 연대감도 느끼고 즐거움은 있지만 문제점도 있습니다.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먹고사는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된 사람들입니다. 한 끼 식사 참가비용이 1인당 ‘6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서민으로 치면 네 식구 한가족이 장을 봐 와서 함께 집 밥을 먹을 만한 돈입니다. 한마디로 이 모임은 이웃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가 외롭기에, 자기 필요에 의하여 이웃을 만나 식사하는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것이지요.

이와 비슷한 듯하지만 그 성격은 전혀 다른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바로 화목제입니다. 보통의 다른 제사는 제물의 고기를 제사장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제사장과 제사를 드리는 자 그리고 백성들이 함께 먹을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5대 제사 중 유일하게 예물을 드린 자가 그 예물을 먹을 수 있는 제사였습니다. 이 화목제가 바로 히브리어로 ‘슐라밈’입니다. ‘슐라밈’은 ‘샬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즉 ‘복지, 화목’의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의 화목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웃과의 화목입니까?

화목제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고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합니다.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것은 모두가 배부르게 먹자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고기를 먹는 일은 대단히 드문 일이었기에 화목제를 드리는 날은 그야말로 즐거운 축제날이었습니다. 모처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르라고 하십니다. 쌓아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고 먹으면 이웃 간에 절대 안 나누어주겠지요. 아마 혼자 먹고 말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래 남겨두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화목제는 이웃과 화목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는 때로 보기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패 저 패로 나뉘어있습니다. 그러나 한자리에 모여서 같이 음식을 나누면 어떻게 될까요? 그동안 불편한 관계였을지라도 같이 식사를 하면서 말도 섞다 보면 어느새 서로 간의 긴장도 완화되고, 오해도 풀리게 됩니다. 이것이 공동 식사가 갖고 있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지난 달 15일부터 20일까지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제3회 디아코니아 코리아가 열렸습니다. ‘당신은 선한 사람입니다’라는 주제로 지난 130년간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를 위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왔던 성과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국내 최초의 비영리 민영 교도소인 아가페 소망교도소, 다양한 학생층과 은사를 펼치는 대안학교, ‘밥퍼’로 유명한 다일공동체, 또 필자가 섬기는 춘천동부교회에 이르기까지 150여개의 부스가 세워져 저마다 감당해 온 디아코니아(섬김)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에 이렇게도 다양하고 의미 있는 섬김의 자리가 있었다니요.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 화목제와 같은 공동식사의 자리가 아닐까요? 곧 다가올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이웃과의 공동식사를 묵상하며 실천함으로 우리 믿음의 지경이 더욱 넓어져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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