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29]설교자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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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의 설교학교 29]설교자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라
  • 정장복 교수
  • 승인 2016.10.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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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주체는 오직 성삼위 하나님이어야
▲ 정장복 교수(장신대 명예교수·한일장신대 명예총장)

설교는 설교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설교자를 통하여 예배하는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해석하게 하시며, 그 말씀을 회중들의 삶의 현장에 적용시키도록 하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설교의 주체는 언제나 설교자가 아닌 하나님이시다. 이 원칙을 보여주는 설교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을 본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하여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 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고 말씀하십니다.(선포) 여기서 말씀하신 사랑은 우리말에 없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매우 특수한 사랑입니다. 희생과 용서와 관용과 봉사와 평화를 담고 있는 특수한 용어입니다.(해석) 하나님은 우리의 형제자매와 이웃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편협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을 하십니다. (적용)

이 기본형식에서 설교자가 말씀의 주체가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이 말씀의 주체이심을 쉽게 파악하게 된다. 이 형식이 설교의 기본 틀이다. 이 틀을 벗어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로 전환되어 회중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여기서 우리 한국의 설교자들은 매우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야한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체질화되어 있는 언어문화의 특성이다. 우리의 언어는 1인칭 단수 생략을 비롯하여, 문장의 주어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관습이 있다. 그 결과 설교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설교자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언어의 문제점을 윤태림은 그의 『한국인』에서 일찍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우리말에서는 그것이 단수인지 복수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말이나 대화의 전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그것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이것은 사고가 어떤 객관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 주체에 대한 의식이 박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한국교회 설교자들은 자신의 설교문장에 당연히 있어야 할 주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새롭게 두렵고 책임있는 시선으로 찾아야 한다. 주어가 없는 문장이 나열될 때 , 언제나 메시지의 주체는 불분명해진다. 더 나아가 주어에 대한 관심이 없는 설교자는 문장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를 바랍니다.” “....줄로 믿습니다.” “.....을 소망합니다.” “....를 소원합니다.” “....를 부탁합니다.” “....기원합니다.”와 같은 종결어를 남발하고 있다. 이렇게 주어 없이 끝나는 문장의 주어 자리에 ‘하나님’ ‘주님’ ‘예수님’ ‘성령님’을 넣고 그 문장을 읽으면 어이없는 표현이 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주님은, 예수님은, 성령님은) 여러분이 충성된 종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소원합니다. 기원합니다.)”와 같은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성립될 수 없는 표현이 된다. 여기서 앞에 나열한 종결어의 주어는 모두가 설교자임을 알게 된다. 그 결과는 메시지의 주체가 설교자로 전환되는 큰 모순을 범하게 된다. 그러나 그 문장에 주어를 성삼위 하나님으로 바꾸고 거기에 알맞은 종결어를 사용하면 그 메시지의 주체가 올바르게 표현된다.

즉 “하나님은 (주님은, 예수님은, 성령님은) 여러분이 충성된 종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명령하십니다. 기다리십니다. 가르치십니다. 말씀하십니다.”와 같은 것이다.

이 예문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하나님의 자리에 설교자가 들어서게 하는 무서운 오류를 우리의 언어관습이 안고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옳지 못한 현상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은 설교자의 필수과정이다.

다음은 설교문장에 성삼위 하나님을 주어로 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종결어 모음이다.

‘말씀(알게, 계시, 예시, 제시, 역사, 인도, 격려, 위로, 촉구, 명령, 선포, 훈계, 교육, 깨닫게, 초대) 하십니다. 또는 들려주고(초대하고, 호소하고, 이끌어주고)계십니다.’와 같은 표현이다. 이러한 종결어를 사용 했을 때 그 문장의 주체는 설교자가 될 수 없고 오직 성삼위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있게 된다.

여기서 설교자가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 있다. 비성경적이고 사실이 아닌 내용을 함부로 성삼위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지로 표기하는 것은, 설교자가 거짓선지자로 추락하는 큰 과오임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 날 한국교회의 설교사역을 위기로 몰고 간 주역들은 성경을 통해 주신 말씀이 아님에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나열하고 “하나님의 말씀인줄로 믿으면 아멘 하라.”는 설교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설교가 거듭나야 하는 참으로 중요한 시점에 도달하였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살펴봄이 없이, 함부로 사용했던 부적합한 표현들을 가려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굳혀진 언어를 그대로 최상의 도구로 알고 거침없이 사용해 온 것을 성찰해야한다. 이제 거듭나야 할 새로운 설교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냉철한 진단과 처방의 땀을 흘려야 한다.

문제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신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정확하게 구별하여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설교자의 의지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설교자의 의식구조는 본문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자신이 발견하여 자신이 주체가 되어 전하려는 시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오늘도 인간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을 직접 하시지 않는다. 언제나 사람을 불러 말씀의 종으로 세우시고 그 종들의 입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메시지를 주셨다. 그러기에 성삼위 하나님은 말씀의 주체로서 선명하게 나타나셔야 하고, 설교자는 감추어져야 한다. 그럴 때 설교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만나로 회중들의 생명을 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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