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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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랑
  • 최낙중 목사
  • 승인 2016.10.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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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사람은 먹어야 산다. 육신은 음식을 먹어야 살고 혼은 지식을 먹어야 산다. 알고자하는 욕구가 채워질 때 매사에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아는 것이 많은 자는 번뇌도 많다. 아는 것이 병이되는 경우가 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인간은 영적 존재다. 영은 진리로만 자유를 얻는다. 진리는 참이고 진실이다. 진리는 거룩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이다. 그 거룩 속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하나는 공의이고, 하나는 사랑이다. 공의는 악행자는 벌을 주고 선행자는 상을 주는 것이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고 상처난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품어주어 평안과 기쁨, 위로와 소망 그리고 새 힘을 얻게 하는 능력이다.

헬라어에는 사랑에 관한 네 가지 단어가 있다. 에로스, 스톨게, 필레오, 아가페이다. 에로스는 남녀지간의 부부사랑이다. 스톨게는 혈통적인 부모사랑이다. 필레오는 친구지간의 사랑이다. 아가페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만이 온전하다. 무조건적 사랑이며 초월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내 남편 내 아내이기에 내 자식이기에 나의 친한 친구이기에 사랑하는 것은 모두 조건적이다. 조건적 사랑은 좋은 관계가 나쁜 관계로 변하면 모두가 헤어진다. 한 몸이던 부부가 이혼한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린다. 친했던 친구가 배신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주님)의 사랑은 영원불변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요13:1하) 우리 그리스도인이 본받아 행해야할 사랑이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이야기다. 유대인이 강도 만나 죽어가고 있을 때 같은 유대인이던 제사장과 레위인을 지나쳐갔지만 평소에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천대를 받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매어 살린 이야기이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으로 사랑해야 온전한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이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실천 없는 방언과 예언은 소음일 뿐이다. 산을 옮기는 믿음의 역사와 능력 행함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전13:1~3) 믿음의 역사와 소망가운데의 인내 중간에는 사랑의 수고가 있다. (살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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