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둘째주 가정예배
상태바
10월 둘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16.10.05 15: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요일

믿음으로 장벽을 뛰어 넘어라!

여호수아 14:1~15
찬송 546장

참으로 바쁘고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그리스도인다움을 잊어버린 채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는 세상의 것들이 마치 커다란 장벽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믿음으로 돌파하지 못하고 적정선에서 타협하게 됩니다. 그렇게 타협하다보면 어느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세상의 가치와 지식을 따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려진다해도 우리의 신앙은 하향편중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처한 현실과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던 갈렙이 등장합니다.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출신의 갈렙이 이스라엘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동료였던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모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나이 85세였습니다. 
그럼에도 갈렙은 앞장서서 바라보기에도 겁나는 난공불락의 성을 취하겠다고 선포합니다. 이 선포는 단순히 불타는 의지나 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의지한 선포였습니다. 그가 이런 위대한 선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눈앞에 당면한 장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앞날은 보이지 않고, 현재의 상황은 비관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갈렙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 삶의 여러 문제들을 믿음으로 돌파하게 하소서.

강대석 목사
청운교회

 

화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히브리서 5:7
찬송 93장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눈물 흘리며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향해 눈물의 인생이 끝나면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계 21:4) 하나님의 위로의 손으로 우리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울음이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눈물은 어떤 눈물이었는지 알아봅시다.
첫째, 애국애족의 눈물이었습니다(눅 19:41-44).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곧 멸망할 나라를 보고 우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애국애족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동정의 눈물이었습니다(요 11:33-36). 베다니에 사는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형제의 집은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며 다니실 때 자주 들렀던 집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한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가족과 이웃들의 눈물을 보며 함께 우셨습니다. 성도는 사랑과 동정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신앙의 눈물이었습니다(마 26:37-38).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통곡하며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한 순종의 눈물이며 통곡의 기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눈물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애국애족의 눈물, 동정의 눈물, 신앙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나의 신앙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울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시는 주님, 예수님을 따라 나라를 위해, 남을 위해, 사명을 위해 울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이승수 목사
양문교회

 

수요일

바울이 추천하는 교회 일꾼

로마서 16:1~16
찬송 336장

품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하는 사람을 일꾼이라고 합니다. 일꾼은 남의 집 머슴살이 하는 종과 비슷한 것이니 명예로운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꾼’이란 단어가 우리 성도들에게 좋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꾼이란 명칭을 자랑스럽게 썼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골1:23절에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추천하는 일꾼들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모두 27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처음 듣는 이름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문안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바울의 사역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위대한 사역은 전적으로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바울 혼자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붙여주셔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교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바울의 선교 사역도 안디옥 교회가 파송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몸의 지체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교회의 지체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사랑하고,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려 사역할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동역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함께 섬기고,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난도 받는 일꾼되어 주의 나라 이루며 살게 하옵소서.

이정기 목사
신나는교회

 

목요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양식

요한복음 4:27~38
찬송 502장

고맙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할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그분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곤 합니다. 만약 나에게 예수님을 대접할 기회가 온다면 무엇으로 대접하면 좋을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양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지방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보내시고, 물을 길러온 사마리아의 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의 감격을 경험한 여인은 물을 길러왔다가 물동이는 던져 버린채 마을로 달려가 “와서보라”며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고 동네를 나와 예수님을 만나보려 합니다.
그러나, 음식을 구해온 제자들은 이 상황에 어리둥절 할 뿐, 그저 예수님께 구해 온 음식을 건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음식을 마다하며 모르는 양식이 있고, 그것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을 향해 “눈을 들어 추수할 때가 된 밭을 보라”(요 4:35)고 권면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양식은 전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자 감격한 여인, 그리고 이 여인이 달려가 복음을 전하자 감격하는 마음으로 달려 나오는 사람들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먹지 않아도 이미 배가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대접하기 좋은 것이 아닌, 주님이 진정 원하시는 양식을 대접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양식으로 대접하여 주님을 기쁘게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금요일

믿음으로 생각하라

로마서 12:3
찬송 542장

인간의 위대한 점은 생각하는 것에 따라 행동이 완전히 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하면 한 순간에 순진해 질수도 있고 악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양같이 순진한 사람도 한 순간에 악하고 못된 사람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바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놀라운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이요 피조물입니다. 그는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서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데 마귀의 유혹에 그만 사로잡혀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인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동생 아벨을 죽이고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마땅히 생각할 것만 생각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방주를 만들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가끔 우리는 “오버(over)하지 말라” 라는 표현을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자주 사용합니다. 오버는 사실보다 자신의 생각이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버하면 반드시 실수하게 되고 때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오직 믿음으로 생각하며 순종함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모든 사람들이 오직 믿음으로 생각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진해 목사
신영통제일교회

 

토요일

코람데오 정신으로 생활하는 신앙인

로마서 1:18~32
찬송 424장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를 거스리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진노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죄의 상태가 창조때의 온전한 상태를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죄에 빠진 자들에게 임하는 것으로 매우 비극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의 구체적인 죄는 본문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21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28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고(23절),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하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들(29~31절) 입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란 죄에 대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를 위하는 마음과 사람을 진정으로 대하는 신실한 자세로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꼭 최후의 심판에 나타나는 것만이 아닌 현재적인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공의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생활하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지 않기 위하여 늘 경건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용태 목사
백석대학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