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선교사는 왜 '조선'을 선택했을까?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언더우드 서거 100주년 맞아 학술발표회 열어 김성해 기자l승인2016.09.22l수정2016.09.22 11:11l1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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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은 '원두우의 선교지 결정 과정 및 출발'이란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류금주 교수, 정운형 목사, 조용석 실행위원.

2016년은 한국 첫 개신교 선교사로 알려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한국식 이름은 원두우(元杜尤)가 서거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은 그의 서거 100주년을 기리고자 지난 8일 ‘원두우의 선교지 결정 과정 및 출발’이란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정운형 목사(연세대 교회사)는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4년 1월 26일 자 The Illustrated Christian Weekly에 실린 이수정의 호소문을 읽고 나서야 ‘조선이 자기를 부르는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정 목사에 의하면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수정의 글을 읽기 몇 달 전까지 선교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회고에는 1882~1883년,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사는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은 학교 재학생인 알버트 울트만스에게 들었을 때만해도 다른 사람에게 조선을 위한 헌신을 권유하며 본인은 인도 선교에 필요한 의학 공부를 별도로 한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을 위해 준비된 다른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에게 이수정의 호소문은 ‘조선에 대한 의무감’을 심어줬다. 이후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4년 7월까지 미국 개혁교회와 미국 북 장로교회 해외선교부로 각각 2차례 파송을 지원했다.

그러나 그의 지원은 재정적 지원 어려움 등의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알려졌으나, 가장 큰 원인은 그가 장로교회의 교단이 아니었다는 점. 결국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을 조선 선교사로 임명·파송하는 미국 북 장로교회로 교단을 변경하고 목사 안수례를 받기 위해 교구를 이명했다.

또 목사안수를 받은 11월 11일에는 미국 북장로교회 저지시티 노회로 이적했다. 언더우드는 12월 2일 개최된 노회에서 해외선교부의 조선 선교사로 추천을 받은 뒤 조선을 향한 선교 준비를 진행했다.


정운형 목사는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에 20여개의 교회와 대한기독교서회, 연세대학교, 서울 YMCA 등을 설립했다”며 “문명의 전환 시기를 맞이한 동아시아 시대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입국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극찬했다.

이어 류금주 교수(서울장로회신학교)는 논찬을 통해 “정 목사의 논문에서 언더우드의 선교지 결정 및 파송 과정 연구는 기성의 언더우드 연구 자료들, 언더우드 선교사의 회고와 기타 관련 회의 자료 등과 함께 분석 고찰했다”며 “기존의 불명확하게 다뤄지거나 근거가 제시되지 않고 잘못 기술된 논점들을 바로 잡았다는 데 이번 논문의 연구 의의를 둔다”고 정리했다.

김성해 기자  shkim@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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