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무한한 창조성’, 기독교 예술 속에 담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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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무한한 창조성’, 기독교 예술 속에 담아내야”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6.08.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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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크리스천 아트포럼, ‘예술적 진실’ 주제로 개최

다원화시대에 절대적 가치에 대한 의미가 흐려져 가고 있다. 인본주의적 사고는 기독미술을 비롯한 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유물론과 합리론의 가치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의미를 훼손시키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요소에 맞서 복음으로 돌아가 기독교 미술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이 마련됐다. 2016 크리스천 아트포럼(C.A.F)이 ‘예술적 진실’을 주제로 지난 27일 서초호민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아트포럼은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미술의 변화를 토대로 오늘날 기독교 미술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 2016 크리스천 아트포럼(C.A.F)이 ‘예술적 진실’을 주제로 지난 27일 서초호민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아트포럼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미술의 변화를 토대로 오늘날 기독교 미술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종교개혁 이후 미술은 더욱 발전

먼저 종교개혁 이후 미술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은 종교,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났으며, 미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포럼에서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 미술’을 주제로 발표한 손수연 교수(홍익대 초빙교수)는 “당시 급진 종교개혁자들은 미술을 교회에서 가장 먼저 철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성상파괴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들이 교회에서 미술 작품의 사용을 금지한 이유는 미술품 자체에 대한 금지라기보다는 미술품 기부를 선행으로 간주하고 구원과 연결시키는 사고가 횡행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격주의자들의 행동은 ‘성상파괴운동’으로 이어져 교회에서의 모든 회화와 조각을 없애는 미술 제거운동으로 변질되게 된다.

그로 인해 종교개혁으로 인해 미술이 쇠퇴했으며, 루터가 미술을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손 교수는 “루터는 이미지 제거에 찬성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적절한 정화를 반대한 것”이라며, “루터는 종교개혁을 선도할 때 다른 개혁자들처럼 교회에서의 이미지 사용을 반대하지 않았고, 성상파괴운동 때도 이미지 철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가톨릭교회와 외형적 측면에서 전혀 차이가 없는 루터교회가 상당수였으며, 오히려 장식이 더 풍부해진 교회도 찾아볼 수 있다.

손 교수는 종교개혁 미술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종교개혁으로 미술이 쇠퇴하고 문화예술의 발전이 저해됐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대해서도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종교개혁 이후 17세기 기독교 미술에 대해 그는 “이 시기, 기독교 미술은 경배의 대상으로서 성상이미지보다는 성경 이야기, 내러티브를 묘사한 성경장면이 주류를 이룬다”며 교회 내 예술품의 오용과 남용은 조심스러웠지만, 종교 미술 자체는 허용됐음을 설명했다.

▲ 17세기 종교화의 대표화가로는 렘브란트(1606~1669)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종교화에서 드러나는인간의 영혼, 내면에 대한 관심, 성숙한 태도는 관람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작품은렘브란트, ‘돌아온 탕자(1669)’

#‘예술적 창조성’ 적극 활용해야

기독교인들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예술의 창조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도 나왔다. 역사 속에서 일반 예술은 점차 종교를 거부하며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담은 작품을 내놓지만, 기독교 예술은 하나님의 무한한 창조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

현대 개혁주의 미학의 선두주자인 한스 로크마커(Hans Rookmaaker)의 ‘영성의 예술론’을 중심으로 설명한 안용준 교수(캐나다 토론토대, 미학미술사 연구원)는 “르네상스 이후 예술은 자체의 역할뿐 아니라 예술가의 역할이 바뀌게 됐다”며, “장인의 지위를 넘어서 자연의 신비를 탐색하지 않고서는, 또 우주에 감춰진 법칙을 밝히지 않고서는 명성과 지위를 얻을 수 없는 독립적인 거장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변화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정점을 이뤘다. 이제 예술은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예술가에 의해 창작된 ‘순수예술’을 의미하게 됐다. 이 기간 예술은 종교로부터 독립해 순수한 미학적 기준이나 취미, 숭고미, 상상력 등에 의해 평가되기 시작한다. 이에 안 교수는 “이렇게 신비화된 예술의 그늘에는 절망해 버린 가난한 예술가의 시체와 타락한 대중예술의 상업주의만 독버섯으로 가득하게 됐다”며, “결국 예술은 종교를 거부하고 삶과 분리되어 너무 높은 존재가 돼 버렸다”고 우려했다.

또한 로크마커는 현대 예술의 위기로 ‘반이성의 예술’을 지적했다.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열망과 과학주의, 기술주의, 이성적인 모든 것들로부터의 탈출을 모색하는 인간은 반이성의 예술에 정착하게 된다는 것.

안 교수는 “예술가들은 ‘이치에 맞고 정상적인’ 어법으로는 소통할 수 없으며, 인간의 논리와 설명으로 한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실패와 부조리한 실재를 경험하게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예술 자체로 정당성을 소유한 기독교인의 예술은 주어진 삶에 대한 위대한 경탄과 함께 성령의 적극적인 도움에 의한 심성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 예술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무수한 창조적 가능성의 하나인 예술적 창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성경적이거나 기독교적 주제를 가져왔다고 해서 반드시 기독교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피카소가 그린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만도 몇 개인지 모를 정도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독설의 표출이었다. 숱한 성경적 주제들이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 정신으로 손질되곤 했다. 결론으로 안 교수는 “로크마커의 논리에 따르면 예술작품에 투사되고 있는 실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성경적이냐가 관건”이라며, “하나님이 주신 실재를 편견없이 드러낼 때 비로소 기독교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교회 ‘예술의 본질’ 이해해야

포스트모던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인간의 감성을 다루는 예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예술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 성경적으로 아직 깊이 있는 이해를 지니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경직 교수(백석대)는 “특히 복음주의 전통이 강한 교회일수록 예술에 대한 이해가 약하며, 예술을 삶의 주변부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구원은 개인 영혼의 구원일 뿐 아니라 전인격의 구원이며, 삶 전체의 구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예술은 구원받은 사람의 삶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그는 “많은 젊은 기독교인들이 예술분야에 진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한국교회는 그들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적 주제만을 다루는 것을 기독교 미술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경계를 표했다.

이 교수는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시각과 달리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에 주목한다”며 “기독교 미술은 교회 안의 주제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모든 주제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반은총 차원에서 비기독교인이 만든 미술작품이라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잘 드러낸다면 그 작품도 기독교적일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경우 비기독교인이 의도적으로 기독교적 미술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기독교 미술가를 향한 당부로 “기독교 미술가는 미술을 위한 미술을 버리고, 깨어진 향유옥합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랑의 미술작업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기독교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통해 교회공동체를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미술을 외면하는 것은 복음의 진리와 풍성함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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