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들, 뜻은 같지만 신학노선은 달라

김성해 기자l승인2016.07.20 12:18:01l수정2016.07.20 13:56l13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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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틴 루터(1483~1546)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루터는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다. 그는 법률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505년 5월부터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약 2달 뒤, 고향인 만스펠트에서 에르푸르트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옆으로 천둥번개가 떨어졌다.

루터는 번개가 떨어지자 큰 두려움에 떨며 “성 안나여, 나를 살려주소서. 내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라고 서원했다. 이후 아버지인 한스 루터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로마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루터가 교회개혁을 일으키는 데 출발점이 됐다.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로마 교회의 가르침을 비판하던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의 슬로쓰 교회 문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루터의 반박문은 종교개혁의 원인이자 도화선이 됐다.

 

▲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츠빙글리는 스위스의 동부 농촌 지역 토겐부르크의 빌트하우스에서 태어났다. 1506년, 그는 로마 교회의 사제로 서품을 받았으며, 글라루스의 성직자로 부임하고 두 차례나 군종 사제로 이탈리아에 갔다. 전쟁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체험한 그는 용병제도를 반대했으나, 배척당해 아인지델른으로 옮겨졌다. 츠빙글리는 이 곳에서 설교를 하면서 로마 교회를 비판했다. 

1519년, 츠빙글리는 취리히에 있는 그로스뮌스터 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그로스뮌스터 교회에서 목회사역을 하던 츠빙글리는 어거스틴과 바울 신학을 독학했고, 종교개혁의 길을 걸어갔다. 1522년, 츠빙글리는 그의 사상이 함축적으로 요약된 ‘67개 신조’를 작성했고, 다음해인 1523년 1월 29일 취리히에서 공개토론을 개최하여 ‘67개 신조’를 중심으로 로마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비판했다. 

 

▲ 존 칼빈(1509~1564)

존 칼빈(Jean Calvin)
루터나 츠빙글리보다는 한 세대 후배인 칼빈은 프랑스 피카르디에서 태어났다.

파리 국회 연설과 연루되어 피신한 그는 파리 근교에 머물면서 ‘기독교 강요’ 초판을 구상하게 된다. ‘기독교 강요’는 1535년에 완성됐고, 칼빈은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했다. 이 작품으로 인해 칼빈은 종교개혁의 주도적인 신학자가 됐다.

1541년 칼빈은 제네바에서 새로운 교회제도를 위해 ‘교회법규’를 시의회에 제출했다. 또한  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는 감시위원회, ‘종무국’을 구성했다. 이후 제네바는 개혁 교회의 중심지가 됐고, 1559년 칼빈은 제네바 신학교를 설립하고, 그의 교회제도, 신학과 사상 등을 전 유럽에 전파했다.

김성해 기자  shkim@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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