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러나 아직
상태바
이미, 그러나 아직
  • 운영자
  • 승인 2016.04.12 2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섭 목사·백석신학 학장

지난주에 살핀 “전에는, 그러나 이제는(then, but now)”의 연속선에서 그리스도인을 설명하는 또 다른 성경의 답변은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이다. 본래 이 용어는 오스카 쿨만이 「그리스도와 시간」(1946년)에서 ‘영원’(아이온)을 향한 ‘시간’(카이로스)을 창조-타락-구속-완성이란 직선적-구속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그 ‘중간점’(이미)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죽음-부활과 ‘종결점’인 재림 사이의 긴장(그러나 아직)을 도식화하여, “우주, 이스라엘, 교회, 그리스도인 개인”에 적용함에서 비롯되었다.   

“전에는, 그러나 이제는”과 “이미, 그러나 아직”을 잘 요약한 말씀을 보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참조. 갈 2:20).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우리가 알거니와”, 무엇을 믿고 확실하게 알고 있는가? 우리의 ‘옛 사람’(예수님 믿기 이전의 나)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이미’ 못 박혀 영단번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 두 가지 목적은 “죄의 몸이 죽는 것”과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 ‘죄의 몸’은 분명히 이미 죽은 ‘옛 사람’과 구별된 ‘그러나 아직’ 살아있는 ‘사망의 몸’(롬 7:24), ‘죽을 몸’(롬 8:11), ‘구속을 기다리는 몸’(롬 8:23),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할 몸’(롬 12:1)을 가리킨다.   내 존재(being)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며, ‘이미’ 의롭다 인정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권자”(빌 3:20)인 ‘새 사람’이다. 몸 그 자체는 죄가 없지만, ‘그러나 아직’ 삶(doing)을 사는 동안 옛 본성인 죄굽성, 죄행위, 죄습관, 죄오염의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로 청교도들이 강조한 내 몸을 지배하려는 ‘죄 죽이기’(롬 8:13)의 영적 투쟁에 현저한 결실을 시위한다. 임종 시 마침내 죄의 몸에서 완전히 벗어나(해방, 자유),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의 부활”(고전 15:42-44), 즉 “몸의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며”(롬 8:23), 인내와 소망, 확신과 기쁨의 영적 하루살이에 전력투구하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