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소설] 박경희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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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소설] 박경희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빽
  • 박경희 작가
  • 승인 2016.03.29 2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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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앉아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양수리 샛강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봄볕에 반짝이는 물비늘이 그림처럼 예뻤다. 두물머리의 오래된 나무가 소리 없는 미소를 보낸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나를 환영해주는 것 같아 더욱 정겨웠다.

창밖의 풍경과 눈인사를 하면서 내 손은 가방 속의 하얀 봉투를 만졌다. 혹 실수로라도 잃어버릴까 두려워 봉투를 꺼내 지퍼가 있는 주머니에 넣었다. 일부러 백화점에 가서 산 선물가방도 잘 챙겼다. 인자하게 웃던 전도사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전도사님을 만나고 싶었다.

‘전도사님은 어떻게 변하셨을까? 나를 알아보시기는 할까?’

종착역인 용문역에 다다르자 전철은 많은 승객을 토해냈다. 울긋불긋 단풍잎보다 더 현란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역사를 빠져나갔다. 나도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밖으로 나왔다.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내려 가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10분 정도 지난 후 마을 회관 앞서 내렸다. 나는 약도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들녘에는 꽃다지들이 노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밭고랑에 앉아 냉이를 캐는 아낙네도 보이고, 간간히 누런 소를 끌고 밭갈이를 하는 농부도 보였다. 시골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마을을 지나자 작은 동산이 보였다. 야트막한 둔덕을 오르는데도 숨이 찼다. 그래도 얼른 전도사님을 만나고 싶어 뛰다시피 언덕을 올랐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을 즈음 숲 속에 세워진 회색 건물이 보였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저 안에 그토록 그립던 전도사님이 계신단 말이지.

가까이 가 보니 3층으로 된 건물은 낡았고, 손바닥만한 화단도 썰렁했다. 노란 민들레 꽃 몇 송이만이 피어있을 뿐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싶었다. 왠지 유배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회색 제복을 입은 수위 아저씨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 면회 왔어요?”

아저씨는 마치 따지듯 큰 목소리로 물었다.

“송숙자 전도사님 만나러 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위 아저씨는 돋보기를 쓰고 연락처를 뒤진 뒤, 고개를 들었다.

“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나의 온몸을 훑어보며 묻는 사무적인 말투에 가슴까지 차올랐던 기대와 흥분이 사라지는 듯 했다.

“제자입니다.”

나도 퉁명스럽게 답하고 말았다.

“외로운 분들 모시고 사는 곳이면 조금 더 친절하고 부드러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찾아 온 손님에게 이리 불친절하면……. 여기 머무는 분들에게는 더 냉정 하실 것 아닌가요?”

나는 따져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208호로 가 보세요.”

화는 나지만 공손히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대낮인데도 복도는 우중충하고 환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일 년 내내 햇빛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복도 끝에 있는 방이 208호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순간, 나는 방을 잘못 찾은 게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이가 모두 빠졌는지 연신 입을 오물거리는 할머니,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 등 대부분 중증 환자로 보였다. 한눈에 고독을 의복처럼 입고 사는 분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혹시 송숙자 전도사님 아세요?”

나는 사내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할머니에게 물었다. 내 말에 상고머리 할머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송 전도사. 알다마다. 정말 법 없이 살 분이지. 살다보니 송 전도사님 찾아오는 사람도 다 있네. 얼마나 반가울꼬. 지금 재활실에 운동하러 갔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근데 누구?”

할머니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싶은지 개인 신상부터 캐려 했다. 나는 할머니와 수다를 떨 기분이 아니었다. 방안 공기가 너무 텁텁하고 퀴퀴해서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전도사님이 이렇게 누추하고 양로원 같은 데서 살고 계시다니…….’

괜히 콧등이 찡했다. 마치 내 부모를 깊은 산 속에 갖다 버린 듯 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납덩이가 앉은 것처럼 답답했다.

“재활실이 어디 있나요? 제가 찾아 가 볼게요.”

“곧 올 텐데…….기다리지 그러슈. 정 그렇다면 3층에 가 보슈.”

할머니는 내가 말동무가 안 되겠다 싶은지 금방 뽀로통해졌다. 비상구를 통해 잽싸게 3층으로 올라갔다. 화장실 옆에 낡고 오래된 듯한 재활센터라는 간판이 보였다. 문 앞에 서자,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했다. 문을 열자 운동을 하던 할머니 두 세 분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지상에서 가장 선하고 그윽한 눈빛과 마주쳤다. 하지만 내 가슴 속에 있던 우아하면서도 멋졌던 전도사님은 없었다. 내 앞에는 구부정한 허리와 머리에 살구나무 꽃이 하얗게 핀 파파 할머니가 있을 뿐이었다. 이토록 꼬부랑 할머니가 되다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전도사님. 저 은휘예요. 되퇴올 천상교회…….”

전도사님은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너무 갑작스런 방문이긴 하지만, 왠지 나를 모르는 것 같았다. 섭섭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되퇴올 신 할머니 손녀딸이요. 엄마, 아빠가…….경운기 몰고 일하러 나가다 다리 난간에 부딪쳐서 돌아가신 집요.”

“아……네가 은휘야? 너무 많이 변해서 알아 볼 수가 없구나. 미안.”

그제야 전도사님은 박꽃처럼 웃었다. 솜사탕 전도사님의 미소를 보는 순간, 나는 이미 타임머신을 타고 언덕 위의 빨간 십자가 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도토리가 많이 난다고 붙여진 ‘되퇴올 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버스도 하루에 두 대만 오갈 뿐이라 용문까지만 나가도 ‘대처에 간다’고 할 정도였다. 그 때 나의 놀이터는 언덕 위의 예배당이었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간 뒤로 나는 매일 예배당에 갔다. 언덕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 밑에서 아이들과 술래잡기도 하고 사방치기도 하며 놀았다. 땅거미가 질 즈음이면 집으로 가는 대신 전도사님이 혼자 사는 사택으로 들어갔다. 천상 교회는 어른들이 열 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라 목사님이 없었다. 전도사님이 주일 설교도 하고 어린이부도 맡아 했다. 심지어는 교회 청소며 자질구레한 일들까지도 도맡아 했다. 거기다 깊은 산골에 있는 성도를 찾아 쉬지 않고 심방을 다녔다. 가끔은 나도 전도사님을 따라 심방이라는 것을 다녀 보기도 했다. 전도사님과 산을 넘고 들길을 걷는 재미에 쫓아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심방을 마치고 와 혼자 사시는 전도사님과 저녁을 먹는 시간은 낙원이었다.

“은휘야. 넌 오늘 주님과 함께 동행한 거야. 동막골의 아프신 할머니를 위해 은휘가 기도 많이 해줘. 행소리 엄 할아버지를 위해서도...기도해 주고.”

전도사님도 어린 나를 동무처럼 대해줬다. 하얀 이밥에 갓 볶은 멸치조림을 얹어 먹으면 꿀맛이었다. 꽁보리밥에 시래기나물이 전부인 우리 집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냥 밥만 먹고 나오기가 미안해서 교회 강단이며 의자를 걸레로 닦는 걸 도맡아 했다. 그럴 때마다 전도사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에 책을 쥐어 주셨다.

“오늘은 이 책 가져가서 읽어 봐. 짧지만 아주 좋은 책이야. 나도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은 책이란다.”

그 날 전도사님이 내게 준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나도 전도사님처럼 그 책을 외울 정도로 수없이 읽었다.

“은휘가 날 잊었나 했더니 이렇게 불쑥 나타난 걸 보니 어젯밤 좋은 꿈을 꾼 것 같네.”

내가 옛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전도사님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동안……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바삐 달려 왔어요.”

“바쁘면 좋은 거지. 은휘가 올해 몇 살이지?”

“서른 한 살이에요.”

“벌써 그렇게 됐어? 대학생 되어 서울로 갈 때가 엊그제 같은데…….하긴 내가 이렇게 늙었으니……그래... 선생님은 되었구? 결혼은 안 한 것 같긴 한데…….”

전도사님은 내게 궁금한 게 많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거동이 불편해 보이고 얼굴색도 좋지 않아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전도사님. 여기는 음식 먹으며 이야기 나눌 데가 없겠네요. 모처럼 전도사님 맛있는 것 사드리고 싶은데…….”

내 말에 전도사님은 이상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왠지 불안해 보이기조차 했다. 할 수 없이 나가는 건 포기하고 재활센터 옆 의자에 가 앉았다.

“왜요? 뭐 불편하세요? 전도사님.”

“아니. 여긴……. 은퇴하신 여목회자님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것은 알고 왔지? 나처럼 가족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지. 여긴 면회를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다른 목회자님들에게 미안해서 그래. 식당에 가려면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그냥……여기서 이야기 나누자. 그나저나 뭣 좀 먹었어? 어쩌나. 줄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전도사님은 남을 배려하는 데는 일등이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방에 계신 분들 나눠 드시게 간식이라도 사 올 걸 그랬어요. 다음에는 꼭 그럴게요. 그런데 전도사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일단 건강이 걱정되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난해에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영 몸이 개운치가 않아. 하늘나라 갈 때까지 남에게 신세지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고생 많으셨네요. 전도사님. 그래도 여기 공기가 좋아서 요양하기는 좋겠어요.”

나는 가슴이 짠하고 아픈 걸 숨기고 일부러 좋은 이야기만 했다.

“그럼. 모든 게 주님의 은총이지. 가족이 있는 노인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나처럼 아무 피붙이도 없는 사람을 거둬 주니 고맙지.”

그리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간 전도사님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자책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나는 준비해 온 선물과 봉투를 전도사님께 드렸다.

“전도사님 감사해요. 그 때 제 첫 등록금 대 주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 더군다나 사대가 뭔지도 모르는 내게 원서까지 사다 주셨잖아요. 얼마 전부터 정식 교사로 학교에 나가요. 그동안은 기간제 교사 많이 하느라 여유가 없었어요. 여기저기 전도사님 안부를 물었는데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여기 계신 줄 알았어요.”

대학생이 되어서는 과외며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신없었고, 졸업하고 나서는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교회에도 발길을 끊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혼자 모든 걸 해결해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 밖에 없었다. 임용 고시에 몇 번 실패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갈 때, 나를 구축한 것은 어릴 때 믿은 하나님이었다. 그리고 전도사님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중학교 때 엄마, 아빠를 사고로 잃은 뒤로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의지할 사람은 오직 전도사님 밖에 없었다. 간신히 읍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대학에 갈 생각조차 못한 내게 전도사님은 말했다.

“은휘야. 네 뒤에는 하나님이라는 막강한 빽이 있는데 왜 미리 절망하고 포기하려고 해? 지금처럼 공부만 잘 하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학자금 대출도 있고…… 길은 많아.”

전도사님의 말이 삶 전체까지 흔들릴 정도로 힘들 때마다 나를 붙들어 주었다.

“전도사님. 정말 죄송해요. 그동안 신앙생활도 너무 소홀히 했고요. 그래도 어렸을 적 전도사님이 들려 준 성경 말씀이 저를 살렸어요. 그럼에도 도리도 못하며 살았네요.”

“무슨 말을……잊지 않고 찾아 준 것만으로도 고맙지. 이렇게 예쁜 선생님 얼굴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

“저……이거…… 전도사님 드리려고 준비했어요.”

나는 빨간 내의와 하얀 봉투를 전도사님께 내밀었다.

“월급을 타면 부모님 내의를 사 드리는 거라면서요? 전도사님은 내게 어머니셨어요. 이 돈은 제 등록금 빌려 주신 것 이제야 갚습니다. 이자는 조금 밖에 못 넣었어요.” 전도사님은 내 말을 듣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

“네가 영특했잖니. 시골에서 그냥 머물기에는 너무 아까웠어. 다행히 네가 이렇게 자기 자리를 잘 잡아서 고맙다. 그런데 이렇게 선물까지. 정말 고맙다. 하지만 봉투는 아니다. 그 때 너에게 준 돈은 하나님이 주신 거야.”

전도사님은 하얀 봉투를 내게 자꾸 내밀었다. 내가 결코 받을 수 없다고 했더니 전도사님은 마지못해 봉투를 받으시면서도 미안해 하셨다. 나는 전도사님의 손을 잡아 드리며 물었다.

“근데 전도사님. 여기 생활이 너무 불편하지 않으세요?”

나는 유배지 같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냐. 이나마도 감사하지. 가족도 없는 여목회자들끼리 자매처럼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먼지 하나 가져 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좀 불편하면 어때. 날마다 주님이 동행하시는데…….”

말씀은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는데 눈에서는 그렁그렁 물기가 서렸다. 가족이 없는 서러움 때문 아닐까. 일찍 부모님을 잃은 나로서는 깊은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도사님. 이제 제가 가족이 되어 드릴게요.”

전도사님은 나를 품에 꼭 안은 채, 고맙다는 말을 열 번도 더 했다.

“하나님이 든든한 빽이잖아요. 미리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전도사님이 예전에 내게 해 주셨던 보석 같은 말을 웃으며 전했다.

“고맙다. 은휘야. 넌 하나님이 보내 준 선물이었어. 너는 어릴 때부터 친딸처럼 내게 재롱을 많이 부렸지. 그런데 이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찾아 주다니…….”

전도사님이 머무는 안식처를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호랑나비가 너울너울 나를 따라왔다. 다음에는 전도사님 손잡고 가까운 들로 봄나들이를 떠나야겠다.

 

▲ 박경희 작가

박경희 작가
오랫동안 방송 글을 써왔다.2006년 한국방송프로듀서 연합회의‘한국방송작가상’을수상했다.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에 뜻을 두어 2004년 월간 문학에 <사루비아> 라는 소설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탈북 청소년 소설집 <<류명성통일빵집>>뜨인돌, 청소년 장편 소설 <<고래 날다>> 다른, 청소년장편소설《분홍벽돌집》다른, 탈북청소년을 위한 하늘꿈학교 르포집《우리의 소원은 통일》홍성사, 탈북동화 <<감자 오그랑죽>> 《엄마는 감자꽃 향기》강같은 평화,<<여자나이 오십, 봄은 끝나지 않았다>> 와《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것은》고려문화사에서 나온 에세이가 있고,《이대로 감사합
니다》두란노 <천국을 수놓는 작은 손수건>> 평단 문화사 그 외 다수의 책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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