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노래한다 '오 여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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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노래한다 '오 여름이여!'
  • 승인 2003.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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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생각의 숲을 만들어 준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겨울을 내향적 계절이라고 한다면 여름은 외향적인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은 집안으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짜게 하지만 여름은 산으로, 바다로 사람을 끌어낸다.

삶을 명랑하게 하는 계절, 여름
여름을 가리켜 재충전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인생은 속으로 끙끙 앓는 식의 삶보다 밖을 향하는 외출이 멋져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여름은 삶을 명랑하게 하는 계절이다. 이런 방식의 삶은 긍정적임을 입증한다. 여름은 역시 희망이다.

부정적인 요소를 씻어주는 것이 시원한 여름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열리는 관용이 생겨난다. 옹졸하고 이기주의적인 심사가 여름엔 느긋해지고 베푸는 마음으로 바뀐다. 요사이는 왜그런지 찌푸둥한 일들이 가슴을 짓누른다.

노동자들의 만족함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데모가 줄을 잇고, 북한의 핵문제를 놓고도 미국은 ‘악의 축’운운으로 주한 미군을 움직이겠다는 엄포(?)도 우리에겐 불안하기 그지없다. 싱싱한 삶의 고동 소리를 이 여름에 듣고싶다.

인간들은 자신의 독창성에 쉬 싫증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남을 모방하길 좋아한다. 유행이란 미명아래 자신의 좌표는 쉽게 팽개치고 남의 것을 무조건 선호한다. 여기에 속임수가 난무하고 거짓도 판을 친다. 자연은 그렇질 않다. 특히 여름은 그것을 웅변처럼 가르친다. 자연은 모방이란 없다. 독창적이다. 자연은 나름대로 아름답고 조화롭게 어울린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참나무는 참나무대로 그리고 풀한포기도 제 나름대로 남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의 모습으로 풍요롭게 분위기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자연은 순수하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다. 남의 눈을 속이거나 피하지도 않는다. 그런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교훈을 준다. 역시 자연은 순리(順理)를 밟는다. 한꺼번에 잎을 내거나 꽃을 내지않는다. 때가 되면 나오고 또 올라선다.

여름은 또 전진이다. 활성화이다. 다른 계절은 움직이는게 느린데 여름은 너무도 뚜렸하다. 울창한 숲속에서 여름을 한번 읊고 온몸으로 젖어들면 저절로 마음도 생활도 전진임을 실감한다. 여름은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을 밖으로 끌어내고 안아준다.

하나의 미물까지 굴속에 숨어있게 무관심 하지않고 밖으로 나와 활동을 마음껏 하게 만든다. 여름같은 사람은 마음이 넓다고들 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여름을 가리켜 생산력이 있는 모성애를 갖게 한다고 했다.

여름에 땀을 적실듯 따가운 햇볕속에 열매가 익어간다. 열매는 여름동안 맛을 내고 무르익는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수련은 대개 여름에 있다. 기관별로, 교회별로 심신을 수련함은 바로 교회봉사를 더 알차게 하기 위함이다.

흔히들 휴가나 수련회를 휴식으로만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름 예찬론’을 쓰는 이유도 여름같은 솔직한 재충전이 교역자들이나 교인들에게도 꼭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분열과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 곳곳에 화합과 평화의 열매가 이 여름처럼 주렁주렁 열렸으면 한다. 여름동안 농부들의 땀방울로 가을의 추수가 기약되듯이 여름에 심는 아름다움이 우리의 주위에 넘쳐났으면 좋겠다.

여름에 심어놓는 충만으로 가을에는 더많이 생각을 여름으로 고맙게 생각할 그런 여름이었으면 한다. 고 김현승시인의 시가 문득 이 여름에 생각난다.

가을은 여름이 있었기에 더욱 돋보이기 때문이다. 한소절만 적어본다. “가을에는 생각하세 하소서/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멋진 7월에, 더 멋진 여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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