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르포]“전국에 계신 여러분, 새해에는 복 미리 많~이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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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르포]“전국에 계신 여러분, 새해에는 복 미리 많~이 내세요”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5.12.30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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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남산골칼국수’의 ‘무한 나눔’
▲ 정인식 집사는 연말연시에만 몰리는 나눔이 아닌 1년 365일 매일매일 이뤄지는 나눔을 꿈꾼다. 나누는 삶이 주는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정 집사의 새해 소망은 ‘대한민국 전국에서 나눔이 순환되는 것’이다. 남에게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것도 함께 내어주는 나눔이다.

손님이 미리 낸 밥값으로 불우이웃 칼국수 대접하는 정인식 집사

경상북도 구미의 풍경은 차가웠다.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어서 더 그랬던 걸까. 회색 하늘 아래, 낙동강에 비친 구미의 풍경은 참으로 차가웠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오래된 산업도시가 거대하게 이어졌다. 영화 ‘스팀보이’가 생각날 만큼 복잡하게 이어진 파이프, 땅에서부터 솟은 공장 굴뚝들, 온통 무채색 뿐인 길을 거닐며 회색도시 구미를 훑었다. ‘찬란한 구미, 위대한 구미’란 표어가 크게 써 있는 입간판이 무색하게 느껴질만큼, 구미는 쓸쓸했다.

“구미 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문 닫는 가게들이 한집 건너 한집입니다. 구미공단에 들어온 대기업도 다 빠져 나가기 시작하고, 그 밑에서 하청받아 일하던 중소기업은 말도 못하지요. 에휴, 말도 마입시다.”

구미종합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만난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구미가 궁금해 와봤다”는 말에 한 중학생은 “구미 진짜 볼 거 없는데….”라며 핀잔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곳에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 마침 거대한 탑 앞을 지나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구미산업단지가 수출 10억불을 돌파해 세워진 ‘수출산업의 탑’(1976년)이었다. 올해로 세워진지 40년이 된 구미의 탑은 명성과 달리 한물간 듯 보였지만, “경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는 구미 사람들은 이 탑을 보며 힘을 낼 거라 생각했다.

최악의 불황 구미의 ‘나눔 호황 칼국수’
시외버스를 구미 투어버스 마냥 타고 국내 최대 내륙공업기지를 지나 구미대교로 거대한 낙동강을 건너면 구미 인동이 나온다. 지나왔던 산업단지와 다르게 여느 동네와 다를 거 없어 보이는 북적이는 번화가가 보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배가 무척 고파왔다. 인동정류장에서 내려 인동 시내를 둘러보니 작은 골목 사이로 ‘남산골칼국수’가 보인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한 남자가 상을 치우다가 양 손을 들고 반갑다는 손인사를 전한다. ‘남산골칼국수’ 주인 정인식 집사(인동중앙교회)다.

5시간 동안 산 넘고 물 건너 ‘남산골칼국수’를 먹으러 찾으러 온 이유는 정인식 집사 때문이다. 국산 통밀로만 만들었다는 ‘우리밀 100% 칼국수’ 맛도 궁금했지만, 정 집사의 나눔 현장을 직접 보기도 하고, 동참하고 싶은 마음도 컸기 때문이다.

▲ ‘남산골칼국수’ 문에 크게 써있는 입간판은 다른 가게들과 좀 남다르다. “파지 할아버지 할머니 언제든지 칼국수 매일 무료로 드립니다”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정인식 집사도 제일 먼저 ‘구미 불황’을 전한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늦은 점심을 하러 오는 손님이 많았는데 뚝 끊겼기 때문이다. 차림표를 보니 ‘우리밀 칼국수’가 6천원, 구미 시내 어느 밥집에 가도 만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다들 점심도 굶고 일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게는 한산했다.

하지만 곧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염이 가득하게 자라고 남루한 차림의 할아버지였다. 최악의 불황이라는 구미에서 ‘남산골칼국수’가 공짜 점심으로 제일 잘 팔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하루에도 수십번 가게를 드나드는 권 할배가 누군가 미리 값을 치른 칼국수를 대접받고 있다.

파지 할아버지, 독거 할머니는 ‘우수고객’
“큰일났어! 아무리 돌아다녀도 박스도 신문도 아무 것도 없어. 큰일났다. 나 배고파. 밥이나 줘.”

한두 시간 꼴에 한 번 ‘남산골칼국수’를 찾는 권 할아버지는 뇌를 다쳐 기억력이 좋지 못하다. 올해로 75세지만 기억은 71세에서 멈춰있다. 나이를 물으면 오늘도 내일도 “71살 말띠”라고 대답한다. 이렇다보니 칼국수를 먹고 가도 잊어버리기 일쑤. 가게를 왔다가 한 시간 후에 또 찾아와서는 오만 가지 걱정을 늘어뜨리고 배고프다며 "밥 달라"고 말한다.

한번은 가게로 찾아와 칼국수 한 그릇을 먹던 중에 권 할아버지는 옆 테이블 손님이 시킨 만두를 아무 말 없이 집어 먹었다. 정 집사는 권 할아버지를 내쫓기는 커녕 오히려 권 할아버지 편에 섰다. 게다가 화를 내며 나무라는 손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일반적인 음식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권 할아버지를 쫓아 내거나 다시는 가게에 오지 못 하게 혼쭐을 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인식 집사에게 권 할아버지와 같은 이웃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형제였다.

▲ 홀로 사는 할머니가 칼국수를 대접받고 누간가 후원해 준 쌀 한가마와 라면 5봉지, 귤 6개를 유모차에 싣고 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니 어떠한 일이든지 다 사랑하게 되더랍니다.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저는 타성에 젖은 먹거리를 팔거나, 어려운 이웃들을 업신여기며 살았을 겁니다. ‘배고픈 자에게 주라’고 하신 말씀처럼 저는 그저 행함으로 믿음을 실천할 뿐입니다.”

권 할아버지처럼 매일 파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들이나 홀로 사는 노인들은 ‘남산골칼국수’의 우수고객이다. 하루에 여러 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거른 끼니를 때우러 이곳을 찾는다. 권 할아버지는 유별나게 가게를 드나들지만, 염치 때문에 배가 고파도 참고 또 참다가 칼국수를 찾으러 오는 분들도 많다. 가게를 찾을 때마다 칼국수 한 그릇 뿐만 아니라 쌀 한 가마, 라면 한 박스, 김치 한 통, 계란 한 판, 과일 등 정인식 집사가 쥐어주는 음식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칼국수 한 그릇으로 끝나는 일반 손님과 달리 파지를 줍는 노인이나 독거노인들은 ‘남산골칼국수’의 우수고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 '남산골칼국수' 계산대 앞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사랑 나눔'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정인식 집사는 가게를 방문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칼국수 한 그릇 대접과 더불어 '나눔' 물품들을 더 얹어 보낸다.

미리 내는 가게 ‘남산골칼국수’
‘남산골칼국수’는 ‘미리내 가게’다. 미리내 가게는 ‘미리내 운동’에 참여하는 가게다. 100여 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맡겨놓은 커피(Caffe sospeso, 영어로 Suspended coffee)’를 모체로 한 한국판 ‘맡겨놓은 커피’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누군가 대신 커피 값을 치른 것처럼 남산골칼국수는 누군가 대신 치른 칼국수 값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칼국수 한 그릇’을 전한다. 

칼국수 가게를 처음 차렸을 때부터 정인식 집사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칼국수를 무료로 대접했다. 그러던 중에 ‘미리내 운동’을 알게 되어 본격적으로 나눔에 뛰어들었다. 운동에 참여하게 되니 나눔은 더 풍성해졌다. 가난한 노인에게 대접했던 칼국수 한 그릇은 어려운 가정의 아동들에게도 대접하게 되었고, 여기저기에서 소식을 듣고 나눔 물품을 보내오기도 했다.

정인식 집사는 모든 나눔 활동을 페이스북(www.facebook.com/jungtnt4906)에 게시한다. ‘나눔 바이러스’를 확산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나눔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안 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나눔은 행복이고 사랑입니다. 페이스북에 나눔 현장을 게시하는 이유는 나눔 문화를 확산 시키고 싶어서입니다. 또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저에게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어떻게 나눔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려 줄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적자에 집도 팔았지만 나눔은 계속 된다
남산골칼국수에는 한겨울에도 ‘국산 검정콩국수’를 판다. 국산 서리태를 즉석에서 갈아 내어주는 콩국수에는 호두, 아몬드, 호박씨 등 고소한 재료들이 아낌없이 함께 갈려 고소함이 더 진하다. 국산 밀로 반죽한 면은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칼국수 맛집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맛과 쫄깃함을 가지고 있었다. 남는 게 있을까. 소비자 가격에 비해 한 그릇에 담긴 정성과 깊은 뜻은 너무나 값졌다.

“우리집 음식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이 좋아하시지. 좋은 재료만 엄선해 건강한 음식을 만들자는 각오로 합니다. 국산 우리밀 쓰는 이유도 건성건성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국산 밀가루는 수입 밀가루보다 가격이 2배다. 그래서 국산 밀가루를 쓰면 사실 남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정인식 집사는 건강한 식생활 개선을 위해 우리밀을 고집한다. 가게 안 한편에는 우리밀 자루가 쌓여있다. 창고에 아무리 쌓아 두어도 문제없는 수입 밀가루와 달리 국산 밀가루는 쥐나 바퀴벌레가 와서 파먹기 때문이다.

“음식 칼럼리스트도 건강한 먹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조미료를 사용해 맛을 냈는가보다 어떤 재료로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가 먼저 건강한 먹거리를 찾아야 음식점 주인들도 바뀔텐데 말입니다.”

남산골은 산모나 어린이에게 연중 50% 할인 행사도 하고 있다. 출산 장려를 위해서다. 정인식 집사는 “우리나라가 잘 살려면 건강한 사람들이 많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옛날 어려운 시절에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었겠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이 되는 음식보다, 사람이 먹기에 제대로 된 먹거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다. 임산부들과 아이들은 물론 건강을 챙기는 젊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래도 가게 형편은 늘 적자였다. 결국 살던 집을 다 팔게 되었고, 가게에서 숙식을 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인식 집사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나눔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대한민국의 나눔이 365일 순환되길
정인식 집사가 교회를 다니게 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6년 전만 해도 독실한 불교신도였다. 가게가 어려워지던 참에 우연히 교회를 가게 되었고, 성경을 완독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감사가 넘쳤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 되어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이 즐거웠다.

“어릴 적 굶어봐서 나누는 것도 곧잘 했지만, 지금처럼 다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보시기에 좋은 삶’을 허락해 달라는 것 뿐 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변한 제 모습이 너무 신기합니다. 하나님을 만났기에 가능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더라면 오늘을 견뎌내지 못 했을 겁니다.”

나누는 삶이 주는 행복을 알기에, 정인식 집사는 새해 소망도 ‘대한민국 전국에서 나눔이 순환되는 것’이다. 남에게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것도 함께 내어주는 나눔 말이다.

국수 두 그릇을 먹고 나니 어느새 구미에는 저녁 어스름이 깔려 오고 있었다. 구미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남산골칼국수’에서부터 좀 걷혀질까 싶어, 국수 두 그릇에 만두 두 상자까지 포장해 ‘미리내 매출’을 두둑히 올려주고 길을 나섰다. 정인식 집사는 “다음주에 오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도 칼국수 잘 대접하겠습니다! 조심히 올라가이소!”라며 함박웃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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