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땅이 된 에덴의 동쪽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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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땅이 된 에덴의 동쪽 이라크
  • 승인 2003.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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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속담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에덴 동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계속 에덴 동산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부지런히 맴돌았다.

바로 옆에 있는 반(Van) 호수와 저 멀리 건너편에 있는 우르미아(Urmia) 호수 주변은 창세기에 언급된 네 강을 이루는 첫 발원지가 되고 있다. 이 두 개의 짠물 호수가 자리잡고 있는 분지는 한 때 알메니아로 알려진 광활한 지역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서쪽에는 터키 동부, 북쪽에는 오늘날의 알메니아, 동쪽(우르미아 호수와 카스피해 사이)에는 아제르바이젠, 남쪽에는 쿠르디스탄주가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에덴 동산은 이곳 근처에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바로 이 곳 어디에선가 인류의 첫 조상은 행복의 첫 보금자리를 펴고 화려한 무지개 빛 꿈에 흠뻑 젖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동방의 낙원 에덴 동산이야말로 정녕 허황된 신화 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한 구속사의 현장 바로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정확한 위치는 거의 흔적도 없이 지구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동안 극심한 지각변동에 의해 땅의 형태가 수없이 바뀌어졌을 뿐만 아니라 땅의 이름도 다양하게 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이 땅에 낙원을 건설해 보려는 인간의 어리석은 노력을 엄중히 경고하는 메시지일런지 모른다.

원래 필자는 에덴 동산의 발원지에서 티그리스강 상류의 물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이라크 국경을 넘어서 고대 문명을 찬란히 꽃피우고 구속사의 한 부분에서 악역을 도맡았었던 옛 앗수르와 바벨론과 아브라함의 고향 등을 찾아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만 같은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초긴장 상태는 부푼 기대와 설레임 속에 이 곳 먼 중동 땅까지 숨가쁘게 달려 온 동양의 순례자로 하여금 큰 아쉬움의 발걸음으로 뒤돌아 서게 했다.

그렇지만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이룬 고대 중근동에 대한 학문적 열정과 무엇인가 끝까지 파헤쳐 보고싶은 끈질긴 집념은 현대문명의 타임 머신에 무한한 가능성의 날개를 붙이고 옛 메소포타미아의 하늘 위로 날아가게 하였다.

이라크 국경에서 발걸음을 돌린 지 두 달 여만에 드디어 미영 연합군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이라크의 하늘은 제트 전투기의 요란한 굉음과 탱크의 케터필드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와 폭탄 냄새로 가득 채워졌고 에덴의 낙원이었던 땅은 부상자들이 울부짖고 썩은 시체들이 뒹구는 저주스런 죽음의 땅이 되고 말았다.

아득히 먼 옛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가인의 후예들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에덴의 동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시날 땅에 이른 그들은 거기에 탑과 성을 쌓고 목축과 농업에 종사하면서 수금과 퉁수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한편 두발가인이 동철로 만든 각양 날카로운 기계들은 고대 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켰지만, 가공할 만한 전쟁 무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렸다.

지구상에 아무 기록도 남겨져 있지 않은 길고 긴 오랜 세월을 거쳐 역사의 지평 위에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 이라크(Iraq, 페르시아어로 ‘낮은 땅’)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하천 문명을 이룩한 최고의 문명 국가였다.

일찍이 이곳은 그리스인들이 두 강(「포타미아」, 유프라데스와 티그리스) 사이(「메소」)에 있는 땅이라며 메소포타미아로 이름짓고 쳐다보던 곳이었고 수많은 종족들의 발길이 교차하면서 문명의 꽃을 활짝 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이 땅에서 사람들은 최초의 설형 문자를 창안하였고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가 “도시혁명"이란 찬사를 서슴없이 붙여주려고 했던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 수메르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눈에는 눈, 귀에는 귀"로 알려진 동해보복법 사상에 기초하여 최초의 법전 우르 남무가 만들어졌으며,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수도 시설이 남아 있다.

현재 이라크에는 1만 곳 이상의 고대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중에는 기원전 5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다. 이번 전쟁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재앙들을 불러 일으켰고 문명사에 둘도 없이 귀중한 유산들이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특히 가슴 아픈 것은 바그다드 박물관에 보관된 천문학적 가치를 가진 보물들이 대부분 약탈당한 것이었다.

사실상 이라크의 땅 속에는 천형(天刑)처럼 이어진 수난과 전쟁 5천년사가 피처럼 붉게 배어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개 대륙이 교차되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이 땅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전란을 겪어야만 했고 도시국가 라가쉬와 움마 사이에 최고(最古)의 정전 조약이 맺어졌던 수메르 시대 이후로는 엄청난 영욕과 부침을 반복해야만 했다. 숱한 역사의 주역들은 피로 얼룩진 이 고난의 땅을 통치의 공간으로 삼아 새로운 문화를 일구어 냈다.

수메르를 통합하여 최초의 셈계 제국을 건설했던 앗가드인, 우르남무 법전을 계승하여 함무라비 법전을 만들어 후대에 전한 아모리인, 그 아모리인의 바벨론 전통 문화를 계승한 카시트인, 구바벨론을 정복했다가 신바벨론에 넘겨준 앗수르인, 대제국을 건설한 후 유대인들을 포로로 끌고간 갈대아인, 그러나 그들의 흔적은 지금 어디에서나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성경에서 그들이 예루살렘의 꿈을 무자비하게 지워버렸던 악한 주역들이었다는 기록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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