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맛 없고 살 맛 잃은 자, 다 이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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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맛 없고 살 맛 잃은 자, 다 이리 오라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12.0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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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으로 사랑 나누는 교회
▲ 무료 급식 때마다 자기 시간과 물질을 바쳐 돕는 천사와 같은 분들이 있다. 이강호 목사(사진 맨 왼쪽 위)는 이들에게 늘 감사하다. 한편 늘 봉사자들은 부족하다. 이곳에 와서 함께 배식하고 설거지 해줄 봉사자를 찾고 있다(문의 02-3446-2001). 몸은 힘들어도, 이곳에 오면 혹 잃었던 삶의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늘사랑교회 이강호 목사

강남구 논현동 22번지. 논현 신동아아파트 앞길에 들어서자 밥 냄새가 향기롭다. 이곳은 좀 산다는 동네인데, 밥 냄새가 진동하는 게 좀 어리둥절하다. 이어 위장을 자극하는 맛있는 국 냄새까지. 식욕을 자극하는 이 냄새, 어디서 시작됐나, 주변을 둘러보니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띈다. ‘365일 24시간 항상 문이 열려있는 교회.’ 늘사랑교회다(02-3446-2001).

입구에선 할머니들이 채소를 다듬고 있다. 저 아래서, 뜨거운 설교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식당에 가득 찬 독거노인들이 말씀을 듣고 있다. 종종 응답되는 “아멘” 소리. 한쪽에선 부산히 밥을 퍼놓고 있는데, 모락모락 나는 그 더운 김이 생명의 말씀과 어우러져 묘한 감동을 준다. 강력하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이는 이 교회 이강호 담임목사의 아내, 최정혜 목사다.

헌금시간이다. 300여명이 낸 헌금이라 해도, 동전뿐이라 몇 천원 될까 말까 하지만, 드릴 건 드려야 예배다. 이 교회는 얼마 전까지 예배 전에 이들에게 천 원씩 나눠주었다. 요즘은 어려워 500원으로 낮췄다.

▲ 배식 봉사 중인 이강호 목사.

빚내서 구제하고 선교한다
드디어 식사시간이다. 봉사자들이 바쁘게 밥과 국을 나른다. “왜 밥을 안쪽으로 전달하지 않고 거기서 먹느냐”는 투덜거림에, 서로 먼저 먹겠다는 투닥거림까지, 흡사 전쟁터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는 곳이 전쟁터 아닌가.

이곳만큼 한 끼 밥이 소중하게 대우받는 곳을 요즘 찾기 힘들다. 다이어트 한다고 밥을 덜어내는 시대에, 이곳에선, 서로 밥을 더 달라고,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접시마다 산처럼 올라간 하얀 밥! 머리 하얀 노인이 얼굴을 파묻고 고봉밥을 맛나게 드시느라 정신이 없다.

“어떤 분들은 몰래 밥을 준비해온 곳에 쏟아 더 가져가시기도 해요. 원래 그러면 안되거든요. 그런데 불쌍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몰래 가려주곤 해요. 교인들이 그러면 제게 ‘목사님이 버릇 다 버려놓는다’고 뭐라 하시죠. 그래도 어떡해요. 불쌍하잖아요. 어떤 분은 이틀 만에 여기 와서 한 끼 먹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이강호 목사가 이 일을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다 되간다. 잠원동에 처음 개척했을 때, 빵과 우유를 주던 것이, 20년 전 이곳으로 옮기면서 매주 목요일 12시에 무료 급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이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다. 강남 한복판에 노숙자, 독거노인들이 떼 지어 와서 밥 얻어먹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 없다.

“그런데 좋은 소문이 점점 나니까 주민들도 이젠 이해하시죠. 언젠가 이명박 전 대통령께서 여기 지나가시다가 우리 교회 보시고 참 좋은 교회라고 말씀도 해주셨어요. 재정은 항상 어렵습니다. 매번 돈이 남아서 무료 급식하는 게 아니거든요. 빚내서 합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 빚이 수십억이에요.”

그런데, 올해 이웃을 돕는 구제 선교비는 더 늘렸다. 15군데 돕던 선교비가 40군데로 늘어났다. 선교와 구제, 중보기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다는 게 그의 목회철학이다. 그래서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부터 24시간 교회 문을 열어놓았다.

“교회 문을 열어 놓으니까 어려운 분들이 찾아오는 거예요. 먹을 것 달라, 재워 달라, 그런 분들을 보면서 처음에 빵과 우유를 주게 된 거죠. 그게 점점 늘어나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IMF 때에는 힘드니까 교인들이 중단하자고 했는데,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교인들이 많이 나갔어요. 재정은 더 어려워졌지요. 그래도 구제를 멈출 순 없었습니다. 빚 있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겁니다. 여기 밥 드시러 오시는 분들에게, 한 달에 한번은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기도드리는데, 꼭 한 달에 한번은 먹게 해주시더라고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밤의 제왕’이 거듭나다
이 목사의 서재 한쪽엔 때 묻고 낡은 경제잡지와 여성잡지가 꽂혀있다. 그 경제잡지 표지에 ‘강호동’씨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30대 시절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 카바레를 4개나 가지고 ‘밤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잘나가던 영화배우 신성일 씨, 또 ‘수사반장’으로 유명했던 탤런트 최불암 씨 등과 찍은 사진이 그 시절을 짐작케 한다.

젊은 나이에 집을 네 채, 빌딩, 그리고 카바레를 네 곳이나 가지고 살았다. 한국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대회 심사위원도 하며 연예인들과 어울려 다니고 그 당시 아무나 못하던 멧돼지 사냥을 군수, 경찰서장들 양옆에 끼고 신나게 다녔을 만큼 ‘멋대로’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지금 세상 떠난 첫 번째 아내와 헤어질뻔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신학공부까지 하고 목사가 됐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제가 하도 신기하니까 한 여성잡지에서 제 이야기를 이렇게 썼어요. 처음 목회 시작하면서 청주교도소에 가서 사역을 한 6년 했어요. 골탕 먹이고 애 먹이는 사람들도 많았죠. 제게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용서해주면 또 속이고. 그래서 어떤 교우는 이러더라고요. ‘목사님은 자기 밑도 못 닦으면서 남의 밑 닦는다’고요.”

그곳에서 130여명을 신학교로 보낸 진기록을 그가 갖고 있다. 한번은 텔레비전 방송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그를 찾은 일이 있다. 그가 교도소에서 도와준 김성기 목사가 그 은혜를 갚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전과 28범이었던 그는 이 목사를 만나 삶이 바뀌었다. 여러 번 용서하고 또 용서한 그의 사랑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새로워진 사람들을 보면 정말 보람됩니다. 힘들어도 이런 기쁨이 있으니까 이 일을 계속 하는 겁니다. 밥 드시러 오시는 분들 중에서 제가 40여명 정도를 뽑아요. 그래서 세례공부를 시킵니다. 그때 5천 원씩 줍니다. 그분들이 나중에 그래요. ‘목사님 만나 구원받았다’고요. ‘이제는 돈 안줘도 괜찮다’고요. 그 모습을 보면 참 감사하죠.”

▲ 육신의 밥 뿐만 아니라 '영혼의 밥'을 먹이는 일도 중요하다. 무료급식 전에 뜨거운 예배를 항상 드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들 중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세례를 받고 교회를 나간다.

“천국이 찜질방만큼 좋아요?”
얼마 전엔 충격적인 경험도 했다. 이 목사는 무료 급식 받으러 오는 분들을 데리고 일 년에 한두 번 찜질방 같은 곳에 가서 잘 먹고 푹 쉬다 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가 환갑 때에 누가 쓰라고 준 2천만 원으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280명 야유회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됐다. 그날도 찜질방에 모시고 갔다가 돌아오려고 하는데, 장애인 아들과 함께 온 늙은 어머니가 이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 죽어서 천국에 가면 천국이 이렇게 좋을까요?”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난생 처음 찜질방에 와서, 얼마나 좋으면 그랬겠습니까. 너무 안되서, 그 모자만 하루 더 찜방에 있게 했어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 주로 노인들이다보니 많이 또 죽습니다. 섭섭하지만, 천국에서 만날 소망이 또 있잖아요. 그분들이 자기 가족보다, 하나님 다음으로 저를 좋아해요. 제가 뭔데요... 참 감사하죠.”

지금 사택도 따로 없이 교회에 있는 1미터 20센티미터 높이 다락방에 살고 있는 그는 은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의 소망은 지금껏 모든 걸 다 쏟아 부어온 이 일을 또 다른 곳에서 계속 하는 것이다. 주변 동기 목회자들은 이런 그를 처량하게 보기도 한다.

교인들은 많이 나갔지, 재정이 어려워 빚도 많지, 청소하고 서빙하고, 어려운 이들 뒤치다꺼리로 바쁘지, 그러니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활짝 웃는다.
“저는 행복해요. 이렇게 봉사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잖아요. 제가 찜방에 가면 어르신들 50명 등도 밀어드려요. 은퇴하고서도 제 소망은 역 가까운 곳에서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겁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것다,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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