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랏 산을 떠나 에덴의 동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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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 산을 떠나 에덴의 동쪽으로
  • 승인 200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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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했지만 마음은 무척 즐거웠고 발걸음도 휠씬 더 가볍게 느껴졌다.

마치 혹독한 군대 지옥 훈련을 마치고 멀리 보이는 고향 땅을 찾아가는 초년 휴가병의 들뜬 마음과도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거의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우리 일행은 산 위로 함께 올랐던 셀파와 포터들이 살고 있는 쿠르드 마을에 잠시 들렀다.

흙벽돌을 두텁게 쌓아 올려 지은 어둑 컴컴한 방 안에 들어서니 회교의 기도문을 수놓은 큰 카펫이 벽에 걸려 있고 벌겋게 달아오른 조개탄 난로 앞에는 열 명 남짓한 식구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오붓한 가족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뜨거운 터키차를 마시는 동안 함께 동행했던 젊은 포터는 틈틈이 등산객들에게서 배웠다는 서툰 독일어로 식구들을 한 사람씩 소개해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6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직한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르더니 그 옆에 있는 20세 중반 정도의 젊은 여자도 역시 어머니라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어떻게 어머니가 둘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포터의 아버지가 얼마 전 이웃 마을에 있는 처녀에게서 아이를 낳게되자 이곳에 데리고 와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쿠르드 마을에는 부잣집인 경우에 한 집안에 서너 명의 부인이 각기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함께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현듯 이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란에서 먼 옛날 야곱이 네 부인을 거느리고 살았던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기억 속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일부다처제도가 척박한 삶의 환경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였는지, 아니면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전통이 만들어낸 시대착오적인 악습이었는지는 몰라도 역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시대상황의 흐름을 거부한 채 옛 공간의 울타리 안에 계속 머물러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한편 안스러우면서도 이상스럽게만 느껴졌다.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빤히 쳐다보는 천진스러운 어린아이들의 표정에는 수천 년 동안 나라없이 유랑해 온 쿠르드인의 슬픈 역사가 깊숙이 새겨져 있는 듯 하였다. 어쩌면 아브라함 시대 이전부터 고유문화와 전통을 끈질기게 이어온 그들은 최근 후세인의 독재 정권 하에서 수십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엄청난 비운을 당하기까지 했다.

마을 입구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셀파와 포터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산을 내려왔을 때 이미 도베야짓 마을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겨져 있었다.

오랜만에 쿠르드인들의 별식(걸죽한 양고기 국물에 빵을 찍어 먹는 것)으로 저녁 배를 잔뜩 채운 후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로 고꾸라지듯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밤새도록 하얀 눈 위를 수없이 오가는 허상을 쫓아다니다가 새벽을 알리는 코란경의 스피커 낭송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런데 의식은 분명히 깨었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집스런 의욕 하나만으로 무리하게 강행하였던 아라랏 산행은 마지막까지 몸을 지탱시켜주던 한가닥의 힘까지 다 빼앗아 가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철야 기도 시간 때 목청 높여 부르던 복음 성가의 한 대목이 뇌리 속에서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흘러나왔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으라. 내가 너를 도우리.” 그렇다! 일어나야 한다. 이제 나는 겨우 이번 순례 여정의 첫 장을 막 넘겼을 뿐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별러왔던 에덴의 위치도 직접 찾아가 확인해야 하고, 아브라함이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거쳐 가나안으로 이동했던 옛 경로도 추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위대한 구속사의 드라마가 펼쳐졌던 현장들을 직접 둘러보고 거기에서 계시의 영에 충만했던 성경 기자들의 생생한 숨결을 함께 호흡해 보아야만 한다.

온 몸에 힘을 주고 간신히 일어나 몇 발자국을 걸어 보았지만 여전히 다리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다리와 발목은 온갖 상처투성이로 얼룩져 있었고 손과 발은 이미 시퍼렇게 동상이 걸려 부어 있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고지대 강한 자외선 때문이었는지 선글라스를 썼던 부분 이외에는 벌겋게 타 버려 마치 외계인과 같은 이상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느긋한 아침 나절, 두 셀파 파라슈트와 메멧이 저녁에 가져간 필름들을 사진으로 현상해서 가지고 왔다. 식사하는 동안 특히 아라랏 산에서 웃옷을 벗고 찍은 사진을 본 주변의 손님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꼬레! 꼬레!”하며 외쳤다.

파라슈트씨는 안 포켓에서 누렇게 빛 바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필자가 아라랏 산 정상 근처에 올랐고 겨울에 올랐던 첫 번째 한국인이라는 내용과 함께 산악협회 스템프와 싸인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등산 인증서와 같은 것이었다. 졸지에 산악 등산가가 되어 버린 필자 자신이 왠지 어설프게만 느껴져 혼자 피식 웃었다.

드디어 아라랏 산간 마을 도베야짓을 떠나야만 할 끝자락 시간이 다 되었다. 두 뺨을 번갈아 가며 서로 어긋 맞대는 쿠르드식 작별 인사를 나누었지만 두 셀파와의 거리는 좀처럼 떨어지지를 않았다.

아라랏 산의 대부 파라슈트씨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눈물이 수북히 고였고, 필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코끝이 찡하게 아려왔다.

살인적인 추위를 참아가며 가파른 죽음의 능선을 함께 올랐던 우리들 사이에는 어느덧 혈육보다 더 끈끈한 인연의 끈으로 단단히 매어져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거의 사라져갈 무렵 필자를 태운 차는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저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비춰오는 인류 최초의 요람 에덴의 동쪽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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