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조국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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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조국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 승인 200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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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햇살이 따갑던 어느날 오후, 서른 해를 넘겨 처음으로 찾아간 동작동 국립현충원. 활짝트인 대로를 걸어 끝에 다다를 즈음 끝없이 세워진 묘비들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낸 수줍은 소녀처럼 반가운 인사를 건낸다.

이름모를 용사들의 무덤. 오직 내 나라를 빼앗길 수 없다는 신념하나로 싸워나간 수많은 전투들. 해마다 6월이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로한다지만 가슴뭉클한 감동이 점점 사그러드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10만 4천여 호국용사들의 위패와 시신을 찾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6천3백여 무명용사의 유해가 안장된 현충탑 앞에 이르렀을 때 머리속에 떠나지 않는 물음이 하나 있었다.

‘지금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 또한 저들처럼 싸울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우리는 조국을 지켜낼 수 있을까. 선열들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지나친 근심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이 땅을 떠나고 있었다.

1955년 창설된 국립묘지에는 해방 후 군이 창설된 이후 한국전쟁과 대간첩작전, 월남전 등에서 전사하거나 순직한 국군과 향토예비군, 학도의용군, 군무원, 경찰관 등 5만 4천여 영령들이 모셔져 있다.

장병묘역에 들어서면 6.25전쟁 직전 송악산고지를 육탄으로 탈환한 10용사의 무덤과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쳐 수십명의 부하를 구하고 죽어간 강재구소령, 인천 상륙작전 후 서울수복시 중앙청에 가장 먼저 태극기를 게양한 양병수 해병상사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열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빽빽이 세워진 묘비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전투에서 치열히 싸우다 사라진 많은 선열들이 꽃한송이 꽂아줄 참배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남전에서 남편을 잃었다는 한 할머니는 남편의 무덤가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놓았다. 붉게 꽃망울을 터뜨린 한아름의 꽃을 만지고 또 만지며 “무덤 옆에 죽은 꽃을 놓아 무엇하냐”며 “땅속의 남편이 꽃향기에 취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6.25 한국전쟁과 월남전이 보이는 전쟁이었다면 구한말 의병과 일제시대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간헐적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은 또하나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던 애국지사들의 묘역인 충열대에 다다르자 백범일지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처음에 내 생명을 묻던 놈이 밤이 새도록 쉬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그 놈들이 어떻게 제 나라의 일에 충성된 것인가를 알았다.

저 놈은 이미 먹은 나라를 삭히려기에 밤을 새거늘, 나는 제나라를 찾으려는 일로 몇번이나 밤을 새웠던고 하고, 스스로 돌아보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고 나도 기실 망국민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니 눈물이 눈에 넘쳤다…”

이념으로 나라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던 백범 김구선생은 차마 한 형제가 총부리를 겨누며 작은 땅덩이를 반으로 나누는 것을 볼 수 없었을까. 전쟁이 나기 한 해전 눈을 감아 버렸다. 아니 어쩌면 그를 데려간 총성은 전쟁을 알리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6.25 참전용사회에서 만난 이강익옹(72)은 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될 어린 나이에 자원입대해 전투에 나섰다. 앞줄에서 전진하던 부대원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갔고 반공운동을 하던 아버지도 생사가 묘연했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전쟁당시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마디는 이렇다.

“다시는 이 땅에서 총성이 들리지 않길 바랄 뿐이지만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난 다시 총을 들고 나갈거야.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지. 그 때 우리가 이 땅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행복도 미래도 없었겠지.”

나라와 겨레를 위해 공헌한 이들을 기리는 일은 한 나라와 민족이 자긍심을 갖고 살아나가는 기초라고 학자들은 강조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예우하는 보훈정신이 없을 때 군인 등 국가 안보요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호국의지가 방향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선열의 넋을 위로한다는 형식적인 말보다 “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되새김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비릿내와 꽃내음 섞인 아름다운 당신의 마음을…. 당신 앞에서 나는 두 손 가득 햇살 담아봅니다. 이제 내 손으로 지켜야할 이 땅의 생명을…. 당신 앞에서 나는 흙 한 줌 보듬어 봅니다. 열일곱살 저에게 주신 당신의 자랑스런 이 강산을….”

<‘묘지’ 중에서> 한 소녀의 싯구처럼 자랑스런 강산을 지켜낸 순국선열을 위해 두손을 모은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땅을 지켜낸 이들의 영혼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게 하소서. 내 손으로 이 땅의 생명을 가꿔 나가 당신께 되돌려 드리겠나이다.” 호국 영령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다짐하며 현충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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