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 뒤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는 섬 소록도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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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 뒤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는 섬 소록도로 오세요”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5.08.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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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특집 르포- 전라남도 고흥 소록도

서울에서 자동차로 다섯 시간 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섬 소록도. ‘작은 사슴’이라는 뜻을 가진 섬이지만 ‘한센인들의 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09년 완공된 소록대교를 건너 소록도에 진입하면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이며 관광지가 아닙니다’라고 쓰여진 안내판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내년이면 일제에 의해 소록도병원이 세워진지 10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동안 소록도에서는 끔찍한 인권 탄압과 순교의 역사가 쓰였다. 이제는 한센병 환자도 많이 줄고, 연륙교가 놓이면서 분위기가 많이 밝아지긴 했지만 섬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는 듯 했다.

 

아름다운 섬 소록도

1916년 일제 총독부에 의해 소록도자혜의원이 들어서고 한센인의 집단 생활시설이 된 소록도. 한때는 환자 수가 6천여 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566명으로 크게 줄었다. 한센병이라는 명칭은 노르웨이 의사 한센에 의해 나환자의 결절에서 나균이 처음 발견한 것에서 유래했다. 과거에는 문둥병 또는 천형병으로 불렸지만 현재 일부 학술적 분야에서는 나병으로 하되, 사회적 분야에서는 한센병으로 통칭한다. 나병이란 용어에 편견과 차별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대부분 한센병이라고 부르고 있다.

과거에는 한센병 환자와의 접촉을 꺼리는 육지 사람들의 발길이 자주 닿지 않던 소록도지만 최근 들어서는 방문객도 꽤 늘었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록도 주차장에 차를 두고 방문이 허용된 소록 중앙공원까지 산책에 나서고 있었다.

▲ 산책로에서 바라본 소록도의 풍경. 섬 전체에 펼쳐진 소나무 숲과 깨끗한 백사장이 아름답다.

산책로는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자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수탄장에서 출발한다. 환자와 자녀를 강제로 격리하고 환자 지대와 직원 지대 사이에 있는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면회가 이뤄진 곳. 애끓는 그리움을 안고 만난 부모와 자식은 행여 병이 옮을까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길가에 마주 서서 눈만 마주쳤다고 한다.

길을 따라 중앙공원으로 향하는 길. 여느 관광지의 흥겨움이나 소란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의도의 1.2배 크기인 작은 섬에 펼쳐지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깨끗한 백사장은 손에 꼽을만한 절경이다. 멀찌감치 보이는 소록대교가 운치를 더한다.

일제 강점기 연 6만 명의 한센인들을 강제 동원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중앙공원에 다다르면 당시의 시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아픈 역사와 공원의 아름다운 자태를 함께 만날 수 있다.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

1935년 총독부가 제정한 ‘조선나예방령’ 제6조에 따라 한센환자는 직업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이동권을 박탈당했으며, 수용환자들은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조차 없이 이곳에서 감금, 김식, 금식, 체벌 등의 징벌을 받아야 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소록도 감금실(등록문화재 67호)은 당시 한센인에 대한 일제의 만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감금실은 강제노역이나 온갖 가학에도 굴종케 하고, 부당한 요양소 운영에 대한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됐다.

▲ 공원 옆에 자리한 감금실 내부. 감금이 끝난 한센인에게는 단종수술이 자행됐다.

감금이 끝나면 생식 기능을 없애는 단종수술이 이어졌다. 감금실 한켠에는 당시 일본원장의 명을 거역했다 해서 감금 뒤 강제 단종수술을 받은 이 동(李東)이라는 환자의 시가 전시돼 있었다. 그는 시에서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리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고 남겼다.

▲ 소록도 중앙공원 한복판에 세워진 구라탑.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소록도 중앙공원 한 가운데에는 구라탑(救癩塔)이 세워져 있다. 1963년 국제캠프단이 소록도 한센인들이 조속한 치유를 기원하며 선물한 이 탑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 아내와 함께 소록도를 방문한 미국인 로버트(35살) 씨는 “일본이 100년 전에 이곳을 세웠다고 들었다. 그들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보면서 약간 무섭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이런 장소를 보존해서 기억하게 하는 것은 다시금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소록도 중앙교회

소록도에는 모두 6개의 교회가 있는데, 직원들을 위한 ‘관사교회’ 외에 나머지 5개 교회는 모두 한센인들이 다니는 교회다. 민간인의 출입이 가능한 지역에 위치한 소록도중앙교회는 그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소록도의 교회는 1922년 일본 성결교단 다나까 신사부로 목사가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구복리 1호사에서 예배를 드리며 시작됐다. 다나까 목사는 월 1회에서 2회 오는 순회목사였기 때문에 통역관인 박극순 씨를 교회 지도자로 세워 주일과 수요예배를 주관하게 했다. 1923년에는 교인 수가 120명에 달했고, 남자 40명, 여자 40명이 구복리 서해안 백사장에서 다나까 목사에게 최초로 세례를 받았다.

▲ 기자가 찾아간 날에 소록도 중앙교회에는 봉사활동 온 크리스천 청소년들이 머물고 있었다.

일본인 목사에 의해 세워긴 교회는 해방이 될 때까지 일본인 목사들에 의해 운영됐다. 1946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순천노회가 파송한 김정복 목사가 시무했다. 김 목사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의 침략에 저항하다 순교하고 만다. 이후 교회는 회복을 갈망하는 한센인들의 희망으로 자리 잡았고 성도 수가 4천여 명에까지 이르렀다.

이어 고대작 목사, 지익풍 목사, 이덕길 목사, 여운원 목사 등이 시무했으며 현재는 김선호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현재는 450여명의 성도가 소록도중앙교회를 비롯한 6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편 기자가 방문한 날 소록도 중앙교회에는 단체티셔츠를 입은 청소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왔다는 100여명의 청소년들은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한센병환자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대화를 나누고 기초적인 수발을 들어주며, 육지의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환우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자원봉사로 참여한 사단법인 나눔과실천의 신우린(16살) 학생은 “다른 봉사활동이랑 다르고 새롭다. 이야기만 나눠도 봉사가 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라면서 “환자분들이 외롭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좀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말벗이 되어드리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 해에 소록도를 방문하는 봉사자는 많게는 1000명에 달한다. 그러나 올해는 메르스 여파로 그 수가 많이 줄었다. 소록도병원 자원봉사계의 박병수 계장은 “자원봉사를 통해서 한센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연륙교 건설로 방문자가 늘고 있는데, 올해는 특히 광복 70년을 맞아 소록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러 오는 분들이 많다. 방문하시는 분들로 인해 소록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자원봉사 손길도 많이 증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소록도 중앙교회 김선호 담임목사는 소록도의 한센인 성도들을 "애국적인 기도를 많이하는 '기도의 특공대'"라고 표현했다.

소록도에서 만난 사람 / 소록도 중앙교회 김선호 목사

현재 소록도 교회 상황은 어떤가?

소록도 중앙교회는 약 90년 가량 됐다. 성도는 소록도 5개 교회에 모두 합해서 450명 가량 된다. 교회 외에도 천주교와 원불교가 있는데, 현재 천주교에는 150명 가량 신자가 있고, 원불교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소록도 성도들은 어떤 분들인가?

이분들이 아침 5시반에 일어난다. 그리고 점심을 10시 반이면 잡수시고 다섯시 반이면 또 저녁을 잡수신다. 아홉시 전이면 다 주무시는데 새벽 한 두시가 되면 일어나서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부지기수다. 대다수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신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는 애국적인 기도를 많이 한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한다. 국방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경찰공무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 기도생활 속에서 살고 있다. 일종의 ‘기도특공대’로 보면 된다.

해마다 육지에서 오는 봉사팀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

여기 계신 모든 성도들이 다 환자분들이다. 건강하면 이 곳에 있을 수가 없다. 때문에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교인들이 다 환자이다 보니 교인들을 데리고 특별히 봉사를 하거나 할 수 없다. 외부에서 병원을 통해서 들어와서 봉사하는 분들이 계시다. 그리고 교회에서 수련회팀이 많이 온다. 금년에는 메르스 때문에 많이 오질 못했다. 평균 올 때 한번에 40명에서 많게는 100명씩도 온다.

예장 합동 소속으로 알고 있는데 소록도 교회에 대한 지원은 어떤가?

소록도를 돕는 교회들과 선교단체, 개인 등이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다. 모두 합치면 약 35개 단체 및 개인이 돕고 있다. 한국교회가 소록도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다.

경제적 차원의 지원도 부탁드린다. 평균 74세의 ‘노후되는’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분들께 해드려야 할 것이 많은데, 교회는 병원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많다. 교회가 선교한다는 마음으로 선교비를 도와주면 좋겠다.

소록도 목회가 일반목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야기하기 곤란한 부분이다. 밖에서보다 여기는 건강한 분들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걸 달래줘야 한다. 설교시간에도 회복이나 구원을 강조한다. 서로 함께하는 사랑과 자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현재 두 분의 부목사님이 동역중이신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곳에는 좀 더 변화된 목회자가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사역할 때는 감정처리를 제대로 못하면 안 된다. 내가 하고 싶다고 밀어붙이면 안 된다. 성직자의 자격이 있고 품격이 있는데, 자격이 있더라도 품격이 없으면 목회를 못한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소록도는 특히 더 그렇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제 내년이면 소록도병원이 개원한지 100년이 된다. 우리 소록도를 위해서 밖에서 많이 염려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록도 교회를 한번 씩 오셔서 다녀가시면 우리에게 정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찾아오시는 분의 신앙생활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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