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번역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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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번역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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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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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종 목사 / 백석대학교 총장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기도 중의 기도요, 복음중의 복음이다. 하지만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있다. 원문(마 6:9-13)에 있는 인칭대명사 번역이 생략되어 있고, 동사 번역에 대한 일관성이 없고, 원문에도 없는 ‘대개’라는 말이 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004년도에 나온 새 번역 주기도문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적지 않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새 번역의 경우에도 기존 번역처럼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가 있는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악’에 관한 청원이다. 사실 헬라어 원문에 ‘악’을 지칭하는 관사는 중성명사로 볼 수도 있고, 남성명사로도 볼 수 있다. 중성명사로 볼 경우에는 ‘악’으로 번역되고, 남성명사로 볼 경우에는 ‘악한 자’로 번역된다. 영어성경인 NIV나 NRSV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외국번역은 ‘악’이 아닌 ‘악한 자’(the evil one)로 번역하고 있다. 나는 후자의 번역이 주기도문의 본문과 주기도문이 수록된 성경의 용법과 나아가서 주기도문이 처음 사용된 초대교회의 상황에도 부합된다고 본다.


현대의 경향은 가능한 한 ‘지옥’, ‘사탄’, ‘마귀’ 등에 대한 언급보다도 도덕적인 의미를 지닌 ‘악’이란 말을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복음서와 그 밖의 서신들은 오히려 사탄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대적하는 인격체로 제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오는 시험을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으로 이해하였고, 초대교회가 로마제국 등 복음을 대적하고 신자들을 핍박하는 자를 사탄의 세력이나 적그리스도로 이해한 점을 고려한다면, 주기도문의 결론적인 청원에 나오는 ‘악’은 추상적인 악이 아닌 ‘악한 자’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주기도문의 결론적인 악한 자로부터의 구원에 관한 청원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했던 것처럼, 저들도 사탄의 위협과 공격 아래에서도 배교나 불신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고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 간곡하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주기도문의 바른 의미요, 바른 정신이라고 한다면, 한국교회도 주기도문의 마지막 청원에 있는 ‘악’을 ‘악한 자’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주기도문은 습관적인 기도문이 아닌 훨씬 더 생동적이고, 의미 있는 기도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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