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諫臣)과 간신(奸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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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諫臣)과 간신(奸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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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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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목사 (거룩한빛광성교회)

중국 진나라 시황제(B.C.259~210)는 500년간 이어온 전란의 시대를 종식시킨 난세의 영웅이다. 그는 37년 동안 재위에 있으며 수많은 정책(문자·도량형·화폐 통일, 전국도로망 건설, 군현제 실시)으로 중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더구나 그 넓은 대륙을 무려 5번이나 순찰을 돈 유일한 황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황제 사후 진나라는 불과 3년 만에 항우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진나라 멸망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역시 간신(奸臣) 조고(趙高) 의 탓이 크다. 그는 거짓문서를 꾸며 현명한 태자인 부소를 제거하고 어리석은 호해를 다음 황제로 옹립했다.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 사건처럼 조고는 황제와 국정을 농락했고 결국 나라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였다.


조고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는 분분하나, 그가 환관이었고 시황제를 측근에서 보필했던 것은 분명하다. 환관은 그 역할 상 어쩔 수 없이 황제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한다. 황제도 굳이 자신에게 잔소리하는 신하들보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환관을 총애하기 쉽다. 그래서 후한(後漢)의 십상시(十常侍)나 조고와 같은 나라를 망치는 환관은 역사 속에 종종 등장한다.


공자는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몸에 좋고, 충언은 듣기 괴롭지만 행하기 이롭다”고 했다. 외경 집회서를 보면 “네 앞에서는 달콤한 말을 하고 네가 하는 말을 극구 칭찬하지만, 뒤에 가서는 딴소리를 하고 네가 한 말을 뒤집어서 너에게 피해를 입힌다(27:23)”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를 경계하라 말한다.


조직의 리더는 언제나 고독한 자리다. 교회의 담임목사는 더욱 그렇다. ‘담임목사가 일을 안하면 교회가 멈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교회의 모든 일에 대한 최종책임을 져야 하는 담임목사의 어깨는 무겁고 쓸쓸하다. 그럴수록 담임목사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지라도, 결국 그런 말은 목회자에게 독이 될 때가 많다.


임금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신하를 간신(諫臣)이라 한다. 조선시대 이런 역할을 하는 기관이 사간원(司諫院)이었다. 사간원의 지위가 높았던 것은 간신(奸臣)에 의해 국정이 농락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국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에도 이런 사간원 같은 팀이 있다. ‘기획조정위원회’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 팀은, 당회의 특별위원회로 활동하며 교회에 자유롭게 건의를 올리고, 특별한 안건에 대하여 사전토의를 거치는 조정기관이다. 이들은 담임목사의 목회방향에 대해서도 반대의견을 당당히 낼 수 있다.


군대식 상하관계와 관료제도에 익숙한 리더는 ‘한번 말하면 신속하게 움직이는 조직’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런 조직은 조직원의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효율적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성경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한걸음 느리더라도 함께 갈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담임목사는 24시간 교회 일만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회에 대해 많이 알고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찮은 것 같은 소리조차도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신하조차도 중용하여 큰일을 이룬 임금이 있다. 바로 세종대왕이다. 허조(許稠)라는 나이든 신하가 있었다. 그는 모든 일에 깐깐하게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세종도 ‘허조는 모든 일에 반대만 한다’며 싫은 기색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세종은 허조를 좌의정으로 중용했고, 허조는 한 임금을 모신 신하로서 가장 영광스런 자리인 ‘배향공신(配享功臣-왕의 위폐와 함께 배향된 신하)’이 되어 세종의 치세를 빛낸 공을 인정받았다. 세종은 깐깐한 신하인 허조를 설득하기 위해 더욱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였고 결국 이 혜택은 온 백성에게로 돌아갔다. 이것이 참 간신(諫臣)의 유익이라 하겠다.


내 주변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간신배들만 득실대는 조직이나 공동체는 결국 썩고 망하기 마련이다. 당장 내 귀가 불편하더라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길이야 말로 교회가 사는 바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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