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땅에 ‘선교사’보다 먼저 찾아왔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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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땅에 ‘선교사’보다 먼저 찾아왔던 ‘성경’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5.05.28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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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선교 130주년 기획,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 서천 '마량진' 탐방
▲ 충남 서천 '마량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전래지' 기념비.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기록을 토대로 주목받기 시작하던 2004년 서천군에서 설립했다.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

충청남도 서천군 마량진 포구에 세워진 커다란 비석에 씌어진 문구다. 기념비가 세워진 시기는 2004년 12월, 십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그 옆에는 감리교 충청연회가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리며 2006년 마련한 비석이 또 나란히 서 있다. ‘하늘이여! 바다여! 파도여!’란 시가 새겨져 있다.

마량진, 우리나라에 성경이 처음으로 전래된 곳이라지만, 역사적 현장에서는 비석 외에는 찾을 것이 없었다. 게다가 주변은 온통 공사 중이다. 바다 쪽으로 조금 걸어나가면 만나게 되는 작은 어선들과 등대가 위안이 될 정도다. 그래도 한산한 어항이 주는 고즈넉함은 고향이었던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마량진 성경 전래지는 2002년 한 고등학교 교사가 조선왕조실록 48권(순조실록 권19)에 ‘마량진에서 책을 받았다’고 기록된 것을 보고 연구 필요성을 처음 제기하면서 발견됐다. 2004년부터는 서천 기독교계와 서천군이 나서 역사적 사실임을 재확인하면서 한국교회 안에서 비로소 역사적 현장으로 인식되기 시작됐다.

검증된 바에 따르면, 1816년 9월 4일 영국 정부의 명령을 받고 서해안 일대를 탐사하던 군함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마량진 앞바다에 도착했고, 이들이 활동을 마치고 떠나면서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비인현감 이승렬에게 영어로 된 성경을 전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입국을 기점으로 기독교 선교 130주년을 기념하고 있지만, 조선 땅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는 앞서 진행 중이었던 셈이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보다 한해 앞서 알렌과 스크랜턴 선교사가 입국했고, 한글성경을 번역해 1882년 출판한 존 로스 선교사, 1866년 평양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영국의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 1832년 충남 홍성군 주민에게 한역성경을 나눠준 독일 귀츨라프 선교사, 그리고 이보다 앞서 1816년 영국인 선장들에 의해 전해진 성경책 두 권이 마량진에서 전해진 역사가 있었다. 그것은 한국교회를 향한 선교 역사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서천시기독교연합회장 이병무 목사는 “사람이 먼저 들어왔다기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와 복음이 전해졌음을 마량진이 잘 보여주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말씀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평가한다.

▲ 조용한 어촌마을 '마량진', 그러나 이곳은 1816년 성경책이 조선땅에 최초로 전래된 한국교회 역사에서 기념비적 현장이다.

‘성역화’ 위해 노력하는 서천 기독교계

금강하구에 위치한 서천군은 서해안과 인접해 충청 다른 지역보다 복음을 일찍 받아들어왔다. 이 때문에 마을마다 교회들이 들어선 것도 이른 시기였다. 지금 서천군의 복음화율이 30%에 달하는 것도 ‘성경’이 가장 먼저 전래됐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량진에 성경이 최초로 전래됐다는 사실이 확인됐을 때 서천 기독교계의 자부심은 컸다. 묻혀버릴 수 있었던 역사가 발견된 후 서천지역 160여 교회는 서천군기독교연합회를 중심으로 마량진에 대한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의지를 모았다.

‘성역화 사업’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년간 본격화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다행히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국비와 군비 80억원이 투입돼 마량진 일대가 해양문화관광지 조성 차원에서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말까지 성경전래지 유적공원과 전시관, 산책로 등이 조성되고, 영국 함선 ‘리라호’가 실제 크기로 설치된다. 전시관에는 성경의 전래과정과 알세스트호 선실이 꾸며져 조만간 머지않아 완공될 예정이어서 기독교인들의 순례코스로 각광받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하지만 과제도 있어 보인다. ‘성경 전래지’ 조성사업이 지나치게 정부와 지자체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신앙적 의미다 상업적 가치를 더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5년 전 서천교계는 연합회 산하에 사단법인을 두고 성경 전래지의 상징성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지역교회 힘만으로는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병무 목사는 “성경이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상징적인 곳인 만큼 5만여 한국교회와 많은 기독교인들이 마음을 실어 동행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마량진포구에 꾸며질 유적공원은 산책로를 통해 동백나무 숲이 유명한 곳에 자리한, 마량진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으로 연결된다.

▲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기독교대한감리교회가 설립한 순교기념관.

아펜젤러순직기념관, 선교 사명 되묻다

순직기념관 있는 언덕에는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숲이 있고, 동백정이라는 정자가 위치하고 있다. 기념관 바로 옆에 위치한 교회의 이름도 동백정교회(담임:남광현 목사)이다.

서천에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기념관이 세워진 것은 바로 이곳 마량진 앞바다에서 그가 하나님 곁으로 갔기 때문이다.

복음전파 뿐 아니라 교육과 성경번역 등 다양한 사역을 펼쳐온 아펜젤러 선교사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출판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을 출발해 항해하다 어청도 인근 바다에서 침몰해 순직한 것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2년 3개월 공사기간을 거쳐 지난 2012년 순직 110주년에 맞춰 마량진에 기념관을 마련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기념관은 체험관과 전시관, 선교역사 자료실, 전망대로 구성돼 있었다. 1층에서는 선교에 대한 메시지를 나무자석에 적어 벽에 걸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이 아니어서 유물을 많이 볼 수는 없지만, 기념관으로서 아펜젤러 선교사의 삶과 사역은 물론 셔우드 홀 등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 근대화를 위해 애썼던 초기 선교사들의 업적들을 잘 살펴볼 수 있다. 국내외에서 수집한 오래된 성경들을 볼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또 조선왕조실록에 성경책이 전래됐다는 기록을 고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알세스트 호의 군의관 맥레오드의 항해기 관련 자료도 찾아볼 수 있다. 이 항해기는 1818년 런던에서 간행됐다.

순직기념관에는 3년 동안 약 일만명이 다녀갔다. 방문객 수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공식 방문안내를 받는 사람이 많을 때는 하루 5백명에서 천명에 달한다고 하니, 안내를 도맡고 있는 동백정교회 남광현 목사 내외의 수고가 크게 느껴진다.

▲ 아펜젤러선교사는 1902년 성경번역과 관련된 회의를 위해 목포로 가던 중, 마량진 앞바다 어청도 인근에서 배가 침몰해 순직했다.

순직기념관에는 일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헌금함이 없다는 특징도 있다. 남광현 목사는 “많은 순직기념관을 다니며 헌금함이 기념관 본래의 목적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방문객들이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관람하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기독교인 누구나가 신앙생활 중에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는 게 남 목사의 바람이다.

하지만 기념관을 운영하기 위한 재정은 넉넉하지 않다. 감리교 본부와 충청연회, 운영이사들이 지원해 도움이 되고 있고, 최근에는 충천남도과 서천군, 충청연회에서 전체 5억원 지원해 쉼터와 특별전시관, 야외공연장을 조성하고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념관은 또 관람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천원 후원자, 만명 캠페인을 계획 중에 있다.

마량진은 서해에서는 보기 드물게 동해의 정동진 못지않은 일출을 볼 수 있는 명소다. 게다가 같은 자리에서 붉게 물든 일몰까지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순직기념관 옥상에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순직한 어청도 해역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마량진을 찾아 올라 아펜젤러 선교사가 이 땅에서 전하려고 했던 복음, 이루려고 했던 꿈을 자세히 들여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충남 서천=이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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