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물을 솟아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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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물을 솟아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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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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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목사(새에덴교회, 시인)

터키의 갑바도기아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은 초대 교회 교인들이 로마제국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숨었던 장소인데 비잔티움 시대까지 수도원으로 쓰였다. 교회는 타락해 갔지만 수도원은 그 시대의 정신과 사상의 등불이 되었다. 단체 여행이 아니었기에 폐허가 된 동굴까지 드나들면서 어둠과 고독을 벗 삼아 신앙의 순결을 지켰던 이들의 체취를 느꼈다. 어쩌면 나는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삶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이따금씩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적막한 수도원에 가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인간은 근원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모든 인간은 존재의 근원과 원형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산(山)을 동경할 때가 많다. 시를 쓰는 내게 산은 원형의 모형이고, 근원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질만능과 경쟁사회에 매몰되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사는 것일까?”자문하며 황폐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발견한다.


그 순간 꽃향기를 맡을 수 있고 새소리를 들으며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초야(草野)의 삶을 그리워한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되어 홀로 움막을 짓고 살더라도 원형의 삶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독일 가톨릭 신학자 한스큉의 예견대로 현대인은 제도에 찌든 교회에는 거부감을 갖지만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과 영성(靈性)의 욕구는 더욱 강렬해져 영혼의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것을 본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계발과 발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함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시류와 트렌드만을 뒤쫓다 어느 날, 내면세계가 황폐한 사막처럼 변해버릴 때도 있다. 또 힘들게 얻어낸 지식과 정보가 한번 쓰고 버릴 인스턴트적인 껍데기 지식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래서 목회의 내공이 쌓이지 않고 계속해서 겉돌기만 하면서 불필요한 힘만 소진하며 오히려 퇴보하기도 한다.
위대한 사상과 정신은 호텔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배고프고 고독한 동굴이나 광야에서 나온다. 예수님도 사역 중에 무리들을 떠나서 스스로 광야를 찾았지 않았는가. 한국교회가 광야를 잃고 기도원을 잃었을 때 물질, 육체, 쾌락중심으로 세속화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깊고 풍성한 지식과 사상, 영성을 위하여 스스로 광야로 떠날 필요가 있다. 광야가 없으면 스스로 고독을 선택해 보라. 마음의 광야로 떠나보라.


그런데 우리는 너무 분주하다. 목회 사역과 각종 모임으로 인하여 고독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혼자만의 광야에서 깊은 침묵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기회가 없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깊은 사상과 정신이지 선동적 웅변과 시위가 아니다. 승려 혜민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써서 일반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분주하고 번잡한 세속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지치고 혼탁한 마음을 정화시켜줄 사상과 문장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시대의 정신을 깨우고 문화를 이끌어갈 위대한 사상과 정신을 설교와 글을 통하여 설파해야 할 때이다. 봄 가뭄에 메마른 대지를 푸른 강물이 적시며 흘러가듯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의 푸르른 물결을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현대판 갑바도기아로 걸어갈 필요가 있다. 나만의 광야, 고독한 사막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고독한 광야인가, 화려한 파티장인가. 세속적 시류의 공기가 닿지 않는 적막의 광야에서 목마른 이들의 가슴을 적실 위대한 정신과 사상, 영성의 샘물을 솟아나게 하고 싶지 않는가. 이제, 분주한 일상을 떠나 거룩한 은거의 시간으로 떠나자. 현대인의 캄캄한 영혼과 곤비한 정신을 밝혀줄 투명한 별빛이 빛나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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