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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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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신학교 학장 정인찬 목사

경건주의 사상의 대표적 학자인 스페너(P.T. Spener)는 구약에 나타난 경건 사상을 4가지 개념에서 찾았다. 첫 번째가 선민사상이요, 두 번째가 정결예법이요, 세 번째가 남은 자(Ramnent)사상이요, 네 번째가 생활경건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Chosen People)은 곧, 성민(Holy People)이라 하여 이방인들과 구별했다는 것이다. 성민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방인을 속된 백성으로 칭했다. 폰라드(Von Rad)교수도 구약의 경건의 시작은 거룩(코데쉬)과 속된 것의 구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거룩이라는 말은 초월적 개념으로 성스럽다는 개념을 넘어서서 구별한다는 뜻이다. 성과 속을 구별하다보니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게 된 것이다. 성경에 보면 노아는 정결한 짐승은 암수 7씩, 부정한 것은 암수둘씩(창7:2; 7:8-9)방주에 들어가게 했다. 또한 레위기에 보면 흠 있고 신체에 핸디켑이 있는 짐승은 제물로 드릴 수 가 없었다. 제사장 역시 흠 있는 사람은 선택될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어 선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경건하게 살아서 선민이 된 것이 아니라 선민이기 때문에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결예법이다. 구약에서의 제사제도 번제(화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모두 정결한 제물만 드려지고 부정한 것은 드려지지 못했다. 드릴 것과 드리지 못할 것, 지킬 것과 지켜서는 안 될 것,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이 레위기(1장-27장)와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구약의 율법적 정결제사는 예수님시대까지 이어져 성전을 제물 파는 장사의 시장으로 그리고 안식일 문제로까지 연결하여, 예수님을 죽일 명분으로 안식일을 어긴 사람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드릴 제물에 대한 경건행위는 빈부의 격차를 낳고, (부자는 소나 양 가난한자는 비둘기) 안식일(안식일에 노동하지 않음)의 경건행위는 극단적 율법주의 종교재판의 정죄 죄목이 되기도 하였다. 경건주의학자 벤겔(Bengel)은 경건의 참된 진리를 모르면, 경건이 다른 사람의 판단과 분열과 처형의 죄목이 된다고 하였다.


세 번째는 남은 자 사상이다. 구약에서는 남은 자를 렘넌트(Ramnent)라고 하는데 의인사상이다. 의인은 옳게 사는 사람이다. 경건하게 산다는 말자체가 이 세상과는 관계없이 초월되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변화시키며 산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언자들도 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가 남은 것 같이 거룩한 씨가 곧 의인이요, 남은 자요, 이 사람들이 참된 경건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하였다.(사6:12-13), 슐라이에르마하(Schleiermacher)는 감정의 신학을 강조하며 경건을 강조한 학자이다. 그는 경건은 잘 사는 사람을 본받는 삶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삶을 본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네 번째는 생활경건이다. 구약에서는 경건한 삶을 할례, 이방인과 결혼 금지, 나실인(“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말라”)(삿13:4-5), 금식기도생활(한나, 에스더, 히스기야, 엘리야)등 철저한 생활경건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 그들은 개념적 이상적 경건보다 삶 자체가 경건이었다. 성경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고 하였다. 경건의 형식주의(Formalism)보다 경건한 삶이 생활에 나타나는 생활 경건이 요구 되는 것이다.


길이 없어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못 찾아 방황한다는 말이 있다. 경건의 참된 길을 찾아 미래를 향해 경건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우리의 시대적 사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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