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犧牲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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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犧牲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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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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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고, 미국에서 태어나 1927년에 영국으로 귀화한 시인이며 극작가, 문학비평가인 T. S. Eliot(1888-1965)은 1922년에 ‘황무지(荒蕪地)’란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 했다. 엘리엇은 20세기 현대문명에 갇혀 생명의 기운을 상실한 서구인의 자화상을 표현했다. 기술의 발전이 전쟁으로 3,500만 명의 죽음을 가져온 현실을 황무지(荒蕪地)로 표현한 시였다. 절망을 노래한 것이다. 황무지의 주민들은 겨울의 죽음과 망각의 잠을 더 좋아하여, 부활을 위한 꿈틀거림을 오히려 귀찮아하며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4월은 희망과 부활의 계절인데도 잔인한 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잔인한 4월에 일어난 일들이 많다.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5분,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충돌하여 불과 3시간 만에 침몰했다. 1,513명이 얼음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마산상업고등학교 학생 김주열의 주검이 떠올랐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고등학교 1학년의 죽음은 4.19 학생혁명을 이끄는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下野)하고,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으려는, 한국현대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4월에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생생한 아픔의 사건이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다. 팽목항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직 9명은 실종상태이다. 이 사건은 5,000만 국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온 나라가 슬퍼했다. 적폐(積幣)가 만든 잔인한 4월의 사건이다.


세월호 침몰 1주년을 추모하려 마음을 추스르고 옷깃을 여미려는데, 4월 9일에 한 사람이 자살을 했다. 그는 목숨을 끊기 전에 신문기자와 통화하여 목소리를 남기고, 주머니에는 56자 메모를 남겼다. 쪽지다. 세상은 ‘성완종발(發) 세월호’라 부른다. 나라정치가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그가 남긴 쪽지 외의 비밀장부 등의 자료를 짐작하며 “나, 지금 떨고 있니?”라고 할 정치인도 꽤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실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부정부패의 관행과 적폐가 만들어 낸 사건이지만, 과연 이 일로 나라가 바르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회의적인 국민이 대다수인 것 같다. 이 죽음도 4월이다. 4월은 잔인(殘忍)한 달이 맞나보다.

4월에는 유독 산불이 많이 난다. 산불의 시작은 작은 불씨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킨다. 이것을 역발상(逆發想)으로 접근하면, 작은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무엇으로? 어떻게? ‘희생양(犧牲羊)’이다. 사도 바울은 첫 사람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으나.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길이 열렸다(롬 5장)고 말했다. 이 길은 예수께서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음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아담의 후예가 될래? 둘째 아담의 후예가 될래? 묻고 있다.
시론자는 쪽지를 남기고 자살한 고인을, 그가 장학 사업도 하긴 했지만, 기업경영과 정치행보를 보아 희생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를 희생양이 되게 한다면, 이 정치와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는데 좋은 도구가 될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강 석찬 목사 예따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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