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에 옷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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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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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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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 목사(예수로교회)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Edward Gibbon)(1739~1794)은 그의 저서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에서 로마제국의 멸망원인을 5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 이혼율의 급증, 둘째 높아지는 세율과 계획성 없는 재정지출과 낭비, 셋째 비정상적인 쾌락의 추구, 넷째 군비확장과 인구 감소, 다섯째 종교의 부패와 타락이라고 요약했다. 마치 오늘에 처한 우리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지 아니한가. 성경에 이름같이 사랑이 식어지고 상호신뢰가 무너지며, 가정이 붕괴되고 출산이 정체되고, 부자의 곳간은 쌓을 곳이 없는데, 서민경제는 바닥이 드러나고, 공교육은 갈피를 못 잡는데, 사교육은 돈벌이로 전락하고, 젊은이들은 설자리가 없는데 노인복지는 폭증하고, 국고는 고갈되고 민심은 피폐한데, 부패와 타락이 심도를 더해가며, 영혼들은 방황하는데, 교회는 생명력을 잃었다.


세계판도를 흔들고 있는 거대한 체스 판의 움직임에, 남북관계와 주변정세는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다. 그 여진을 충분히 감지하련만 우리의 사고 저변에는 희망과 절망이 연리지(連理枝)를 이룬다. 간통죄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제정된 지 62년 만에 효력을 잃게 되었다.


신학자 하르낙(Adolf von Harnack)은 우주를 줄인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줄인 것이 십계명이고, 십계명을 줄인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앨 몰러(Albert Mohler)는 간음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심장부에 비수를 꽂는 행위라고 했고, 마사 너스바움(Martha Nussbaum)은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서 혐오와 수치를 배제한 법이란 바람직하지도 않고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성결은 사랑의 울타리와 둥지다.(fence and nest) 울타리가 무너지면 둥지는 사라진다. 마음이 무너지면 성이 무너지고, 가족이 붕괴되면 나라가 기운다. 성결과 정직이 믿음의 능력이다. 향을 싸던 종이에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에는 비린내가 나듯, 자신이 음란에 물들면 더러움을 깨닫지 못한다. 마당이 갈라지는데 골뿌리 걱정 한다고 하지 말라.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면 세상은 음란문화가 판을 친다. 세상의 법이 하늘의 법을 거스르면 계명이 무너진다.


당나라 시인 유장경(劉長卿)은 별업사원(別嚴士元)에서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했다.(細雨濕衣看不見) 새는 구멍을 막지 않으면 배는 침몰한다.(A small leak will sink a great ship) 역청을 발라야 방주가 뜬다.(창6:14)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음란이 곧 우상숭배다. 성경은 마음에 품은 음욕부터 정죄하고 간음을 엄히 다스린다.(마5:27~28) 요셉은 하나님 앞에(coram Deo)득죄 하지 않으려고 감옥을 마지않았고(창39:9)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식음으로도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단1:8) 죽음을 알고도 임금의 칙서를 거역하였다.(단6:10)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위에서 내리는 은혜로 땅의 음란을 다스려야한다.


경제용어 중에 트리클다운(Trickle Down)이라는 이론이 있다, 미국이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채택한 경제정책인데 말 그대로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뜻이다.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富)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감은 물론, 이것이 결국 총체적인 국가의 경기를 자극해 경제발전과 국민복지가 향상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고도성장의 이면에 드리워진 양극화의 골 깊은 그늘로 인하여 이제 내부로 부터의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가진 자만 누리고, 있는 자만  배부르며, 약한 자는 눌리고, 빈 한자는 곪는다. 중국인의 인인유책(人人有責)이 오늘의 중화(中華)와 굴기(屈起)를 이루지 않았는가.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고 믿는 자들이 십자가를 비켜 가면 성령의 역사는 멈춘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기갈이다. 생명의 계절에 생명을 살리자. 아직도 멀찍이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의 비겁한 사역의 현장에 부활의 소망이 순종의 결단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 갈릴리로 가야한다.(마28:10)가랑비에 옷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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