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4편의 창조적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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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4편의 창조적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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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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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Seerveld)의 개혁주의 미학 (43)
▲ 안용준 목사

“주님께서는 샘물을 터뜨리시어 계곡으로 흐르게 하시니 산과 산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들짐승들이 샘에 와서 물을 마시며 들 나귀들도 목을 축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궁궐에서 산들 위에 물을 주시니 온 땅이 주님이 내신 열매로 배부릅니다.” 

이 순간에도 천상의 영역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생명의 샘을 흐르게 하시며 모든 생물에게 흡족한 음료를 제공하고 계시다. 시어벨트는 우리가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생각하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안목이 열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지각을 개혁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야한다. 그 음성을 들을 때 마치 은총의 빛이 세상에 비추이듯, 생명을 지으신 주님의 신비스런 세계 안에 투영된 눈부신 주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야훼여, 주님께서 하신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은 지혜로 이 모든 것들을 만드셨습니다. 이 땅에 주님이 지으신 것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놀랍게도 잠언 8장은 ‘지혜’를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의로운 길을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도전적이며 영감을 불어넣는 말씀을 전하고 있다.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지혜’는 하나님의 위대한 속성이다. 지혜를 사모하며 정금보다 나은 창조적 열매를 맺는 이들이 있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자신이 번역한 독일어 성경인 <루터성경>(Luther Bibel)안에 이미지를 삽입하여 고전 그리스 문화만이 아니라 중세의 전통이 초래한 예술적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독교 미학의 전통을 수립했다. 이후 존 칼빈(John Calvin)은 은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이루어지는 창조적 예술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인도가 요구된다고 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성령님의 조명이 없이는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일을 생각할 만한 높은 ‘지혜’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이 이렇듯 분명하건만 ‘시편 104편의 복음’을 외면한다면 미래엔 어떻게 될 것인가?

시어벨트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예술분야에 필연적으로 중심을 상실(Verlust der Mitte)하여 손상되고 기이할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적인 조악한 문화 형태가 발흥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예를 들어 막시즘으로부터 유래한 급진적인 문화비평 이론들, 창조세계의 시공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왜곡된 정신의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이 사실을 맨 먼저 정리하는 것도 좋은 듯싶다. 한 줌의 희망을 찾아 떠나는 상처 난 사람들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줄 때가 되었다. 허기진 언어로는 그들을 인도하거나 위로할 수 없다. 오늘도 지친 인생의 아픔을 감싸줄만한 성령님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문화 창조의 진정한 비전은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야 한다. ‘지혜’는 세계와 일상생활이 지닌 엄청난 창조적 가치를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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