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에 친일사찰 이름,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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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시설에 친일사찰 이름, 부끄럽지 않은가"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5.03.2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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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연, 지난 24일 봉은사역명 철폐 긴급 토론회 개최

23일에는 공사현장 방문... 시민정서 무시한 행정 지적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개통을 앞두고 한국교회가 막바지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양병희)이 기독교를 대표해 봉은사역명 사용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데 이어 지난 24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긴급토론회를 열고 봉은사 역명 제정은 시민 정서를 무시하고 공공성을 상실한 행동이라며, '봉은사' 역명 사용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봉은사 역명 철폐 긴급토론회'에서 대표회장 양병희 목사는 “봉은사역 주변은 온통 봉은사를 중심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서울 중심에 있는 역이 이렇게 종교 편향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서울시의 편향적 행정으로 종교 갈등까지 초래한 문제에 대해 한교연은 법적 대처와 함께 강력한 대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양 목사는 또 “우리나라는 다종교 사회로 특정 종교를 지지해서는 안 되고, 기독교만 알아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서울시의 종교편향 정책으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해방 70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친일 행적이 남아 있는 일개 사찰을 서울 중심지 역명으로 제정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28일 개통을 앞두고 있는 서울 지하철 9호선은 강남권의 랜드마크인 ‘코엑스’ 부근을 지나간다. 강남구청에서 역명에 대한 1차 조사를 벌였을 당시 주민들은 ‘코엑스’를 선호했다. 그러나 봉은사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2차 설문조사가 진행됐고, 역명에 대한 여론은 ‘봉은사’로 돌아섰다. 기독교계는 여기에 봉은사의 조직적 움직임이 개입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정 종교 사찰 역명은 다종교사회에서 갈등의 요인이 된다’며 코엑스 역의 타당성에 대해 주장한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는 “역명을 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편의성”이라며 “대중교통수단은 대중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역명 제정 역시 서울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며, 해당지역과의 연관성이 뚜렷하고 지역실정에 부합해야 한다’는 역명 제정 기준을 서울시가 완전히 무시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봉은사’라는 명칭이 과연 서울의 한 지역을 대표할만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가는 이날 토론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서울시는 봉은사가 1200년 역사를 가진 사찰이며, 조선시대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화재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봉은사는 사적도 문화재도 아닌 일개 사찰에 불과하며, 심지어 일제시대 친일의 대표 사찰로 분류되는 등 부끄러운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박명수 교수는 “봉은사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 강점기 봉은사가 우리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지 못하고 친일운동에 앞장섰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며 “봉은사 주지 김태흡은 한국불교의 대표적 친일인사였다”고 지적했다. 즉, 역사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봉은사는 역명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코엑스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대표적 회의 시설이고, 2000년에는 아셈회의가 열려 수많은 국가원수들이 참여했고, 2010년에는 G20정상회담이 열린 곳이라는 점에서 현대 한국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라는 점도 강조됐다.

박 교수는 “서민친화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박원순 시장이 역사 문화적 정당성이 부족한 봉은사역명을 고집하는 것은 관료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다종교 사회에서 특정 종교의 명칭을 역명으로 하는 것은 종교 간 갈등을 유발한다”며 “정교분리시대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지 특정종교를 정책이나 재정적으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독교계의 이와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봉은사역명을 고집하는 것은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교회언론회 이병대 사무총장은 “강남구청이 인터넷 투표를 두 차례 하면서 여론을 뒤집고, 코엑스 병기 요청을 서울시가 무시한 것은 스스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무너뜨린 결과”라고 말하면서 “서울시의 국제화 정책에도 부합되지 않는 사찰 이름을 국제적 시설인 코엑스보다 우선시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서울시가 종교편향심의위원회 만들었는데 기독교가 제기하는 문제는 모두 각하 시킨다. 그러면서 조계사 일대를 성역화하고, 법난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을 지원하며, 정부와 지자체를 합쳐 5천억원의 국고를 지원하고 있다. 이것이 노골적인 불교 지지고 종교편향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하면서 “친일사찰보다 국민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이름으로 즉각 개정하라”고 요청했다.

한교연은 긴급토론회에 이어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교연 김춘규 사무총장은 “불교 사찰 이름으로 역명을 제정했다가 기독교계의 반대로 개정한 사례가 많다”며 “울산 통도사역도 기독교계의 반대로 ‘울산역’으로 환원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서울시가 기독교계와 시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교연은 토론회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봉은사역 공사현장을 방문, 지역 환경과 역명이 어울리는지 직접 실사를 진행했다.

공사현장과 역 내부와 주변을 둘러본 양병희 대표회장은 “친일의 최선봉에 었던 일개 사찰이 뭐가 대단하다고 공공시설 명으로 붙이느냐”며 “만약 역명이 바뀌지 않으면 시민단체와 연대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양 대표회장은 역 간판도 사찰 기둥과 같은 고동색이고 온통 주변을 ‘봉은사’ 관련 명칭으로 표기했다며 ‘봉은사 왕국’과 다를 바 없는 역 분위기를 전했다.

양 대표회장은 또 “2008~2010년 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부탁으로 교회에 투표소를 설치한 적이 있는데 ‘승려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게 굴욕적’이라며 불교에서 종교편향 논리를 폈고, 결국 폐지됐다”면서 “그때 상황이 지금과 무엇이 다르냐”며 서울시의 종교 편향에 불만을 표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은 현재 내부 시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그러나 혼잡도에 비해 준비된 객차는 4량짜리 미니전철이어서 상당한 교통대란이 예상된다.

언론회 이병대 사무총장은 “지하철만 개통하고 전동객차 증차는 내년 9월이 되어야 가능한 현실”이라며 “러시아워 혼잡도가 250%에 이르는 최악의 지하철을 대책도 없이 성급하게 개통하는 것은 위험한 행정”이라며 “개통 자체를 중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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