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평화 사상은 성경의 평화와 조화
상태바
3·1운동의 평화 사상은 성경의 평화와 조화
  • 운영자
  • 승인 2015.02.25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희국 교수·장신대 역사신학과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2015년에는, 그동안 한반도의 분단으로 말미암은 민족의 상처/대립/갈등이 치유/화해/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3.1절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민족의 치유, 화해, 평화통일을 위한 소명의식을 각성하게 한다.

이 소명의식을 일깨우고자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1945년 8.15 광복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1946년 3월 1일에 북한 평양의 장로교 교인 수 천 명이 장대현교회에 모여 3.1절기념예배를 드렸다. 참석자 모두 기미년(1919) 3.1운동 당시 이 교회가 서북지역 만세운동의 구심점이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감사했다. 또 이들은 3.1운동에 참여했던 선진들이 체포되어 옥에 갇히고 희생되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그들의 희생이 민족의 광복에 기여했다고 감격했다. 이 점은 기독교의 3.1운동참여가 단순 가담이 아니라 순교를 각오한 신앙차원이었음을 증명한다.

3.1운동은 1919년 3월부터 약 2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전개되었고 또 국외 여러 곳에서도 일어났다. 이와 더불어 국내외 여러 곳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독립선언서들을 종합하여 간추려 보면, 서울과 동경의 독립선언서는 부드럽게 설득하는 논리로 표현했다. 그런데 동경 선언서가 서울 선언서에 비하여 보다 더 강경한 표현으로 진보적인 내용을 담았다. 훈춘과 길림의 독립선언서는 이보다 훨씬 더 강경한 경고문 형식으로 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독립선언서들은 하나같이 인도주의에 기초한 비폭력 저항을 주문했다.

독립선언서들의 내용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침략한 점을 지적했고 또 일제의 대(大)아시아주의를 향한 야심을 지적하며 이것이 10년 전(1910)처럼 지금도 동양평화를 파괴한다고 규탄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독립은 동양의 평화를 위해 절실한 과제라고 주장했고, 이를 위한 한국(조선) 민족의 자결권을 강조했다.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선포된 평화사상은 그 당시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그 배경으로 깔려있다. 즉, 식민지배 아래에서 신음하는 약한 민족들이 러시아 혁명과 독일 혁명에 자극을 받아 독립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던 시기에 일어난 한국 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 이에, 3.1운동은 일제의 식민지배의 부당함과 그동안(1910-19)의 학정을 온 세계에 알리면서 세계의 개조를 주장했다. 세계의 개조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제국주의 약육강식의 세상이 종식되고 정의와 인도에 기초한 민족자결을 통해 이루는 평화의 세상을 추구했다. 그 평화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고 이미 구한말 시대의 삼화사상과 정족평화론에 기반 한 동양평화였다. 정족평화론에 기초한 기미년(1919) 3.1운동은 국내외에서 거주하는 한민족의 평화운동이라 해석할 수 있다.

3.1운동의 평화사상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성경의 평화(샬롬, 에이레네)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별히 구약성경 이사야서 11장에 선포된 평화는 3.1운동의 평화사상과 서로 상응하고 일치된다. 그러나 이 평화운동이 3.1운동 당시에는 한국의 독립으로 성사되지 못했고 국제 정세 또한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로써, 이 평화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이루어진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