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관용 없이 어떻게 북한을 용서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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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관용 없이 어떻게 북한을 용서할 수 있나”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5.02.06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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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분단 70년, ‘화해’가 먼저다 - ② 갈등 한반도, 통일은 아직 먼 길

“우리의 기도제목은 즉각적인 통일이 아니라 비적대적 분단”

나와 생각 다르면 ‘적’으로 규정하는 사회로는 통일 불가능

“통일 위한 기도제목은 즉각적인 국가의 통일이 아닌 비적대적 분단”

우리 안 전쟁 끝내지 않고서는 통일 어려워… 갈등 종식 시급한 이유

▲ 한기총이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이념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며, 한국교회는 그 이념 대립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불광동 팀수양관에서는 ‘2015 통일비전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캠프에 참여한 조은하 씨(22세)는 먼 나라였던 북한을 이제는 형제로, 그리고 가족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대학생 조은하 씨는 북한을 일본보다 먼 나라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앙금이 남아있는 것을 생각할 때, 북한은 그보다 훨씬 체감온도가 낮다는 뜻이다. 말이 ‘한민족’이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에게 북한은 완전히 다른 나라이며, 통일은 아예 관심사가 아니었다.

조 씨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다. 구원의 감격을 가족들에게 전하고자 기도했는데 어느 날 문득 ‘왜 나는 죽어가는 북한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북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 적 없고, 북한 이웃들을 위해 눈물 한 번 흘린 적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는 “오늘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관심은 오직 취업 뿐”이라며 “북한에 대한 사랑, 통일에 대한 열망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교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없이는 지리적 통일도, 정치적 통일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베풀고 싶어서 북한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조은하 씨는 “기도밖에 할 것이 없는 게 아니다. 기도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되려면 ‘비적대적 분단’ 먼저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우리와 같이 분단으로 상징된 ‘독일’이 통일을 이룬 것이다. 그 후로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반도에서 통일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통일문제 전문가들은 한반도와 독일의 분단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냉전시대의 피해로 우리나라가 두 조각이 나고, 동독과 서독이 갈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독일은 분단 이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물론 독일은 히틀러를 중심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범죄국이었다.

하지만 전쟁과 학살의 고통을 모두 공감하고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교회를 중심으로 하나 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왔다. 종교적 공감대가 갈라진 동서독을 끈끈히 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숭실대 김회권 교수는 “통일을 바라는 우리의 기도제목은 즉각적인 국가적 통일이 아니라 비적대적 분단”이라고 말했다. 비적대적 분단은 통독 이전의 동서독의 상황을 말한다. 동독과 서독은 1990년 통일을 이루기 전까지 상대적으로는 45년 간 비적대적 분단시기를 보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의 패전 책임을 지고 국제정치의 분할을 수용한 것이다.

독일은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으로 이뤄진 4개 연합국의 통치를 받았다. 동독은 냉전시대 소련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서방과의 단절을 시작했고, 이데올로기의 통제와 차이도 생겨났다. 그러나 독일의 분단은 애초부터 오랜 이념갈등과 전쟁에 의한 분단이 아니고 독일 내부에 오랜 이념갈등의 결과가 아닌 냉전시대의 산물이었다. 우리나라의 분단도 국제적으로는 냉전의 산물이지만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을 가로막은 상태에서 시작된 갈등과 분열이라는 점에서 독일과 차이점을 보인다.

해방과 분단의 역사를 살아온 이강익 씨(84세)는 1950년 전후 한국의 상황을 크고 작은 전쟁으로 묘사했다.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전쟁이지만 마을 안에 일어난 갈등과 기득권 싸움, 파벌로 나눠진 당시 분위기 자체가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는 아랫마을 청년이 완장을 차고 나타나면 그와 적대적인 청년들은 몰매를 맞았다. 며칠 후 완장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철저한 응징이 이어졌다. 그렇게 반복된 갈등이 전쟁 이전에 우리 안에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웃은 ‘적’이었다. 그리고 ‘적’을 내몰기 위한 ‘전쟁’이 마을단위에서부터 일어났던 것. 민중들의 삶까지 파고든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감정적 대립은 반드시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학자들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해방공간에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양극화된 극단적 이념투쟁을 경험했고, 국가 수립과정에서도 정치적 파벌 경쟁이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 증오의 정서를 드러냈다”고 당시의 갈등 상황을 진단한 바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단순한 ‘분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갈등과 상처가 깊이 남아있는 적대적 분단인 것이다.

 

이념갈등 이면엔 ‘생존권’ 문제

비적대적 분단 상황으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는 이념갈등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통일 자체가 어렵다.

동의대학교 주봉호 교수는 남남갈등을 한국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갈등으로 분류했다. 북한을 보는 인식과 통일의 방법이 국민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 당연히 통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주 교수는 “이데올로기의 대입으로 특징되는 남남갈등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 좌파와 우파의 갈등 양상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법론의 차이, 여야정치인들이 국민의 지지를 유도해내기 위한 정치적 요인,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언론 등 복합적인 요인이 개입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유형이 다를 뿐 인간 공동체에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갈등은 ‘적대감, 전쟁, 경쟁, 긴장, 모순, 투쟁, 불합의, 불일치, 논쟁, 폭력, 반대, 혁명’ 등을 모두 포함한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의 관점이다. 갈등의 해소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함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남남갈등은 ‘이념’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좌우’의 개념으로 갈등이 일어나곤 한다.

주봉호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진보-보수의 개념이란, 경험에 상당부분 연관되어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한국전쟁이라는 냉전체제 유일의 전쟁을 경험하고 또 그 경험이 자식세대로 유전되면서 한국에서의 이념이란 하나의 생존권에 관련된 문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 관용문화 확산부터

우리 안에 전쟁을 끝내지 않고서는 통일이 어렵다. 갈등의 종식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 교수는 “남북관계 변화와 통일논의 자체가 이념적 차이를 기본으로 하는 배타적 대립구도에 의해 표류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똘레랑스의 문화, 즉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의 문화는 의미있는 시사점을 줄 수 있다”며 “한국사회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타파하고, 다양성이 용인되는 공존의 장으로서 사회를 가꾸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 화해와 협력이 포용과 관용에서 시작된다면, 남남갈등 역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관용에서 풀어가야 대북정책과 통일 논의도 원만히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27일 통일비전캠프에 참석해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남북 대결과 갈등을 부추겼던 과오를 반성하고 우리 마음속에 쌓인 분단의 장벽, 증오의 장벽부터 허물고 화해하는 것”이라며 우리 안의 화해와 평화를 강조했다.

더 나아가 숭실대 김회권 교수는 “교회의 교회다움 회복이 겨레의 화해와 통일운동의 시작”이라며 “한국교회가 십자가의 복음, 그리스도의 보혈복음만 증거한다면, 즉 교회가 교회답기만 하다면 한국사회의 모든 단위의 갈등과 대결은 크게 완화되고 사회 화해적인 변혁의 에너지는 겨레 화해의 에너지로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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