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 소설] 박경희 작가의 ‘새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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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 소설] 박경희 작가의 ‘새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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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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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자 동생의 낡은 운동화가 시위하듯 놓여 있다. 동생이 또 땡땡이를 쳤나보다.

“너 오늘도 학원 안 갔어?”

게임 삼매경에 빠진 동생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내가 학교 마치고 지역아동센터 공부방에 다녀오는 동안 동생은 게임만 한 것 같다. 아무 것도 모르고 일하고 계실 할머니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말해야겠어.’

난 걱정스런 마음으로 밥상을 차린 뒤, 동생을 불렀다.

“밥 먹어!”

노릇노릇 먹음직스런 계란 프라이 옆에 김을 놓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화가 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방안이 완전 폭격 받은 전쟁터였다. 요즘 내 동생의 마음밭을 보는 것 같았다. 티셔츠에서부터 추리닝까지 모든 옷들이 엉켜 있고, 책상 위에는 책이며 공책 대신 잡지에서 오린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최신 유행하는 운동화 사진들이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신기만 해도 공주처럼 예쁠 것 같은 빨간 운동화였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사진 보면 더 사고 싶잖아.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해. 괜히 할머니 힘들게 하지 말고.”

“난, 할머니가 너무 짠순이라서 싫어.”

“휴!”

내 동생 철민이는 지금 할머니와 보이지 않는 전쟁 중이다.

“할머니, 이번 설에는 나이키 운동화 좀 사주세요. 중국에서 남조선 텔레비전 볼 때부터 신고 싶었단 말에요. 애들이 내 운동화 보고 북한 애들이 신는 거냐고 놀린단 말예요.”

“이 놈이 시방 제 정신 맞는 둥? 사람이 제 분수를 알아야지비. 뱁새가 황새 쫓으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꼴 모르는 둥?”

할머니의 대답은 들으나마나다. 남조선에 온 지 2년이 지났지만, 할머니가 우리 것을 새 것으로 사준 건 짝퉁 가방 뿐이다. 재활용 센터에 가서 옷이며 운동화를 사 오던가, 얻어 왔다. 그런 할머니가 명품 운동화를 사줄리 없다.

동생은 일부러 할머니 비위 상할 짓만 한다. 백 원 짜리 동전도 아끼는 할머니가 거금을 들여 동생을 종합 학원에 보내고 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학원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데 말이다.

지금 동생은 일주일 째 무단결석 중이다. 어제도 일마치고 오신 할머니가 컴퓨터 앞에 코를 박고 있는 동생을 향해 물었다. “설마? 학원까지 빼먹고 게임 귀신에 빠진 것은 아니갔지비?”

동생은 죽은 듯이 게임만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아님다. 학원엔 다녀 왔슴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날 거짓말쟁이로 만든 동생이 미웠다. 그래도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밥 먹으라니까. 오늘은 할머니한테 다 말씀드릴거다.”

내 말에 동생의 눈초리가 사납게 변했다.

“맘대로 해! 씨이, 겁날 것 없어.”

“학원 선생님이 전화할 거야. 분명. 할머니가 아시면 죽음이라는 거 몰라?”

“싫어. 싫단 말이야. 소금보다 더 짠 할머니도 싫고, 엄마처럼 잔소리쟁이 누나도 싫다구…….”

“네가 이런다고 새 운동화가 나올 것 같아? 얼른 밥 먹고 숙제나 해.”

내가 동생의 등을 떠밀며 잔소리를 했다. 그리곤 피를 줄줄 흘리며 싸우는 장면이 가득한 게임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어휴, 또 쉬어터진 김치에 찌렁내 나는 김 뿐야.”

철민이 젓가락을 든 채, 반찬 투정을 했다.

“계란 프라이가 완전식품이래. 이거라도 먹어.”

나도 불고기도 할 줄 알고, 샐러드도 만들 줄 알지만 재료가 없는 걸 어쩌랴. 냉장고에는 복지관에서 준 김치통과 오래된 장아찌통 뿐이다.

“강냉이죽 대신 따신 밥 실컷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함둥. 사람이 배가 부르면 자기 분수를 모르고 망둥이 뛰듯 날 뛰는 법 임둥.”

나는 할머니가 늘 하던 말을 흉내 냈다. 동생이 내가 건네는 계란 프라이를 젓가락으로 탁 쳤다. 먹기 싫다는 신호다. 

“계란 프라이 먹지 않으면, 네 키는 이대로 멈출 것이니라. 얍!”

뿌루퉁하게 입을 내민 동생에게 장난처럼 말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4학년인 동생을 1학년쯤으로 볼 때마다 속상 했다. 동생이 마지못해 계란 프라이를 약 먹듯 먹었다.

“이것도 마셔! 벌컥 벌컥.”

우유는 내가 학교에서 가져 온 거다. 내 짝꿍은 우유 알레르기가 있다며 매일 우유를 남겼다. 우리 반에는 짝 말고도 선생님 몰래 우유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아이들이 꽤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슬그머니 우유팩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럴 때는 나도 할머니가 된다. 아이들이 버린 우유팩을 주울 때마다 300원짜리 동전을 길바닥에서 줍는 것 같다. 한 개도 아닌 여러 통을 가져올 때는 왠지 횡재한 느낌이다. 할머니는 내가 주워 온 우유를 고깃국물이라도 되듯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마셨다. 우리 손녀가 철이 들었다는 말을 꼭 빼놓지 않으며.

“우유가 키 크는 약이래. 농구 선수들은 우유를 박스 채 들이킨대. 너도 얼른 마셔."

나는 과장된 목소리로 우유를 권했다. 동생은 돌 씹은 얼굴로 날 바라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죽어도 우유는 못 먹어. 밍밍하고 비릿한 걸 왜 마셔?”

“너 그럼 어른이 되어서도 땅꼬마로 살거야?”

그래도 동생은 우유팩을 던져 놓고 자기 방으로 줄행랑을 쳤다.

“배때기가 불렀그레마. 쓰레기통 뒤져 생선 내장까지 주워 먹던 옛날 일 모두 잊었슴둥? 사람이 그리 간사해서 쓰갔슴메?”

언제 들어왔는지 할머니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동생은 할머니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할머니의 얼굴이 쌈닭의 벼슬처럼 붉어졌다. 나는 할머니와 동생의 눈치를 보느라 도다리 눈이 될 지경이었다. 

“할매가 죽도록 고생하다 들어와도 게임 귀신에만 빠져 있으니……. 헛 살았지비. 이거나 냉장고에 넣으라우.”

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알고 있다. 할머니가 갑자기 목소리를 까는 건 전쟁 직전의 고요나 다름없다는 것을.

나는 할머니 눈치를 보며 검은 봉지 속의 반찬들을 꺼냈다. 할머니는 동네 요양원에서 중증 환자 돌보는 일을 한다. 치매 노인들 똥기저귀 갈아주고 식사 거드는 일 등을 돕느라 밥 먹을 시간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런 날은 오늘처럼 검은 봉지에 음식을 싸 갖고 온다.

뿅. 뿅. 뾰옹!

동생이 가열차게 게임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가슴이 콩알만 해져서 두근거리는데 동생은 뻔뻔스럽다.

“칠십이 다 된 할멈이 뼈 빠지게 일하고 들어왔는데, 손자라는 놈은 게임 귀신에 홀려 쳐다 보지 않능둥? 학원도 빼 먹고 저 짓하는 거 아님둥? 쯧쯧.”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뜨끔했다. 동생은 그래도 꿈쩍 않았다. 똥고집. 지독하다. 내가 방으로 들어 가 발을 동동 굴러도 소용없었다.

뿅.뿅.뿅. 쇽. 쇽.

두근두근두근. 미칠 것 같다. 괜히 나만.

“이눔의 자슥. 할멈 말 안 들림둥?”

급기야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동생의 등덜미를 후려쳤다. 그제야 동생이 홉뜬 눈으로 할머니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날 왜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이렇게 거지새끼로 살 거면 고향에 내버려두거나 국경선에 풀어 놓고 오지. 왜 데려 왔냐구? 맨날 헌 옷만 입고 싸구려 운동화만 신고……. 애들이 짝퉁 새끼라고 놀릴 때마다 얼마나 창피한 줄 알아? 나도 나이키 운동화 한번 신어보고 싶다구!!! 엉엉.”

동생이 버럭 소리를 지르다말고 서럽게 울었다. 동생 말이 틀린 건 없다. 이곳에 와서 배 곯지 않는 것 외에는 북에서와 다른 게 없다. 고향에서는 가난한 줄 몰랐다. 모두 사는 게 비슷하니까 말이다. 여기는 달랐다. 남들은 다 잘 사는데 우리 집만 가난한 것 같아 주눅이 들 때가 많다. 학교에서 그렇고, 교회에 가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동생이 울며 대들자 잠시 당황한 듯싶지만 금세 냉정해졌다. 그리곤 퍼뜩 뭔가 생각나는 듯 동생을 다그쳤다.

“너, 학원도 빼 먹었지비? 하는 꼴을 보니 영락없구다 마.”

“그깟 학원은 다녀서 뭐해! 거기서도 거지새끼라고 놀림 받는데. 나 나이키 운동화 신고 싶다구요. 할. 머. 니.”

동생이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독기를 품고 대들었다. 울어도 별 소용이 없다 싶었나 보다.

짝. 짝. 짜악. 할머니의 거친 손이 동생의 얼굴을 강타했다. 동생이 얼굴을 감싼 채 볏단처럼 맥없이 주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동생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한 줌 밖에 안 돼 보였다. 내 마음이 파르르 떨렸다.

“남조선은 돈 없으면 죽는 세상인 거 모름둥! 에미 애비도 없는 놈이 돈마저 없음 어찌 험한 세상을 산다 말임둥. 할매는 좋은 옷 안 입고 싶은 줄 아늠둥? 내도 오만 사람들이 노예처럼 부려 먹을 때마다 모든 것 때려 치고 싶숨둥. 그런데 뭐? 야속한 자슥 같으니…….”

할머니도 목청을 높였다. 누가 들으면 어른들 싸움인 줄 알 것 같았다. 왠지 앞집에서 들을까 두려워 현관문을 꼭 잠갔다.

“새 운동화 사 주세요! 무조건……. 씨이, 나…….운동화 사 줄 때까지 학교에 안 갈 거야!”

얼굴이 벌겋도록 맞고도 시위를 멈출 줄 몰랐다. 나는 속으로 놀랬다. 난 할머니 눈만 봐도 기가 팍 죽어 아무 말도 못하는데. 동생은 다르다.

“이 놈의 자슥,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여도 되는 줄 아능감?”

할머니는 분이 안 풀렸는지 또 때리려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에이 씨.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새 운동화 사고 말 테야.”

동생은 선전포고라도 하듯 이 말을 한 뒤,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나는 처음에는 응석을 부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변해 갔다. 구부정한 허리로 좁은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연신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급기야 할머니가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풀썩 쓰러졌다. 덜컥 겁이 났다. 베개를 갖다 간신히 할머니를 눕힌 뒤 찬물에 적신 수건을 머리에 올려놓았다. 할머니가 끄응, 소리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철민아……. 철민아……. 어서 나가 보라우!”

할머니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러다 할머니가 큰 병이 나는 건 아닌지, 동생은 밖에 나가 나쁜 형들에게 잡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산더미처럼 밀려왔다.

나는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미끄럼틀 밑이라든가, 놀이터 화장실 등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급히 나오느라 장갑도 못 가지고 와 손이 시렸다. 가로등 밑에 숨은 희미한 불빛을 보자 울컥 목젖이 아팠다.

“끼야아옹!”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주목 나무숲에 늘 살던 검은 고양이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고양이가 머물던 숲을 들여다보았다. 고양이가 앉았던 자리에 지푸라기만 보였다.

자정이 점점 가까워지자 지나는 사람도 없고, 불빛만 졸린 듯 껌벅거렸다. 어쩌면 동생이 집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어왔다. 동생은 없고 할머니만 맥없이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나가 동생을 찾을까 하다 말았다. 춥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할매 싫다고 가버린 자슥……. 찾을 것 없다……. 너도 할매 싫음 나가라우.”

나는 할머니의 괜한 말이라는 것쯤 안다.

“내만 생각하면 굶어 죽어도 고향에 묻히고 싶슴둥. 너나 철민을 생각해서 국경선을 넘기로 작정했잖슴둥. 그러니까니 니들도 할매 믿고 끝까지 잘 참아야 함둥!”

할머니가 압록강을 건널 때 귀가 따갑도록 한 말이었다.

“할머니, 따뜻한 물드시고 주무세요. 철민이 낼 들어올 거에요.”

 할머니에게 이불을 덮어 드린 뒤 나도 그 옆에 누웠다.

“새 운동화 사고 말테야!”

동생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밤새 뒤척였다. 할머니도 연신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푹푹 쉬느라 잠을 설쳤다. 창 밖에 비치는 어둠이 긴 터널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찌릉, 찌릉. 새벽녘인데 전화벨이 울렸다. 궁궁거리며 거실을 서성이던 할머니가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아, 그러심까. 고맙슴다. 지금 가겠슴다.”

할머니 뒤를 쫓아가 보니 동네 지구대였다. 순경들도 몇 명 안 되고, 동생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할머니와 나를 보더니 당당하게 집을 나가던 때와는 달리 서리 맞은 배추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옷도 후줄근한데다 유난히 너덜거리는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노숙자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콧등이 찡했다.

“저 아랫동네 공원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집 전화번호를 말 안 해서 애 먹었습니다. 할머니, 요즘 애들은 살살 달래가며 키워야 합니다.”

젊은 경찰이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는 허리 숙여 인사를 하더니, 느닷없이 젊은 경찰에게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소장수를 하던 제 아바이가 명절이라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소를 잡았다고 내 보는 앞에서 총살을 당했슴다. 쟤들 에미는 돈 번다고 중국으로 간 뒤로 감감무소식이구요. 다행히 작은 아들이 나와 쟤들을 델꼬 국경을 넘었지요. 중국서 고생 고생하다 간신히 남한에 온 것 아님까. 내가 쟤들 앞날 준비해 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슴까.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했는데……. 이런 사단이 난 검임다. 이러다 괜히 아이 버릴까 두렵슴다. 지난 밤 무서웠슴다. 으흐흑…….”

할머니가 어린애처럼 훌쩍이며 말을 했다. 할머니가 우는 모습은 처음이다. 이상하게 온몸이 스멀거렸다. 이야기를 듣던 젊은 경찰이 당황한 듯, 할머니에게 휴지를 주었다. 동생은 땅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고개를 더욱 숙였다.

“가자우. 날 밝으면…….이 할매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좋은 운동화 사 줄거이니까니.”

할머니가 동생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동생이 할머니 품에 안겼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 살포시 물기가 서렸다. 나도 울컥 목이 메었다. 동생 덕분에 나도 새 운동화가 생길 것 같다. 기왕이면 빨강 운동화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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