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선교적 교회로 변신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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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선교적 교회로 변신해볼까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5.01.14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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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 동향과 ‘바람직한 선교운동’의 방향
▲ 국제위클리프 선교회의 정민영 선교사

‘선교적 교회’, ‘총체적 선교’, ‘참여’. 이 세 가지 키워드는 21세기 세계선교의 주요동향을 말해주는 커다란 흐름으로 손꼽힌다. 새해를 맞아 국제위클리프 선교회의 정민영 선교사를 만나 세계선교의 커다란 흐름인 ‘선교적 교회’에 대해, 그리고 바람직한 선교운동의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선교하는 교회에서 선교적인 교회로

선교적 교회는 교회연합운동 진영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돼왔던 이슈로,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최근 들어서야 본격적인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의 의미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게 사용되고 있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 ‘행위’보다는 교회의 ‘선교적 본질’과 ‘자질’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특정 지역교회가 몇 명의 선교사를 얼마만큼의 예산으로보냈느냐’ 또는 ‘얼마나 많은 선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가’ 보다 교회의 관점과 태도, 가치관, DNA가 선교적인지 여부에 주목하는 접근이다.

먼저 정민영 선교사는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당위성을 강조했다. 신학적 차원에서 봤을 때 선교는 교회가 특정 인물을 특별한 곳에 보내서 행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 선교사는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위해 세상에 보내진 사명적 공동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교회는 파송하는 교회(Sending Church)의 관점 이전에 ‘이미 파송 받은’ 교회(Sent Church)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상황적 차원에서도 선교적 교회로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세계화 현상이 선교지와 선교사 파송국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지역교회는 더욱 가까이 ‘다가온 땅끝’ 선교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됐다. 이것은 마치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사로 파송되는 사건 이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다가온 땅끝’으로 인식하고 선교적으로 끌어안은 일이 선행됐던 것과 유사하다.

정 선교사는 이같은 신학적․상황적 요인으로 봤을 때 “지역교회가 선교적 존재가 되지 않은 채 선교적 행위에 몰두하는 것은 오히려 선교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선교라는 명목으로 아무나 무슨 일이든 해도 된다는 식의 ‘행동지상주의’는 청산돼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지역교회의 선교운동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먼저 양과 규모를 추구하기 보다 건강한 선교적 자질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추고 전략적 선교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해외’라는 지리적 관점보다 ‘타문화’라는 관점을 갖고 해외 선교와 주변 타문화 사역이 균형있게 병행되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 그는 “주변의 타문화 사역, 즉 국내 거주 이주민 사역은 그 자체로 전략적인 선교일 뿐 아니라, 지역교회의 ‘선교적 근육’을 키워 해외선교의 성취도를 높여주는 양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역교회의 체질이 선교적으로 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세계선교의 전략이다. 사진제공=대한성서공회.

원론적 선교에서 총체적 선교로

정민영 선교사는 그동안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증인의 사명’을 ‘전도’로 축소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하면서 “증거란 전도를 포함하지만 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로잔언약에서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구현되는 우리의 삶이 복음의 선포와 병행돼야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로잔언약을 기안한 존 스토트 목사 역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선포(Proclamation)와 입증(Demonstration)의 두 기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여기서 파생된 개념이 ‘선교로서의 사업(Business As mission)이다. 정 선교사는 “그리스도인이 사업을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되게 운영한다면 세상사업과의 차별화를 통해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셈”이라며 “이는 세상으로 하여금 복음의 탁월성에 주목하게 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이라는 수단이 언어와 비언어를 망라한 ’총체적 메시지‘로 복음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과 동일한 기준과 방식을 고수하면서 성경공부나 직장예배만 추가한다고 기독교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유형의 사업을 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자세로 사업을 운영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때문에 총체적 선교 개념이 요구하는 선교운동은 ‘양보다 질’을 우선한다. 다다익선의 무차별 동원개념을 떠나 진지하고 신중한 접근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 선교사는 “준비 안 된 백 명보다 준비되고 검증된 한 명을 선교현장으로 보내는 것이 낫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땅밟기’나 ‘예수천당, 불신지옥’ 식의 무례한 일방통행을 자제하고, 지역사회와 신앙공동체에서 검증된 일꾼들을 적재적소로 보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종교행위로서의 전도보다 삶과 신앙인격이 뒷받침되는 총체적 증거에 대한 강조, 교회 지도자의 통합된 성품과 언행일치, 다중언어와 다중문화를 갖춘 디아스포라 교회의 선교적 역할도 총체적 선교에서 요구되는 자세로 꼽힌다.

동원에서 참여로, 과업보다 하나님나라 중심으로

정 선교사는 “지역교회의 체질이 선교적으로 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세계선교의 전략”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교회의 선교적 무관심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된 선교단체 중심의 서구선교 패러다임이 20세기 말에 새롭게 시작된 비서구선교운동에 전이되는 것을 피하기는 힘들었겠지만, 그것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어정쩡하게 서구선교를 따라가던 비서구교회들이 근래에 와서 지역교회와 분리된 선교운동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고 있다. 결국 교회의 선교적 회심 없이 선교단체끼리 단합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지상명령이 완수될 수 없다는 깨달은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동원(Mobilization) 모델의 몰락과 함께 참여(Engagement)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선교적 DNA를 강화해 함께 과업을 완수하는 참여모델은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위주의 동원모델과 달리 협력과 동역을 중심으로 한다. 또한 비인격적이며 목표지향적인 동원에 비해 관계중심적인 특징을 갖는다.

정민영 선교사는 “선교를 특정지역교회가 추구하는 과업으로 정의하다 보면 자칫 본질을 상실한 인본주의적 열심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며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책망 받은 에베소교회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혁자들이 ‘항상 개혁하는 교회’를 주문한 것도 바로 이같은 전통적인 과업중심 파트너십의 위험성 때문이라는 것. 때문에 선교적교회는 특정 선교단체나 지역교회의 과업보다 큰 궁극적 목표, 즉 그리스도의 우주적 몸의 완성을 추구한다. 또한 협력의 효율성보다는 협력 자체가 갖는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고 다양한 전문성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시너지를 창출한다.

정 선교사는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선교운동이 본격화된 지 40여 년이 흘렀다”며 “이제는 더 이상 선교의 질을 제쳐둔 채 외형만을 추구하는 행동주의적 시행착오를 계속해서는 안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가 가서 끝낸다는 생각을 버리고 2015년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성경적으로 더 온전한 선교개념을 정립하는 성숙한 단계로 진입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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