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는 용서하고 인정하는 일이 쉬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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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는 용서하고 인정하는 일이 쉬워져요"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4.12.23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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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말... 안양호스피스선교회

한 해가 다 지났다. 
유독 사건 사고가 많았던 올해는 다른 때보다 시간이 유난히 더 빨리 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12월이다.
그런데 여기 365일 마지막을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호스피스 병동의 사람들.
많게는 하루에 한 번씩 임종을 맞이하지만 눈물을 흘리기보다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12월의 끝자락. 안양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화려한 시작 못지않은 아름다운 마지막의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봤다.

#1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12월 18일 오전 10시. 안양호스피스선교회가 사역하는 안양 메트로병원 5층 호스피스 병동 사무실. 권경란 실장과 10명의 봉사자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봉사를 준비하고 있다. 병동 상황판에는 환자들의 이름과 나이, 병명 등이 꼼꼼하게 적혀있다.

“김00 할머니가 너무 추워서 밖에 까마귀가 얼어 죽겠다며, 까마귀 몇 마리 주웠냐고 농담을 하시더라고요. 한00님은 요 며칠 얼굴이 편안하세요. 통증이 줄어들었습니다. 딸이 옆에서 성경을 읽어주는데 말씀은 안하셔도 다 알아들으시는 것 같으니까 꼭 손 붙잡고 기도해주세요. 그 다음 정00님은 9월에 진단을 받았는데 환자 아버지가 말하길 부모 없이 혼자 자랐다더라고요. 많이 불행한 삶을 살았어요. 아내가 패물까지 들고 도망가고... 김00 할머니는 어제 안 주무시는가 했는데 자다가 잠꼬대로 이름을 부르시더랍니다. 아침에 전혀 기억을 못하시는데 이분께 오늘 꼭 성경 읽고 말씀 전해주시는 것 잊지 마세요. 찬송도 꼭 나만을 위해 한다고 느끼도록 불러드리세요.”

8명의 환자의 이름과 상태, 인생의 배경까지 권 실장은 가능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면서 동시에 조금이라도 환자가 복음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지난달에는 유독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추운 날씨 탓이다. 성탄의 기쁨이나 새해의 설렘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은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에게는 매일 아침이 기적이고 삶의 가장 중요한 날인 탓이다. 봉사자들 역시 이곳에서만큼은 세상의 일보다 환자들의 영혼에 온 관심을 집중한다.
브리핑이 끝나고 다 같이 기도를 한다. 꼭 잡은 두 손에 간절함이 묻어난다. 환자들에게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구호를 제창한다.

“나는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함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 병실 예배는 하루 한 번씩 365일 계속된다.

#2 복음이 살아 숨 쉬는 예배
하루 한번 있는 병실 예배는 여자병실인 531호에서 드려진다. 병실 천장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는 예배 실황은 건너편 남자병동의 작은 브라운관으로 실시간 생중계된다. 먼저 찬양을 몇 곡 부른다. 찬양을 부르는 동안 봉사자들은 환자의 발과 보호자의 손을 꼭 붙잡고 눈을 맞춘다. 오늘 말씀은 호스피스선교회 사무국장인 정태수 목사가 전한다. 본문은 마가복음 9장 2절에서 3절.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 빛난 광채를 띠며 희게 변하셨다는 내용이다. 제목은 ‘성도의 한 가지 자격.’

“내 모습 이대로 나간다는 믿음만 있다면 예수님이 희게 변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빛난 광채에 싸여 하늘로 들려올라갈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이것이 성도의 한 가지 자격입니다. 지금은 희미하고 막연해 보일지라도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365일 계속된다. 위로와 소망, 용서, 평안을 주제로 하는 설교가 주를 이룬다. 예배는 선교회 차원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전도보다 통증완화가 우선시되는 호스피스 봉사에서 가장 직접적인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섣부른 전도는 환자들에게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오는 환자들 대부분이 죽음이 임박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보니 보호자나 주변인들은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조급함만 가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해버리면 가뜩이나 불안한 마음이 분노나 극도의 두려움 등 반대급부로 나타날 수 있다.

또 한 가지 흔히 벌어지는 실수는 ‘믿음으로 능치 못할 것이 없다’며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것’이라고 선포해버리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연명치료를 포기하고 어렵게 인생을 정리하던 환자의 마음이 다 헤집어질 수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모두가 환한 옷을 입는다. 가뜩이나 헛것이 보이기도 하는 환자에게 어두운 상의는 불안감을 줄 수 있다. 봉사자들은 언제나 웃는 낯으로 환자들을 대한다. 봉사자들은 억지로가 아니라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목요일 오전 봉사팀장을 맡고 있는 문옥자 권사는 벌써 10년째 이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이 곳 호스피스 병동을 ‘바깥세상과 공기조차 다른 곳’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에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죠. 자기 삶은 영원할 것 같은 마음으로 사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늘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죽음 앞에서 내려놓지 못할 것이 뭐가 있나요. 용납 못할 것이 뭐가 있나요. 그러니 우리 봉사자들은 늘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이곳에 옵니다. 죽음 앞에서는 용서하고 인정하는 일이 쉬워져요. 자연히 다툼도 없죠.”

#3 그래도 기적을 바랍니다
임파선 암 4기인 남편의 보호자로 지난달부터 병동에 머물고 있는 김숙희 집사(반월제일교회 63세). 남편이 처음 뇌졸중으로 쓰러진 건 10년 전이었다. 뇌졸중으로 인한 뇌손상이 허리 장애로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 10월에는 급성 임파선 암이 발견됐다. 의사는 빠르면 11월 오래가면 12월까지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 남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그녀를 더욱 아프게 했다. 어떻게든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과 함께 호스피스를 선택했고, 이 선택은 옳았다.

“여기 와서 느끼는 것은 먼저 마음이 편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렇게 생애를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것에 남편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는 남편에게 그랬어요. 올해를 넘기는 것도 하나님 뜻이고 내일 가는 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그러니까 마음 상해하지 말고 받아들이자고. 이 세상 잠시 쉬었다 가는 건데, 당신 가면 나도 금방 가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어요. 남편도 저도 지난 5년간 너무 힘들었죠.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슬프지 않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도 있습니다. 기적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정말 이 사람을 회복시키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에요.”

▲ 최대림 목사(왼쪽)와 박종근 목사(오른쪽)가 환자에게 발마사지를 하고 있다.

#4 진단된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
점심식사 시간이 지나고 오전 팀이 빠지면 오후 팀이 들어온다. 10명 남짓의 오전 팀에 비해 인원수는 세 명으로 조촐하다. 하지만 오후팀에서 사역하는 최대림(주은교회) 박종근(드림교회) 목사는 6년이 넘도록 매주 봉사를 해 온 베테랑이다. 봉사자 가운데 남자가 흔치 않은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의 존재감은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악기에 능숙한 두 사람은 바이올린과 크로마하프, 아코디언 등으로 환자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권경란 실장의 브리핑과 기도, 구호제창이 있은 후 세 사람은 병동으로 향한다. 발 마사지 전문가이기도 한 오후팀은 먼저 환자들의 발을 정성스럽게 마사지한다. 마사지가 끝나면 두 사람은 목회자답게 환자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최대림 박종근 목사는 ‘병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평안을 달라’고 기도한다. 신불신을 막론하고 이 기도를 싫어하는 이는 한명도 없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목회적 관점에서도 호스피스 봉사는 매우 유익하다. 최 목사는 호스피스 환자들을 ‘진단된 종말을 맞는 사람들’이라 표현한다. 6년 동안 500명이 넘는 이들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그는 “죽음 앞에서는 목사도 장로도 구원관이 현명하게 드러난다”며 “목회자들이 죽음과 아픔, 가족들의 심정을 살펴보기 원한다면 꼭 한번 호스피스 봉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박종근 목사는 호스피스 병동을 “육의 회복이 아니라 영의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가족간의 감사가 상실된 사람들, 용서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종말론적인 신앙 안에서 회복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며 “나도 언제든지 저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나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1998년 시작한 안양호스피스선교회는 지금까지 2천여 명의 환자들이 지나갔으며 이들 중 340여 명이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다. 선교회는 매년 두 차례 호스피스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교육을 이수한 사람만 220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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