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나 슬플 때나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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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때나 슬플 때나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 승인 2003.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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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을 닫고 보니 시간이 밤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은 바로 교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배실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오늘 하루도 온전히 지켜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생명을 붙들어주시니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말문을 열고 기도하길 2시간 남짓.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종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하나님과 만남을 갖는 이현애집사(41·서울중앙교회). 새벽 5시 기도로 하루를 열고 그녀의 사업장으로 나가기전에 또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점심 영업이 끝나고 쉬는 틈을 타 또 기도를 한다.

그리고 모든 영업이 끝난 밤시간, 다시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 이렇게 1년 365일 기도로 반복되는 삶이 바로 이현애집사의 삶이다.

초등학교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헌신적인 믿음을 갖지는 못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교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 눈으로 보기엔 철없는 어린 양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가 다시 하나님을 찾은 것은 결혼생활이 시작되면서 부터다.

아는 이 하나없는 제주도로 시집을 간 것, 그것이 바로 사건의 시작이었다. “막상 제주도로 가보니 모두들 미신을 섬기고 있었어요. 바람도 많이 부는 어촌 마을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집을 지키고 있기란 쉽지 않았죠.”

비교적 부유하다는 집으로 시집을 갔지만 남편은 허구한날 술과 도박에 빠져 지냈다. 아내와 아이도 팽개치고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을 기다리며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야했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이웃이 전도를 하며 신앙생활을 권했다.

“그 때 교회는 저에게 하나의 해방구와 같았어요. 주일학교 교사로 여전도회 봉사활동에 청년부까지 각 기관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찾아다니며 최선을 다했죠. 특히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저에게 새로운 힘이됐어요.

제주도 아이들은 저만큼 외로움이 많은 아이들이었죠. 아빠는 대부분 배타러 나가고, 엄마는 일본으로 돈벌러 떠나 아이들 홀로 집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린 생명을 구원하는 일보다 값진게 어디 있을까요. 그 아이들이 있어 전 향수병도 잊을 수 있었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믿음이 좋아질수록 그녀에겐 큰 시련들이 닥쳐왔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내고, 구타를 하는 등 가정안에서 고통이 계속됐다. 그 때 마침 교회 담임목사님이 구역장이라는 직책을 맡겨주셨다.

그런데 5명의 구역식구 가운데 2명은 초신자고 3명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였다. 그 중 한 할머니는 앞을 보지 못했고 또다른 한명은 치매에 걸린 독거노인이었다.

“눈앞이 캄캄했죠. 그런데 오히려 힘든 일을 맡으니까 고통이 잊혀지더군요. 치매를 앓고있던 할머니를 매일 찾아 빨래며 청소를 해드렸어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분인데 저만 보면 손을 꼭 잡고 아기엄마 은혜는 안잊는다고 말하곤 하셨죠. 얼마나 감사하던지….”

외롭고 힘든 제주도의 생활은 그렇게 성도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힘을 얻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이집사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 닥치고 말았다. 하나밖에 없는 여섯살난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이후의 삶은 말못할 고통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시댁식구들은 “예수를 믿다가 아들을 죽였다”고 원망했고 남편과 더이상 한가정을 꾸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쫓기듯이 서울로 돌아왔다.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몸에는 마비가 찾아왔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미친듯이 기도할 곳을 찾아헤맸다. 총신대 뒷산 기도굴에 다다른 그녀는 그 때부터 소리내 울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 죽을 것만 같아요. 왜…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우리 아이를 데려가신거에요.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요. 하나님 제 아들 돌려 주세요. 제발…”

그녀는 교회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기도는 원망뿐이었고, 한강변을 헤매며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되풀이했다.

주위의 권유로 교회에 한번 나갔다온 후 아예 성경책이며 신앙서적, 십자가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성경을 불태우고 난 뒤 마비증세가 심해져 아예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닐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있다면 내 앞에 나타나보세요.” 원망은 거듭됐고 전도하는 사람들 멱살을 잡고 시비를 걸기 일쑤였다.

이현애집사가 아파하고 있을 때 하나님 역시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계셨다. 하나님은 좋은 이웃을 통해 다시금 그녀를 불러 들였다.

근처 교회 구역장이었던 한 분의 도움으로 다시 교회를 찾았던 그날 이집사는 몸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고 반신 마비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하나님이 내미신 손을 꼭 붙들고 일어선 이현애 집사.

그녀는 다시 예전의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친척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남편 배남철씨는 신혼초만해도 몸에 부적을 16개나 지니고 있던 불신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권유로 1년만에 하나님을 찾았고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정신적 충격으로 아이를 갖지 못했던 이집사는 교회 화장실을 청소하며 기도하고 기도한 끝에 지금 아들과 딸을 한명씩 얻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간다.

5년에 걸친 기도끝에 집을 장만하고 또다시 5년을 기도해서 청담동에 ‘가메스시’라는 일식집을 마련했다. 다시 선한 것으로 삶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와 전도.

이상할만큼 이집사 주변엔 무속신앙을 가진 이웃이 많았고 그녀는 매일 이웃을 찾아다니며 하나님을 전했다.

이현애집사가 한 사람을 전도하는데 쏟아붓는 시간은 3년남짓. 이웃이 호감을 가질 때까지 관심과 사랑을 베푼다. 매년 무당을 불러 굿을 하던 사람도, 간질을 앓고 있는 아들때문에 부적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도 그녀의 끈질긴 기도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냥 교회에만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훈련된 구역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그녀가 가장 기뻐하는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 하루에 5~6시간 하나님과 만나는 이현애집사는 기도하는자에겐 시험이 닥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행복만을 바라는 기복신앙은 그녀에겐 없다.

지난 가을부터 찾아온 불경기로 영업이 부진하고 11월에는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콩팥이상으로 쓰러져 투석을 받고 있지만 그녀는 더이상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저는 지금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있거든요. 내일일은 걱정하지 않아요. 남편의 건강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가 되면 고쳐질 것으로 생각해요. 한가지 제목을 놓고 기도할 때 저는 3년이상 꾸준히 기도를 하죠.

하나님은 절대 조급한 바램에 응답하시지 않거든요. 평안하다고 기도를 쉬거나 형식적으로 중얼거리지는 않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세요. 기도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두 귀기울여 들어주시고 손을 내밀어 주시는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현애집사의 꿈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선교사들을 물질로 지원하는 것으로 선교를 대신한다.

또 제주도에서 섬겼던 치매걸렸던 할머니를 기억하며 불쌍한 어른들을 모시는 사역을 하고 싶다고 작은 소망을 밝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교회로 향하는 이현애집사. 기도에는 왕의 길도 정답도 없다고 말한다. 그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무릎을 꿇고 또 꿇는 것 뿐. 그녀가 기도를 중단하지 않는 한 시련은 또 닥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삶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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